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5)| 하나를 들어 셋을 일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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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의 경영 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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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의 경영 탐문 5
‘마에스트로’, 이 단어가 딱 어울리는 경영인
바로 이 순간, 귀하고 중요한 접점
글쓰기, 삶의 여유를 찾는 자신의 시간
세상은 경영, 가정 경영은 그 핵심
마에스트로 이강현의 가정 경영 세계
'마에스트로', 이 단어가 잘 어울리는 사나이가 있다. 그는 직함이 많다. 직장인이지만 광폭의 사회 활동과 능력 발휘로 채집된 직함들이다. 그 많은 직함 중 어느 것이라도 하나만 꼭 집으면 그를 포괄하기엔 아무래도 부족하다. 그래서 그에게는 그냥 ‘마에스트로’가 딱 어울린다.
마에스트로 이강현(52), 그는 인도네시아(이하 인니)에서 널리 알려진 유명 인사다. 인니 유력 방송에서 그의 활약을 특집으로 꾸민 횟수를 본인도 다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다. 인니 영자 신문 자카르타 포스트에 대서특필된 것을 비롯해 신문과 매거진에 실린 것만 모아도 책 몇 권을 묶을 정도다. 2004~5년에는 인니 방송 Metro TV의 신기술 소개 프로그램과 RCTI의 경제 진단 프로그램에 정기 출연 패널이었으니 말 그대로 방송인이다. 물론 갖은 미디어가 그를 조명하는 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1998년부터 현재까지 인니 전자협회(GABEL)에서 회장과 부회장을 교차 역임하고 있고, 인니 휴대폰 협회(APSI)에서도 중심축으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는 한국 기업 인니 법인의 부사장이자 한국인 경제 전문가로서 인니가 필요로 하는 인물이다. 때로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과 마주 앉아 경제 관련 중요 사안에 자문을 하고, 제안하는 경제 외교관 역할도 한다. 인니 영주권자인 그는 인니의 젊은 미래 지도자 100인에 선정되었고, 인니가 뽑은 아세안 30인에 들기도 했다. TV의 공익광고 모델도 했다. 정계 입문 유혹 또한 끊이지 않는다.
▲ Joko Widodo 인도네시아 대통령(사진 우측) 생가인 솔로 자택을 방문해 식사를 마친 후 대통령과 함께.
대통령 당선 이전부터 교분을 맺은 둘 사이는 지금은, Sholat(기도)을 함께 할 정도 돈독함을 유지하고 있다.
▲ Jusuf kalla 인도네시아 부통령(사진 중앙) 관저 방문 시.
사진 오른쪽은 당시 무역부 장관이던 Rahmat gobel씨
▲ 인도네시아 산업부 Airlangga hartarto 장관과 함께.
hartarto 장관은 최근 Golkar당 당수에 당선 겸직을 하고 있다.
▲ 인도네시아 장관 부인들의 모임 <바띡 사랑> 행사를 마치고
▲ 재인니 한인회에서 주최한 한복 패션쇼에 부부가 모델로 출연
그의 활동은 인니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한국의 미디어에서도 늘 그를 필요로 한다. 경제 부분 해외 전문가로서 그의 활동을 조명한 것이나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도 다 기억하거나 열거하지 못할 정도다. 인니 한인 교포들 사이에서 유명 인사임은 당연하다. 재인니 한국 상공회의소(수석 부회장)를 필두로 인니 한인 모임 그가 속하는 곳마다 그의 능력이 필요하고 그의 능력이 꽃핀다.
최근 그에 관한 뜻밖의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그가 인니 한인 글쓰기 모임 <인문창작클럽> 회장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순전히 내 개인 취향이지만 어찌나 신선하고 반갑던지.
“저를 가라앉힐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글 쓰는 시간을 제 삶에서 여유를 찾는, 즉 힐링하는 시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인문창작클럽은 꾸준히 글쓰기를 하려고 가입한 곳인데 직책까지 맡게 되었죠.”
나는 진작부터 그가 글쓰기를 좋아하고 또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바탕이 어렸을 때부터 다져졌고 그것이 곧 환경이었다는 것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의 경영 세계를 탐문함으로써 알게 된 사실이다.
