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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560회 작성일 2018-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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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묵객들의 취향이었으리라.
명경이나 승지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곳마다 나름의 소회를 읊어 남겼다. 한갓 삶류 서생인 나로서는 선인들의
그 낭만과 여유, 그리고 실천 그저 고사로 읽고 들어 어림짐작만 할 뿐이다.
다만 필묵으로 한 생 사노라니 나 또한 때를 당하면 감정이란 것이 고개를 든다.
 
세상과 인심을 잘 짚어내지 못하면서도 자의든 타의든 나름 흔적을 남긴다.
 
Sukabumi, 인도네시아 자바섬 서쪽 지방 이름이다.
자바섬 남서부를 자락 삼아 솟구친 우람한 산정과 그 자락,
짙푸르게 넘실대는 인도양 바다가 서로 조우하는 곳이다.
산물이 풍부하니 사람들이 밀집해 사는 곳,
인력이 풍부하니 들어선 한국인 산업체도 상당수다.
 
어언 30여 성상 전 이곳에 농사짓기를 업 삼아 한국인 한 부부가 터를 잡았다.
천성이 맑으니 인연이 닿고 혜안이 있어 지기 좋고 풍광 좋은 이곳과 상생을 꾀한 것이다.
Bumi의 뜻, 그 지구와 그 곳의 땅, 그 세상을 Suka의 뜻삼아 사랑한 것이다.
 
 
 
귀 있는 복이랴. 풍문처럼 그 부부의 진솔한 삶을 들은 지 오래,
그저 맘으로만 흠모하였더니 드디어 때가 이르렀다.
그 부부를 만나고 그 부부가 이룬 성과들을 몸으로 체험할 기회가 생겼다.
탐구심 강한 이웃 부부와 우리 부부 넷이서 소풍을 가듯 어느 일요일을 택해 길을 나섰다.
 
다져진 느낌 물씬 풍겼다. 두 부부의 손길 이른 곳마다 알차고 탄탄하다.
느끼느니 잔잔한 감동이고 넘치느니 차분한 감탄이다.
이 부부 있어 인도네시아 한인들 식생활이 덕을 입은 게 그 얼마일꼬.
 
돌아오는 길엔 차 안이 비좁을 정도로 상자와 자루가 여럿 실렸다.
넙죽 받아온 풍성한 농산물, 저장할 것은 저장하고 먹을 것은 먹고 마실 것은 마셨다.
그리고 심을 것은 심었다. 심고 가꾸고 거둔 손길이야 어찌 다 헤아리랴. 그저 감사한 마음만 헤아릴 뿐.
 
 
 
 
문득 떠오른 생각, 내가 할 일 하나 있다. 보벽이다.
둘러앉아 그 집 내상께서 정성으로 빚은 막걸리에 장히 취했던 바로 그 뒷벽에 졸작 하나 걸겠다는 심사 번뜩 스쳐 붓을 잡았다.
 
막상 붓을 잡았으나 그 자리에 어울리는 명언 절구가 쉬 잡히지 않는다.
평소 게으른 공부가 또 이렇게 바닥을 드러낸다.
 
심사숙고로 지었을 상호를 넣어 조어 하렸더니, 그 또한 쉬운 일도 아니다.
함부로 썼다간 자칫 결례일 듯도 싶다. 부부를 떠올리고 고장을 바탕으로 두고 틈이 날 때마다 찾아 읽고 떠올리고 흘리기를 며칠, 산뜻하다 싶으면 가볍고, 육중하다 싶으면 흥취가 모자란다. 넙죽 받아온 막걸리, 빌미 삼아 들이키던 막걸리가 몸과 뇌리를 혼미하게 하던 어느 늦은 밤 건져 올린 한 생각.
 
두루 아는 말, 오래 묵어 다 익힌 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변함없는 천하의 진리, 누구나 실천해야 하는 진리, 그래 이거다. 뭣보다 그 부부가 참다운 실천으로 오늘을 일군 말 “天助自助,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 天助自助(천조자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인재 손인식 2018년 작
 
 
 
글 몇 줄 배운 아이도 익히고 찾아낼 쉬운 말, 그 말 찾은 것이 뭔 대순가.
몇 날을 소비하고 겨우 찾은 그 말 되뇌며 득의양양, 소재를 찾고 나면 늘 반쯤 이룬 듯 싶은 느낌은 온전히 내 몫의 즐거움이다.
 
붓을 잡았다.
제 몸, 제 맘, 제 뜻대로 다스릴 사람 없다 더니 반백 년 바라보도록 자고새면 다뤄온 필묵인데 몇 번을 몸과 정신을 다해도 뜻과는 거리가 저만치다.
쌓인 파지가 그 얼마, 제 탓하다 지질 때쯤 그나마 슬몃 마음을 끄는 작품 한 점.
 
애초에 보벽코자 한 곳은 외부다. 표구된 작품은 걸 수 없는 곳이다.
나무에 새긴 현판이 어울릴 곳이다. 작품을 복사하고 그에 어울리는 나무를 찾았다. 아끼고 감춰놓은 숨죽이던 판재 하나 눈에 든다.
 
중부 자바 어느 마을 농부의 집에서 사용하던 Lesung(절구통)을 모아와 알맞게 켜 놓은 것이다. 듬직한 아름드리나무로 자라 농가를 위해 헌신하다 낡고 헐어 버려진 것이다. 어찌 어찌 고재 수집상을 거쳐 내게로 왔다.
이제 오래 안착할 인연을 만났으니 어찌 새 생명을 얻었다 아니 하리.
 
 
 
모두가 바라는 행복이란 바로 지금에 있다고 했다.
지금을 잘 누리는 것이 행복이다.
있는 것 가진 것을 잘 활용하면 그것이 복이라 했다.
인연을 만나 나눌 것을 나누고 즐거우니 이 또한 좋은 운수 아니랴.
 
세상사람 모두 自助를 바탕으로 풍성한 天助를 누리는 오늘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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