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7)| 유비와 조조를 좌우로 거느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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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의 경영 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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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의 경영 탐문 7
# 주인의식, 경영의 묘에서 우러나다
# 다져지고 성장한 인니 한인사회, 이젠 변화의 시기
# 2세 경영, 인니 한인 기업들의 한 축
# 산 우러르고 큰 길로 나아가다
DCS 김필수 대표의 우러러 가는 길
“다 다릅니다.”
PT. DEWA CITRA SEJATI(이하 DCS) 김필수 대표(43)의 일성이다. 그가 신발 부품 슈 레이스를 생산하는 DCS 대표가 된 지 1년여, 내 첫 질문은 바로 그 1년의 느낌이었다. 대표가 되기 이전과 대표로 취임한 이후 얼마나 많은 것이 다를까?
“우선 생각이 다릅니다. 전에는 맡은 일을 분기별로 나눠 어느 정도 달성하면 되겠지 했거든요. 안이하게 생각한 것이지요. 직책이 이사일 때까지도 분명 옳다고 여겼던 부분이 대표가 된 다음 보니 아닌 거예요. 스스로 제동을 걸 수밖에요. 저도 놀랍니다. 뭐랄까? 계획의 폭도 달라졌어요. 전 같으면 쉽게 넘길 일도 지금은 앞뒤를 철저히 살핍니다. 제가 아버지께서 일구신 DCS에서 일한 지 12년인데요, 대표가 된 뒤 일 년은 그 이전 기간 전부와도 비교할 수 없을 겁니다.”
‘자리가 사람 만든다’라는 속담 생긴 현장이 바로 코앞이다. 인터뷰 시작인데 벌써 흥미 고조다. 기업 현장에서 수없이 강조되는 주인의식이란 단어 또한 강조할 게 아니라 경영의 묘에서 우러나는 것이지 싶다. 실감 백배다. 김 대표는 모임에서도 호칭이 바뀌니 어색하다 했다. 같은 모임인데 맡는 일도 좀 바뀌는 중이라 했다. 회사가 책임져주던 활동비용을 개인이 처리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했다고 볼멘소리도 한다. 재밌다.
“대표가 된 뒤 거래처에 갔을 땝니다. 저를 맞이하는 분이 그쪽 법인 대표인 거예요. 순간 어색했죠. 얼마 전까지 친하게 지냈던 담당자가 저를 보더니 낯설어하는 겁니다. 그건 시작이었습니다. 제게 전달되는 정보의 질도 달랐어요. ‘어 준비할 게 많네’하고 생각했죠. 제가 나눌 정보의 폭도 예전과 달라야 하지 뭡니까. 은행에 갔을 때도 순간 당황했습니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액수의 전표를 제가 다뤄야 하더라고요. 거기 서명을 하기 전 제 손이 떨렸습니다^~^”
PT. DEWA CITRA SEJATI 내부 중 일부
인니 교민사회 구성과 2세의 등장
인도네시아 한인 사회는 이민이나 취업, 유학 등으로 구성된 교민사회가 아니다. 자원을 찾아 세계를 누비는 기업이 하나둘 인니를 찾게 된 것이 그 시작이다. 그게 벌써 반세기 전이다. 산업구조 변경에 따라 집단 인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적절한 환경을 찾아 몰려온 곳이 인니다. 그게 벌써 한 세대를 훌쩍 넘어섰다. 이제는 전자, 서비스, 유통, 엔터테인먼트 등 그 장르를 다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다. 크고 작은 기업군은 다져졌고 성장했으며, 흐름에 따른 변화에 잘 대처하고 있다. 한인 동포사회 또한 다양해지고 성장할 수밖에.
“제가 인니 거주를 시작한 것이 1999년입니다. 한국에서 국방의무와 대학을 마친 다음이었지요. 어학과정(BIPA)을 마치고 뜻이 있어 TAREMA NEGARA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첫 취직이요? 2004년 하반기였는데 학교 휴학 중에 취업을 택했습니다. 생각이 많고 상황도 자주 변할 때였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도 소용돌이 시기였습니다. 아버지의 회사 DCS로 오기까지 약 5년여를 다양한 업종 현장을 전전했지요.”
김 대표가 인연을 맺은 첫 직종은 가발 기업, 이어 LG 전자와 SK 지사에서는 주로 강연의 통역과 번역, 금광회사에서는 레이저 가공 및 개발자로 근무했다. 재학 중 틈틈이 부친을 도우며 어깨너머로 체험한 신발 부품 슈 레이스 생산과는 다른 일들이었다.
“제 역량이 부족하다거나 한계를 느낀 일도 있었습니다. 정신보다 몸에 맞지 않는다고 느낀 곳도 있어요. 그러나 그 모두 배움의 대상이고 경험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공장 내 파벌 방지, 임금 체계의 균형, 분명한 목적 전달, 신상품 개발의 중요성 등이 모두 그때 느끼고 배운 것들입니다.”
사무실의 김필수 대표
이슬람 최대 명절 르바란 휴가 전 직원들과 나눔
회사 주변 초등학교에 장학금 전달과 용품 지원
이 프로젝트 경영 탐문을 처음 기획할 때다. 중심축 하나로 주목한 대상이 바로 2세 경영인이다. 큰 규모의 기업에서부터 가족 경영 수준의 작은 기업에 이르기까지 2세 경영인 등장이 지금 인니 한인 기업의 한 흐름이기 때문이다. 예정된 수순인 2세들의 등장, 그들은 과연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까?
