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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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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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시,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눈도 마주치지 말자.
출처: 자명한 산책 (문학과 지성)
NOTE***********
사람 때문에 행복하고, 사람 때문에 살만하고, 사람 때문에 슬프고, 사람 때문에 고독하다. 서로를 외면하니 외롭고, 외로우니 미치는데, 미치고 싶어도 미쳐지지 않는다. 참혹하다. 진실과 사랑이 담겨야 할 심장에 벌레가 생기고 거미줄이 앉고 너와 나는 서로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니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그런 순간에 찾아 갈 강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라 여겼던가.인간과 인간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 받지 못하는 이야기라면, 차라리 강에 가서 직접 말하라는 시인의 명령 앞에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시인은 끝내 강가에서도 우리 서로 아는 체하지 말자고 한다. 눈도 마주치치 말자고 한다. 끝내 화해할 수 없는 상처도 있는 법이라고 말한다.
시인의 분노와 고독이 쓰디쓰게 드러나는 아픈 시를 읽는 동안, 오늘도 뉴스에서는 ME TOO 운동 여성들의 끝없는 고발이 이어진다. 강가에서조차 눈도 마주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저 많은 여성들은 어디에 가서 제 상처를 치료 받을 수 있을까.
* 채인숙 /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고, 인도네시아 문화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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