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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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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작성자 편집부 댓글 1건 조회 7,031회 작성일 2018-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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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려 있다는 것
                   
                        시. 문숙
 

나뭇가지 모양의 바나나 걸이를 샀다
바나나를 어디엔가 걸어 두면 싱싱하게 보존된다고 한다
아직도 자기가 나무에 달려 있는 줄 알고 꿈을 꾸기 때문이라는데
바닥에 두면 나무에서 떨어진 줄 알아 빨리 썩는다는 것이다
 
어느 해외 입양아가 파양당하고 청년이 되어 친부모를 찾아왔다가
끝내 못 찾고 고시원에서 고독사했다는 소식이다
그에게는 부모도 자식도 아내도 없어 매달릴 가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가지에서 떨어진 열매라 생각해 버린 것이다
 
아이들도 다 자라서 내 곁을 떠나고
일생 나를 가슴에 붙이고 사셨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하고 싶은 일이 없어졌다
나도 지금 꿈을 잃은 바나나다

*문숙 시집- 단추(천년의 시작), 기울어짐에 대하여-(애지)가 있다. 
 
 
NOTE************

지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던 아침이다. 서둘러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사고, 얼마 전 혼수 상태에 놓였을 망정 살아 계셨던 어머니를 뵙고 왔던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며, 지인은 밤새 멍하니 뜬눈으로 지새웠노라 소식을 전했다. 무슨 말로 위로를 줄 수 있으랴. 나는 혼자 초를 켜고 돌아가신 분을 위한 기도를 바친다. 그리고 문숙 시인의 ‘걸려 있다는 것’을 읽으며 점점 꿈을 잃은 바나나가 되어가는 우리의 처지를 슬퍼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나무로 조각한 바나나 걸이를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그것이 그저 장식용이라 여겼는데, 바나나가 더 싱싱하게 보존되는 용도라고 한다. 바나나 걸이에 매달린 바나나는, 자기가 아직도 나무에 달려있는 줄 알고 더 오래 싱싱하게 꿈을 꾸며 살아 있는 것이란다. 그런 거였구나… 나는 무릎을 탁, 친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꿈을 꾸는 바나나 걸이를 가졌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곁에 두었던 아이도 제 갈 길 찾아 떠나가고, 어머니도 하늘 나라로 가시고, 그만 꿈을 잃은 바나나가 되어 버린다. 하물며 해외로 입양되어 갔다가 파양이 되고 친부모를 찾아왔다는 그이는 어떠했겠는가. 처음부터 매달릴 가지조차 없었던 그의 고독사 앞에 시인과 함께 깊은 애도의 기도를 바친다. 
 
 
*채인숙 /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고, 인도네시아 문화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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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전설님의 댓글

가을의전설 작성일

웬지...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가 생각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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