“저는 10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어요. 엄마 없는 자식 소리 듣지 않으려면 공부를 잘해야 했어요. 오직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에 몰입했지요. 전 과목 100점을 안 맞으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아버지는 한때 정치에 몰두하셨어요. 정계를 벗어나신 후에는 사업을 하셨죠. 주변에서도 우러르고 저도 우러르던 아버지께서 일찍 웃음을 잃으셨어요.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이었지요. 저는 아버지를 자주 웃게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밝히기는 좀 쑥스럽습니다만, 실제로 아버지께서는 저의 좋은 성적표와 각종 경시 대회 상이 힘이 된다고 하셨어요^~^"
하나의 접점, 그 분열과 융합
마에스트로 이강현,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삼성맨이다. 사회 첫 발이 삼성이었고, 나이 오십을 넘긴 현재도 삼성의 직원이다. 삼성에서 수여한 상이 세 개, 그중 하나가 삼성인이라면 최고의 영광으로 여기는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이다. 그런 그에게 내가 주목한 이야기는 다름 아닌 그의 <가정 경영>이다. 마에스트로 능력이 맘껏 발휘되었음일까? 멋지게 일군 가정, 그의 탁월한 외부 활동 기반이 가정일 것이기에 내가 선택한 주제는 그의 가정 경영이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접점을 만난다. 지나온 긴 시간 따져보면 다 접점이 쌓인 것이다. 그 많은 접점 중에는 바로 오늘을 있게 한 절대적인 접점이 하나 있다. 곧 우리의 지금 이 순간은 미래에 있어 절대적인 접점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곧 오늘 바로 이 순간은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접점인가.
그에게 바로 오늘이 시작된 접점은 어디였을까? 나는 그의 마인어(말레이 인도네시아어) 전공을 그의 인생 최대 접점으로 꼽으련다. 바로 그 접점이 그의 오늘, 그의 세계의 잉태였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접점은 그의 운명이라 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제 대학 진학 목표는 내로라하는 명문대 정외과, 행정학과였습니다. 다 고배를 마셨죠. 고3 때 여학생을 사귀었거든요. 온통 마음을 빼앗겼죠^~^. 교제는 이어갈 수 없는 현실이었고 원하는 명문대 또한 진학할 수 없었습니다. 방황이 제법 길었습니다. 최종 선택한 곳이 한국외국어대였고, 그마저 3지망 부분에 별 생각없이 적어 넣은 마인어과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능력과 결과가 어긋난 경우를 더러 만난다. 순간의 실수로 못 이룬 일도 더러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때일 뿐이다. 노력과 지닌 능력은 주머니 속 송곳처럼 언젠가는 비집고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 현재는 과거 언제보다 더 중요하다. 과거를 빗댄 ‘만약에~’란 말은 그야말로 현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단어다.
“애초부터 바란 과가 아니고 예고도 준비도 없이 맺어진 전공이니 흥미 없었죠. 그래서 대학 1학년 때는 공부가 매우 소홀했습니다. 또 다른 지원을 궁리하고 고배를 마시고 입대로 이어졌습니다. 전역하고 복학한 뒤 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빠르게 바뀌는 세상 현실이 한몫했습니다. 복학생이 되니 현실이 큰 중량으로 다가왔어요. 그즈음 많은 기업이 인니로 진출했습니다. 인도네시아가 제게 훌쩍 다가온 거죠.”
心不在焉視而不見(심불재언시이불견)이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 마음이 끌린 후 그에게 인니는 이전과 다른 대상이었을 것이다. 복학 후 그는 교수 추천으로 인니 학생과 펜팔을 했다고 한다. 몇 차례 인니를 오가는 비행기에서 인니 학생을 만나 친구가 되기도 했다. 이런 현실적인 교류는 역사와 문화, 경제 등 폭넓은 공부에 불을 붙이는 계기였다고 한다. 대학 졸업식도 치르기 전 삼성에 취업(91년)했고, 얼마 가지 않아 인도네시아 법인 근무(93년)를 적극 자원했다니 이 모든 것이 예정된 순서였을까?
