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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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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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사(睡眠寺)
시. 전윤호
초파일 아침
절에 가자던 아내가 자고 있다
다른 식구들도 일 년에 한번은 가야 한다고
다그치던 아내가 자고 있다
엄마 깨워야지?
아이가 묻는다
아니 그냥 자게 하자
매일 출근하는 아내에게
오늘 하루 늦잠은 얼마나 아름다운 절이랴
나는 베개와 이불을 다독거려
아내의 잠을 고인다
고른 숨결로 깊은 잠에 빠진 적멸보궁
초파일 아침 나는
안방에 법당을 세우고
연등 같은 아이들과
꿈꾸는 설법을 듣는다
(출처: 늦은 인사-실천문학)
NOTE*************
한국에는 5월 22일, 그리고 인도네시아에는 5월 29일이 부처님 오신 날(WAISAK)이다. 나는 카톨릭 신자지만,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으로 부처님 오신 날의 기쁨을 대신한다. 전윤호 시인의 ‘수면사’라는 아름답고 따뜻한 시이다.
부처님 오신 날 아침, 다른 날은 몰라도 일 년에 한번은 절에 가야 한다고 다그치던 아내가 여태 자고 있다. 아마도 시인의 아내는 일년에 하루는 온 가족들이 부처님 앞에 절하며 건강과 소원을 빌어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작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매일 출근을 하는 직장인인 모양이다. 모처럼의 휴일에 깊은 잠에 빠져 일어날 줄 모른다. 아내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온통 안쓰럽고 미안하다. 마침내 시인은 절에 가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직접 절을 짓기로 한다. 아내의 깊고 평화로운 적멸보궁을 위해 연등 같은 아이들과 안방에 법당을 세우는 것이다. 그 절의 이름은 ‘수면사(睡眠寺)’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이처럼 아름답게 노래하는 시가 있을까 싶다. 수면사에서 잠든 아내의 평온한 숨소리는 어느 절간에서도 들을 수 없는 아름다운 설법일 것이다.
고단한 일상에 지친 아내를 위해 수면사(睡眠寺)를 세워 보시하는 시인의 사랑을 지켜 보며, 부처님은 어떤 미소를 지으실까…?
* 채인숙 /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고, 인도네시아 문화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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