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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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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761회 작성일 2018-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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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이태관
 
 
 
낡은 바람에도 삐걱이는 건
관절이 풀린 탓이다
개미가 집안을 순례하고 있다
틈이 생긴 까닭이다
 
언제나 틈이 문제였다
기껏 성사시켜 놓은 거래도
미꾸라지처럼 파고드는 놈은 있어,
벼와 나락 사이
태풍 특보가 지나고
아내와 자식 사이
바람이 파고드는 뼈의 시림도
온몸에 틈이 생긴 까닭이다
 
틈을 메우기로 한다
관절의 구석마다 실리콘을 쏜다
길이 사라진다
 
세상 어느 곳에 틈이 없으랴
바위 속으로도 물은 스미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
삶이란 이름으로 벌려놓은 틈은
어찌 메우나
삼십 년 관절염으로 고생했던 아비의 길을
지금 내가 가고 있다
 
낯선 바람이 관절 사이를 스쳐 지난다
 
(출처: 사이에서 서성이다-문학의 전당)
 
 
NOTE***************
시집의 제목이 <사이에서 서성이다>이다. 시인이 아직도 서성이고 있는 그 사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일까, 아니면 사람과 자연 사이일까, 그도 아니라면 자연과 자연 사이일까. 아무튼 그 사이에 벌어진 틈이 생긴 건 분명하다. 온갖 틈들이 삶을 쩍쩍 갈라놓는다. 가장 힘든 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서성이며 그 틈을 확인하는 일일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삶이란 이름으로 벌여놓은’ 온갖 틈 사이를 서성이며 살아 간다. 아내와 자식 사이, 거래처와 거래처 사이, 몸과 몸 사이, 벼와 나락 사이, 계절과 계절 사이, 이 모든 사이들의 틈을 메우느라 안간힘을 쓴다. ‘세상 어느 곳에 틈이 없겠’냐만, 그 틈에서 서성이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서글프고 짠한 일이다.
 
틈을 메우려다 기어이 관절염을 앓고 마는 시인은, 결국 제 아비가 앓았던 30년 관절염을 따라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나 사이의 틈은 관절염을 앓으며 메워질 수 있을까. 같은 아픔을 겪고 같은 마음이 되는 것으로, 우리는 틈을 건너 서로를 따뜻하게 안을 수 있을까.
 
* 채인숙 /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고, 인도네시아 문화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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