기회는 찾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법, 그의 삶은 인니어 전공을 선택한 그 접점으로부터 다져지고 파생하고 융합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정해진 일처럼 변화하고 발전했다. 그는 공부하고 긍정하고 창조하면서 자신의 삶을 선도했으리라. 묻지 말자.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의 현재가 잘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인니의 상류층엔 독특한 문화가 있어요. 양아들을 두는 관습이죠. 저도 그에 따라 비행기에서 만난 친구 아버지의 양아들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무슬림이 되었지요. 양아버지는 제 아내를 만나게 주선해주셨고요.”
하나를 들어 셋을 일구다
擧一反三(거일반삼)이란 말이 있다. ‘하나를 들어 셋을 뒤집어 이루다’이다. 그는 인니어 전공을 직업을 얻는 일거양득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를 들어 擧一反三, 셋을 뒤집어 보았다. 셋이 파생하는 것은 무한, 그는 많은 것을 일궜다. 인니를 사랑했고, 인니 여성과 결혼했으며 그로 인해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지는 든든한 아들 셋을 두었다. 한국에서는 양육이 벅차다고 손사래를 칠 아들 셋, 고국과 인류를 위한 공헌이 왜 아니랴.
▲ 擧一反三(거일반삼)/ 하나를 들어 셋을 뒤집어 이루다/ 2018년 인재 손인식 작
하나를 들어 뒤집어 보라. 셋을 뒤집어 보는 길이 열리리라.
셋을 뒤집어 보는 것은 무한 가능성에 돌입하는 것,
하나를 참답게 바로 알면 펼치기에 따라 수십 수백을 이룰 수 있다.
“큰 아이요? 이름이 이보니입니다. 자카르타 미국계 국제학교 JIS 졸업 후 미국의 명문대학을 거뜬히 합격해 현재 재학 중입니다. JIS 재학 때는 총학생회장을 맡는 등 나름 리더십도 발휘했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교육에 관한 한 아내의 공이 큽니다. 사실 국제결혼을 하고 나서 아이들 교육이 은근히 걱정이었습니다. 이 고민을 아내가 거뜬히 해소해 주었어요.”
그의 아내는 결혼 후 직장(항공 승무원)을 그만두고 다시 대학에 들어갔다. 남편의 모국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의 노력으로 아이들이 네 살 즈음부터 한국어를 읽고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내 또한 나중에는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니 참 놀랍고 존경스럽지 않은가. 부인의 노력이 얼마나 컸을지.
▲ 인도네시아 레스토랑에서 가족과 함께
▲ 부친을 모시고 가족과 함께
▲ 양아버지 가족들과 르바란 모임 시 사진 촬영.
양아버지는 지금 작고 하셨지만 그 가족들과는 변함없이 한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2006년부터 3년간 한국 본사에 근무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 모두 한국생활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처음엔 한국의 국제학교에 다녔어요. 이내 아내가 한국학교로 옮기자고 해서 한국을 떠나올 때까지 한국 학교에 다녔습니다. 한국 근무 이후 방글라데시에 근무할 때는 다시 미국계 국제학교에 다녔고요. 아내는 아이들에게 항상 한국어와 문화를 가르치는데 아이들은 학교를 통해 자연스럽게 글로벌 정서를 익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제로부터 그의 아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고자 한다. 이 글 또한 긴 서론을 마치고 이제야 본론에 접어든 느낌이다. 사실 난 그의 부인께 가정 경영 이야기에 관한 인터뷰를 청했었다. 미덕이 넘치는 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인터뷰를 사양했다.
인터뷰 거부로 나는 상상했다. 그의 부인은 결혼 후 왜 한국어과에 입학을 했을까? 인니어와 영어에 능통한 남편과의 소통을 위해서라면 한국어 공부는 그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짐작되는 바가 부인의 현명함이다. 오직 남편을 향한 사랑 실천, 아이들의 한국어 교육과 시댁 가족들과 소통을 염두에 둔 현명함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현명함은 오늘 그에게 얼마나 큰 보람을 안기랴.
