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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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본문
너무
시. 오 은
나도
아름다웠다
왼팔을 벌려봐
너무 벌리진 말고
너는 요구 사항이 많다
너는 저기압이다
왼팔을 내뻗으니
공기가 바람이 되었다
바람이 바람이 되었다
축일전야처럼
간절하게 불었다
너는 휘청인다
너는 느리고 탄력이 있다
너는 무성하다
무성하게 아우성친다
나는 우뚝 서 있다
가지가 하나밖에 없다
나는 앙상하다
항상 앙상하다
뼈에 살을 붙이듯
생각한다
나에 대해, 너에 대해
내가 너에게 더 가까워지려는 찰나에 대해
너무에 대해, 너무가 갖는 너무함에 대해, 너무가 한쪽 팔을 벌려 나무가 되는 순간에 대해, 너무가 비로소 생장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는 순간에 대해, 너무가 세상을 향해 팔 뻗는 순간에 대해, 너무가 품은 부정적 의미는 사라져
나무는 너무 많이 흔들린다
너무 너다워
너무 쑥스러워
가지가지 비밀들이 수줍게 움텄다
너무
나도 너도 아름다웠다
출처: 유에서 유 (문학과지성)
NOTE****************
유쾌하고 발랄하다. 젊은 시인의 말놀이를 따라 읽다보면 절로 마음이 즐거워진다. 때로 이해되지 않는 젊은 시 앞에서 머리를 싸맬 때도 있지만, 뭐 꼭 이해하고 해석해야 시가 되는 법은 아니지 않은가. 오 은의 시는 항상 발랄하고 명랑하다. 하지만 그 명랑함 속에 묵직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시를 쓴다. 슬픔을 나타내는 방법이 반드시 울음이거나 통곡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보여 준다.
‘너무’와 ‘나무’는 다른 단어이다. 완전히 뜻이 다르다. 그러나 오은에게 ‘나무’는 ‘너무’가 한쪽 팔을 벌린 모양을 하고 있다. ‘ㅓ’가 팔을 뻗어 ‘ㅏ’가 되는 것이다. ‘너무’가 한쪽 팔을 벌려 ‘나무’가 되는 순간, ‘너무’는 비로소 생장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고, ‘너무’는 세상을 향해 팔을 뻗고, ‘너무’가 품은 부정적 의미는 사라져 버리고, 나무는 너무 흔들려 가지가지 비밀들이 움트고 우리는 너무 아름다워 진다.
얼마나 따뜻하고 발칙한 상상력인가. 시 편편마다 무슨 기의를 쌓아 보겠다고 밤을 새워가며 골머리를 앓는 나는, 시어는 레고블록과 같다는 이 젊은 시인의 말놀이가 가끔 아주 부럽다. 오 은은 ‘말’로 좀 놀 줄 아는 시인이다.
* 채인숙 /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고, 인도네시아 문화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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