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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시산제, 산으로 누리는 복의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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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1건 조회 6,101회 작성일 2018-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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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 2018년에 맞은 새해 첫 일요일이다. 이른 아침 5시 32분, 소식 하나가 스마트폰 화면에 떴다. 인도네시아 한인 등산모임 <산빠람>의 단톡방이다. 집결지로 출발했다는 한 회원의 알림이다. 집결지로부터 가장 먼 곳에 거주하는 회원이다. 고속도로 사정이 괜찮은 시간임에도 그는 무려 2시간 이상을 달려야 한다. 하긴 회원 대부분이 고속도로를 이용한다. 먼길을 마다 않고 산을 찾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참가 가능한 회원들이 연이어 출발을 알린다. 오늘은 <산빠람>이 2018년 시산제(始山祭)를 치르기로 정한 날이다. 들뜨고 기대하기는 회원 모두 마찬가지, 준비를 위해 지난 며칠 주고받은 메시지가 제법 많았다. 막걸리를 빚었다고 기대감을 높이는 회원, 과일을 책임지겠다는 회원이 있었다. 현수막을 준비하겠다는 회원도 있어 제법 축제 모드였다.
 
‘별다방’에 들리겠다는 알림도 뜬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하자는 신호다. 세계 어디나 그렇듯 인도네시아에도 별다방, 즉 스타벅스가 참 많다. 곧바로 산을 오르겠다는 회원도 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빨리 걷지 못하는 회원이다. 산행에 나선 회원이 17명, 산빠람 결성 이후 가장 많은 참가 인원이지 싶다. 시산제가 산빠람의 축제임이 분명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함께 산을 즐기겠다는 산빠람 회원이 늘어난다. 좋은 현상이다. 물론 늘어나는 숫자가 산빠람 회원만이 아니다. 산으로 오르는 길이 점점 번잡해지고 있다. 길을 비켜주며 Semangat!(힘내요!)를 외치게 되는 자전거족들도 부쩍 많아졌다. 오일 공해와 소음 공해를 퍼붓고 벼락같이 내달리는 산악오토바이족들 규모도 점점 커진다.
 
역시 산은 산이다. 크다. 높다. 백 줄기 능선을 세우고, 천의 계곡을 빚고, 만의 들을 펼친다. 만물을 생육한다. 만물의 집이 된다. 생산과 포용의 산. 사람의 영혼을 달래고 깨우치게 하며 건강을 돕는다. 참 자유가 무엇인지 무언으로 암시한다. 모두가 산을 찾는 이유리라.
 
 
 
고도 약 1250m 리디아 산(Gunung Ridia) 정상, 시산제를 위한 준비가 착착, 회원들 배낭 속으로부터 하나둘 음식이 출몰한다. 산 정상에 자리한 제단엔 하얀 종이가 깔렸다. 회원들이 뜻을 모아 쉬기 위해 만든 대나무 의자가 오늘은 나름 성스러운 제단이다.
 
한국의 술 동동주와 막걸리가 이국의 산 정상에 놓였다. 놀랍고 흥미롭다. 익숙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침이 꼴깍, 눌린 돼지 머리 고기가 제단에 오르고, 전과 약과도 놓인다. 과일은 사과와 포도, 오렌지가 녹색을 배경으로 각기 지닌 색조를 뽐낸다. 한국에서 급히 공수해온 생밤도 껍질은 벗은 채로 접시에 소복이 담겼다.
 
순국선열과 조난 산악인을 위해 묵념을 했다. 산악인으로서 선서도 했다. 무궁한 산의 세계를 배우고, 협동하며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자고 다짐했다. 순서에 의해 술을 따르고 재배를 했다. 강신과 초헌주를 올렸다. 축문도 읊었다. 축문 내용은 일방적인 기원이 아니다. 산을 살펴 산의 포용과 겸손, 건강함을 배울 것을 새겼다. 산의 덕과 지혜를 일상에서 발휘하자고 약속했고, 최선의 결과를 위해 최선으로 노력하자고 고백했다.
 
아헌주를 올리고 종헌주를 따랐지만, 그리 질서가 뚜렷하지도 않고 심히 엄숙하지 않은 시산제다. 잔을 올리지 않는 회원도 있고 절을 피하는 회원도 있다. 그 자유로움 그거야말로 산에 올라 산에서 배운 것이다. 그러므로 산빠람의 시산제야말로 매주 일요일이면 산에 올라 복을 누리는 자신을 향한 헌사(獻辭) 아니랴. 즐기는 시산제로 하나 된 느낌 썩 괜찮다.
 
술을 나누고 음식을 나눴다. 숨죽이던 김치도 환히 펼쳐졌다. 이국의 산 정상에서 한국인들의 한국식 시산제, 나름 의미 넘치고 가치 만끽이다. 아! 이 아니 즐거우랴. 실없는 농담에도 폭소가 크다. 그사이 리디아 산의 청정한 기운 산빠람 회원들 폐부를 맑고 깨끗하게 씻었으리.  
 
 
 
 
 
지상의 낙원을 말하라면 나는 선뜻 리디아 산 주변을 들리라. 기온 좋은 곳, 생산물이 풍부한 곳이 낙원 아니라면 과연 어디가 사람에게 낙원이랴. 찬란한 햇빛의 은총이 넘치는 곳, 아낌없이 불어주는 쾌적한 바람, 만물의 시원인 물, 강우량이 풍부한 곳, 그러므로 열대림 무성한 곳, 열대림 속에는 몇 십 킬로 무게를 자랑하는 낭까로부터 두리안, 바나나, 커피, 각종 약재가 산재한 곳, 그래서 욕심과 관계유지에 능숙한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곳.
 
문명이 없어 초라해 보여도 좋다. 다시 돌아보아 누추해도 별 상관 없다. 그런데 거기 사는 사람들은 어찌 그리 별 걱정없이 하루하루를 잘 살까? 이 역설을 잘 이해하는 이 있다면 그의 생 또한 날마다 행복이리. 그 산 있어 산빠람 회원들 2018 시산제를 넉넉히 즐겼다. 참 고마운 하루였다. 산빠람 회원 모두의 한 해 안녕을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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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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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iman님의 댓글

budiman 작성일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전에는 의미없이 스쳐가는 인연이 였는데
그의 이름을 불러주니 내가 다가와 꽃이 된것 같습니다.
인도네시아 자칼 근교에 대자연과 매주 함께하는 산빠람 회원분들의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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