“아내는 인도네시아 사람 같지 않을 때가 많아요. 우선 우리 집 식탁이 그렇습니다. 밥은 물론 된장찌개, 김치찌개 여타 반찬 등 모두가 그냥 그대로 한국식이거든요. 년 중 변함없이 한국식입니다. 특히 아내의 시아버지 공경은 저도 콧날이 시큰해질 때가 많아요. 아버지께서는 올해 연세가 89세십니다. 감사하게도 아직 건강하십니다. 아버지는 예전부터 혹서나 혹한 때면 인니에 오셔서 머물다 가십니다. 아내는 홀로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늘 안타까워해요. 특히 아버지가 수척해 보일 때면 눈물을 흘려서 저를 당황하게 합니다.”
이거 자랑 맞다. 자식 자랑이나 아내 자랑하면 팔불출이라는데 나는 왜 그가 자식과 아내를 내놓고 자랑해도 밉지 않을까? 사진을 살펴 보자.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와 함께 오붓하게 푸른 초원에서 골프 라운딩을 즐기는 고령 어른의 기분은 어떠실까? 이 얼마나 아름답고 흥겨운 그림인가.
▲ 가족 골프 라운딩 중 시아버지와 며느리
“아내는 햇볕에 그을린다는 이유로 골프를 싫어했지요. 그런데 아버지는 젊어서부터 골프를 즐기셨고 실력도 좋으십니다. 그것을 안 아내는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께 골프를 배웠어요. 인니에서 무료해 하실 때 함께 라운딩하기 위해 싱글 핸디캡의 아버지 실력을 배우기로 한겁니다. 아내는 집안에서도 아버지를 심심하지 않게 해드리려 노력을 많이 합니다. ‘며느리 사랑 시아버지’라는 속담이 있지만 “사랑스런 우리 며느리~” 하고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뵐 때면 제가 복이 참 많구나 생각하죠.”
아! 부인의 타고난 인성일까? 남편에 대한 존경일까? 남편의 노력과 아내 사랑의 결실일까? 아니 부부의 덕이리라. 훌륭한 부부가 함께 가꾸는 가정 경영이리라. 나아가 부부가 스스로 가꾸는 크나큰 복이리라. 이는 글을 쓰는 내게도 복이다. 한 사람 마에스트로의 가족 경영 이야기를 참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정리할 수 있으니 이 아니 복이랴.
“제가 행복한 삶을 살았냐고요? 돌아보면 그간 일과 드러난 성과에 너무 매달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들에 관해 아쉬움도 큽니다. 가족과 주변에 대해 감사한 마음은 끝이 없습니다. 저와 제 가족을 위해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있지요. 때가 이르면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에 관한 숙제가 풀릴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이 인터뷰가 제 자신을 돌아 볼 좋은 기회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에스트로 이강현, 그는 현재 진행형이다. 자신과 가족, 회사와 사회, 나아가 인니와 한국을 위해 능력 방출과 융합을 거듭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그의 일부 성과를 들추는 일로 그의 오늘을 매조지려는 생각을 나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글의 주제와 전개를 위해 그가 불편해 하는 자랑(?)을 가감없이 취했을 뿐.
밝히거니와 이 글은 그에 대한 변주다. 주지하는 마에스트로 이강현의 진짜 경영 이야기는 배제하지 않았는가. 그의 남다른 긍정과 적극성 그리고 현실 변환과 활용, 타고난 근성 등 살피면 살필수록 샘물처럼 솟아날 진수를 온전히 남겼다. 학창시절 육상과 씨름 선수로 다진 정신과 신체 능력, 언제 어디서나 청중을 휘어잡는 웅변과 개그 기질, 그 흥미로운 부분을 미지로 뒀다. 부부가 알게 모르게 펼치는 자선 이야기나, 에피소드 많았을 한국생활 이야기도 통째로 남겼다. 그의 폭 넓은 활동과 교류를 밝히기 위해 사진 몇 장 활용했을 뿐이다.
남겨 두는 여유가 느낌 괜찮은 주말 오후다. 세상의 모든 가정 경영이 오직 행복이기를 빈다. 끝으로 독자들께 췌언 한마디, 마에스트로 이강현은 지금 인생을 꽃 피울 시기를 누리는 한국이 낳은 아들이요 우리의 벗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가 나아가는 길을 지켜보는 것도 우리의 기쁨 아닐까?
※ 이 프로젝트는 <자카르타 경제신문>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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