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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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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191회 작성일 2018-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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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 6
 
                                        시. 김용락
 
 
가만히 생각해보니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반달]의 윤석중 옹이 여든의 노구를 이끌고
새싹문학상을 주시겠다고
안동 조탑리 권정생 선생 댁을 방문했다
수녀님 몇 분과 함께,
두 평 좁은 방 안에서 상패와 상금을 권 선생께 전달하셨다
상패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권 선생님 왈
 
"아이고 선생님요, 뭐 하려고 이 먼 데까지 오셨니껴?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한 게
뭐 있다고 이런 상을 만들어
어른들끼리 주고 받니껴?
 
내사 이 상 안 받을라니더......"
 
윤석중 선생과 수녀님들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서울로 되돌아갔다
 
다음날 이른 오전
안동시 일직면 우체국 소인이 찍힌 소포로
상패와 상금을 원래 주인에게 부쳤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봉화서 농사짓는 정호경 신부님
"영감쟁이, 성질도 빌나다 상패는 돌려주더라도
상금은 우리끼리 나눠 쓰면 될 낀데......"
 
(출처: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문예미학사)
 
 
NOTE************
'조탑동'은 우리에게 '몽실언니'와 ‘강아지똥’으로 널리 알려진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 교회 종지기로 마지막 생을 마치셨던 안동의 시골 마을이다.
 
시인은 권정생 선생이 살아 생전 말씀하신 것들을 그대로 옮겨 적어 연작시를 완성했다. 선생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그대로 옮겨 적어도 시가 되었다.
권정생 선생의 삶은 세상의 모든 욕심과 헛된 욕망들을 고스란히 비워낸 것이었다. 그랬으니 서울의 유명한 작가들과 훌륭한 종교인들이 찾아 와 선생에게 무슨 문학상이니 상패니 안겨주는 일들이 모두 헛된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게 틀림없다. 오로지 어린이와 자연을 사랑했고 가난한 이웃들과 더불어 빈한한 삶을 살았으니, 선생이 돌아가시고 수많은 사람들이 빈소에 몰려와 슬피 울며 선생을 기리는 모습과 엄청난 인세들을 기부하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웃들이 되려 놀라워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평생 조탑리 작은 오두막 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와 더불어 살며 교회의 종을 치고 동화를 쓰는 단순한 삶을 살았던 선생의 삶은 성자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시의 마지막 연에, 선생이 상금까지 몽땅 돌려보낸 사실을 알고 성질도 별나다며 퉁박을 준 정경호 신부님은 권정생 선생의 유언장에 재산관리인으로 등장하는 분이다. 언젠가 나는 권정생 선생의 유언장을 우연히 읽은 적이 있다. 죽음 앞에서 그토록 자연스럽고 소박한 웃음과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권정생 선생이기에 가능한 일이라 여겨졌다. 내친 김에 선생의 유언장을 함께 싣는다.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교회: 이 사람은 술은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 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 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 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 저기 뿌려 주기 바란다.
유언장 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 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 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0일 쓴 사람 권정생>>
 
 
                               <생전의 권정생 작가 >
 
 
*채인숙 /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고, 인도네시아 문화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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