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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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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204회 작성일 2017-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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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 사
                           시, 도종환
 
 
내소사 다녀왔으므로 내소사 안다고 해도 될까
전나무 숲길 오래 걸었으므로
삼층석탑 전신 속속들이 보았으므로
백의관음보살좌상 눈부처로 있었으므로
단청 지운 맨얼굴을 사랑하였으므로
내소사도 나를 사랑한다고 믿어도 될까
깊고 긴 숲 지나
요사채 안쪽까지 드나들 수 있었으므로
나는 특별히 사랑받고 있다고 믿었다
그가 붉은 단풍으로 절정의 시간을 지날 때나
능가산 품에 깃들여 고즈넉할 때는 나도
그로 인해 깊어지고 있었으므로
그의 배경이 되어주는 푸른 하늘까지
다 안다고 말하곤 했었다
정작 그의 적막을 모르면서
종양이 자라는 것 같은 세월을 함께 보내지 않았으면서
그의 오래된 내상(內傷)과 함께 있지 않았으면서
그가 왜 직소폭포 같은 걸 내면에 지니고 있는지
그의 내면 곳곳이 왜 낭떠러지인지 알지 못하면서
어찌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의 곁에 사월 꽃등 행렬 가득하였으므로
그의 기둥과 주춧돌 하나까지 사랑스러웠으므로
사랑했다 말할 수 있을까
해 기울면 그의 그리움이
어느 산기슭과 벼랑을 헤매다 오는지 알지 못하면서
포(包)* 하나가 채워지지 않은 그의 법당이
몇백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의 흐느낌 그의 살에 떨어진 촛농도 모르면서
 
*공포 (栱包) : 처마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
 
출처: 사월 바다 (창비시선 403)
 
NOTE*************
 사람들은 제게 왜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느냐고 묻습니다………… 그 속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까요. 집을 짓기 위해 벽돌을 찍으려면 몸에 흙이 묻습니다. 집을 고쳐 지으려면 흙먼지를 뒤집어쓰게 됩니다. 지난 사년간 온몸에 흙을 묻히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이 시들을 썼습니다……… 시인의 말 중에서
 시집 곳곳에서 시인은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라고 썼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어찌 아니 그럴까. 우리는 이제 영영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 없이는 사월 바다를 바라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같이 울고 같이 아팠다고는 하지만, 적막 같은 그들의 마음과 종양이 자라는 시간 속의 오랜 내상과 낭떠러지 같은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면서 어찌 껴안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옆에 잠시 서 있었다고 마음을 안다고 해도 되는 것일까.
 
사월 바다에서 아이를 잃은 엄마들을 만났다. 나보다 더 씩씩하게 웃고 더 힘을 주어 나를 껴안는 그들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 와 도종환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잠시 울었다. 죽어서도 가지고 갈 이별이 어떤 것인지를 시집 마지막 장을 다 넘기고서도 나는 끝내 한치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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