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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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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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풍습
시. 황유원
루마니아 사람들은 죽기 전 누군가에게
이불과 베개와 담요를 물려준다고 한다
골고루 배인 살냄새로 푹 익어가는 침구류
단단히 개어놓고 조금 울다가
그대로 간다는 풍습
죽은 이의 침구류를 물려받은 사람은
팔자에 없던 불면까지 물려받게 된다고 한다
꼭 루마니아 사람이 아니더라도
죽은 이가 꾸다 버리고 간 꿈 냄샐 맡다 보면
너무 커져버린 이불을, 이내 감당할 수 없는 밤은 오고
이불 속에 불러들일 사람을 찾아 낯선 꿈 언저리를
간절히 떠돌게 된다는 소문
누구나 다 전생을 후생에
물려주고 가는 것이다, 물려줘선 안 될 것까지
그러므로 한 이불을 덮고 자던 이들 중 누군가는 분명
먼저 이불 속에 묻히고
이제는 몇 사람이나 품었을지 모를
거의 사람의 냄새 풍기기 시작한 침구류를 가만히 쓰다듬다가
혼자서 이불을 덮고 잠드는 사람의 어둠
그걸 모두들 물려받는다고 한다
언제부터 시작된 풍습인지
그걸 아무도 모른다
(출처: 세상의 모든 최대화 –민음사)
NOTE***********
어찌 된 일인지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모두 내 앞에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나와 설날 떡국을 잡수시다가 밥상 앞에서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잠시 귀국했던 어느 해 여름에 하루종일 나와 수다를 떨고 온갖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시고는, 다음 날 두 끼를 거르시더니 방안에서 조용히 잠드셨다. 사람들은 나와 오래 함께 살았던 할머니가 각별한 애정 때문에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을 기다렸다가 돌아가신 거라고 했다. 할머니는 94살에 돌아가셨으니 백수를 누리신 것과 진배 없다고, 문상객들은 모두 호상이라 말하며 울 것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세상에 슬프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는가. 한여름의 온갖 습기를 머금은 마지막 장마가 기승을 부리던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우리 4형제는 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소리내어 펑펑 울었다.
황유원의 시는 루마니아 사람들의 죽음에 관한 풍습을 시로 서술하고 있다. 자신이 생전에 덮었던 이불을 ‘단단히 개어놓고 조금 울다가’ 눈을 감는, 슬프고 아름다운 풍습이다. 남은 사람들은 죽은 이가 덮었던 이불과 베개에서 그 사람의 냄새를 맡을 것이다. 함께 지냈던 모든 시간의 기억들을 더듬을 것이다. 이불과 담요와 베개는 그 모든 시간들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쓰던 물건들을 모두 태워 없애버리는 것과 사뭇 대조되는 풍습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초등학교 1학년 때 할머니 손을 잡고 소풍을 갔고, 그때 받았던 공책 한 권을 들고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을 빼곤 달리 할머니를 추억할 물건이 없다. 물론 나에게는 할머니가 건네주신 온갖 삶의 지혜와 통찰로 가득 찬 문장들이 머리 속에 남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우리 삶은 날마다 죽음이다. 누구나 다 전생을 후생에 물려주고 가는 것이다. 하여 나에게 각인되어 있는 할머니의 문장들을 기억하는 오늘은, 죽은 이가 꾸다 버리고 간 꿈 냄샐 대신 맡는 나만의 기억법인지도 모른다.
* 채인숙 /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고, 인도네시아 문화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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