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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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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201회 작성일 2018-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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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시. 최지인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잠잘 때 조금만 움직이면
아버지 살이 닿았다
나는 벽에 붙어 잤다
 
아버지가 출근하니 물으시면
늘 오늘도 늦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골목을 쏘다니는 내내
뒤를 돌아봤다
 
아버지는 가양동 현장에서 일하셨다
오함마로 벽을 부수는 일 따위를 하셨다
세상에는 벽이 많았고
아버지는 쉴 틈이 없었다
 
아버지께 당신의 귀가 시간을 여쭤본 이유는
날이 추워진 탓이었다 골목은
언젠가 막다른 길로 이어졌고
나는 아버지보다 늦어야 했으니까
아버지는 내가 얼마나 버는지 궁금해 하셨다
 
배를 곯다 집에 들어가면
현관문을 바라보며 밥을 먹었다
어쩐 일이니 라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외근이라고 말씀드리면 믿으실까
거짓말은 아니니까 나는 체하지 않도록
누런 밥알을 오래 씹었다
 
그리고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 걸었다
 
(출처: 나는 벽에 붙어 잤다-민음사)
 
NOTE****************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저성장 시대, 젊은 비정규직 젊은이의 슬픈 일기를 읽는다. 내가 대학을 다닐 무렵 세상에 태어난 이 어린 시인은 아직 일정하게 출근할 직장이 없다. 어쩌면 그는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시를 쓰는 삶을 택했으니 더 그럴 것이다.
 
그는 저녁이 될 때까지 걸어 다니다가 아버지보다 늦게 집에 들어가려는 아들이다. 그 모습이 IMF 위기 때 직장에서 정리 해고를 당하고도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해 거리를 방황하던 가장들의 모습과 겹쳐 떠오른다. 아니, 아직 가장이 되지도 않았는데 청년은 그때의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청춘을 산다.
 
벽을 부수는 일을 하는 아버지도 비정규직일 것은 뻔한 일이다. 쉴 틈도 없이 일하는 아버지에게 부수어야 할 벽은 아직도 너무 많다. 아들은 아버지와 살이 닿을까 벽에 몸을 붙이고 잠을 자고, 아버지의 가난은 고스란히 아들에게 유전된다. 스물 일곱 청년의 아프고 쓰라린 일기가 내게는 비명처럼 들려 온다.
 
*채인숙 /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고, 인도네시아 문화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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