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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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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568회 작성일 2018-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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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蓮
 
           시. 김경주
 
 
 
마루에 누워 자고 일어난다
12년동안 자취(自取)했다
 
삶이 영혼의 청중들이라고
생각한 이후
단 한번만 사랑하고자 했으나
이 세상에 그늘로 자취하다가 간 나무와
인연을 맺는 일 또한 습하다
문득 목련은 그때 핀다
 
저 목련의 발가락들이 내 연인들을 기웃거렸다
이사 때마다 기차의 화물칸에 실어온 자전거처럼
나는 그 바람에 다시 접근한다
얼마나 많은 거미들이
나무의 성대에서 입을 벌리고 말라가고서야
꽃은 넘어오는 것인가
화상은 외상이 아니라 내상이다
문득 목련은 그때 보인다
 
이빨을 빨갛게 적시던 사랑이여
목련의 그늘이 너무 뜨거워서 우는가
 
나무에 목을 걸고 죽은 꽃을 본다
인질을 놓아주듯이 목련은
꽃잎의 목을 또 조용히 놓아준다
그늘이 비리다
 
(출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 문학과 지성)
 
NOTE*************
목련은 봄이 왔음을 “문득” 깨닫게 하는 꽃이었다. 겨울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아직도 차가운 바람의 기운을 느끼며 길을 나서다가, 누군가의 집 담장 너머로 목련이 활짝 핀 것을 보면서 봄이 왔다는 것을 “문득”감지하는 때가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몸도, 마음도, 계절도 잔뜩 움츠린 채 집과 일터를 오가느라 종종거리며 땅만 보고 걷던 시간이었다.
 
목련처럼 우리에게 “문득” 감지되는 낯선 시간들이 있다. 내가 잊고 있었거나 멀리 하였던 어떤 시간 혹은 잊었던 인연들이 어느 날 문득 다시 다가오는 기미를 느낄 때가 있다. 평생 단 한번만 사랑하고자 했던 오래 전의 이름이 문득 떠오르는 순간도 있다. 그런 순간들은 우리가 문득 목련을 보게 되는 순간과 같다. 하필이면 문득 목련은 그때 피고 문득 목련은 그때 보인다.
 
그러나 목련이 순식간에 꽃잎을 떨구고 봄을 보내듯이, 우리도 그 시간의 인질을 놓아주어야 한다.이빨을 빨갛게 적시던 사랑이 있었고 뜨겁게 울 수 있었던 시간들이 있었노라 추억할 뿐이다. 그래서 목련이 지고 난 후 문득 되돌아 보는 시간의 그늘은 언제나 비리다.
 
* 채인숙 /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고, 인도네시아 문화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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