이미 꿈을 펼치고 있는 2세들도 그 숫자가 여렷이다. 능력을 갖춘 예비된 2세들도 즐비하다. 함께 뜻을 나누고 더불어 모색함은 늘 있어도 좋을 일이다. 자꾸 퍼 내야만 새로운 물줄기가 솟는 마르지 않은 우물같은 그들이기에. 그 첫 번째 DCS 김필수 대표(부친 김영주 회장이 1994년 창업)가 호응해주었다. 늘 웃는 낯으로 긍정하는 사나이의 면목을 이 인터뷰를 통해서도 유감없이 드러냈다. 감사하다.
“타국이니만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직원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직원들의 집을 방문하는 등 많이 뒤섞이고 있습니다. 평탄할 때 준비할 것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삼국지 유비의 경영 스타일을 많이 참고합니다. 그러나 위기 때는 조조의 경영학이 더 유용하다고 봅니다.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고 냉철해야 하는 거죠.”
기대했던 대로다. 논리가 부드럽다. 김 대표는 사계에 반향이 컸던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 최우석이 쓴 『삼국지 경영학』에 와 닫는 내용이 많다고 했다. 그는 책을 많이 읽는다 했다. 경영, 인문은 물론 마케팅과 회계, 아이디어 서적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도올 선생을 좋아하는데 그의 강의에서 드러나는 통찰 능력이 늘 부럽다고 했다. 김 대표의 통찰이 현장에서 좋은 빛을 발하겠다는 예상이 든다.
활발한 대외 활동, 얻는 것이 더 많아
“저는 지금 대외 활동이 좀 많은 편입니다. 월드 Okta 인니 지회, 신발협의회(Kofa), 상공회의소(Kocham), 비즈 동호회, 한국 외대 글로벌 ceo과정 원우회, 중앙 한인회 청년분과 등 10여 개입니다.”
김 대표는 애주가가 아니다. 어울리면 놀이에 빠지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저 색시처럼 웃으며 분주히 움직이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활동이 광폭이다.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그만큼 많다는 거다. 역시 다이내믹한 행동파 아버지에 그 아들이지 싶다. 아니 청출어람이다.
세계 한인상공인 대표단 일원으로 개성 공업지구 방문
글로벌 재외동포 대상을 받고
“모임마다 성격이 조금씩 다릅니다. 다양하게 배울 수 있어 좋습니다. 예컨대 제가 한국외국어대 부설 CEO 과정 1기인데요. 동기들의 면면이 정말 놀랍습니다. 인니 한인 기업인 중 손꼽을 분들이 함께였어요. 평소라면 제가 한자리에 있을 수 없는 분들이었죠. 커리큘럼도 좋았지만, 어른들이 계시는 곳은 확실히 뭔가 다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분들에게 정말 많이 배웁니다. 비즈 동호회(다른 업종 간 협의체)에서도 많이 배웁니다. 주로 회원사 방문과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실시하죠. 다른 업종의 회사 운영 체계와 시스템의 효율, 유사하면서도 다른 현지 직원 운용법 등을 느끼고 배웁니다.”
현장 간부들과 회의
高山仰止 景行行止(고산앙지 경행행지), 높은 산이 있으면 우러르고, 큰 길이 있으면 그 길로 가라. 시경 소아(詩經 小雅)편 한 구절이다. 高山, 높고 큰 산은 마땅히 우러를 대상이다. 우러를 것은 우러러야 한다. 세상과 사람 모두가 어찌 배움의 대상 아니랴. 景行, 넓고 밝은 길이 있다면 반드시 그 길을 택해야 한다. 하여 세상과 사람 우러르기를 기꺼이 하고 크고 밝은 길을 지향하는 김 대표, 그가 꼭 산을 이루고 큰 길을 열 것을 믿는다. 그는 2세들의 모임에서도 배우는 것은 마찬가지라 했다.
高山仰止 景行行止(고산앙지 경행행지)
높은 산이 있으면 우러르고, 큰 길이 있으면 그 길로 가라.
시경 소아(詩經 小雅)편 구/ 2018, 무술년 설날 인재 손인식 작
"인니 한인 2세들은 유사한 배경 속에 면모가 다양합니다. 우선 인니에서 나고 자라 인니의 대학을 졸업한 이가 있고요, 한국에서 태어나 초 · 중 · 고를 졸업하고 인니 대학으로 진학한 젊은이도 있습니다. 인니에서 초 · 중 · 고를 졸업하고 한국 대학을 졸업한 예도 많고, 세계 각 곳의 유수 대학 졸업자도 많습니다. 국내 유명 기업 또는 세계적인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2세들도 상당수지요. 모두 배울 것이 많은 출충한 2세들입니다. 기대를 걸게 하는 친구들입니다."
갈등, 바로 그 속에서 찾아지는 길
“예 사직서를 던졌었지요^~^ 2009년입니다. 그때 제 생각은 기존의 시스템을 전환해야 할 때라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시스템 시행에 따른 효율을 얻기 위해서는 공장 구조부터 변경해야 했습니다. 그에 몰두하다 보니 현장의 작업 효율이 많이 저하됐습니다. 아버님 측면에서 볼 때 당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납품이 지연되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셨겠죠. 제가 추진 한 일을 원상복귀하시는 겁니다. 참을 수 없었지요^~^”
장자 자기가 경영할 회사에 자기가 사표를 냈었단다. 가감 없이 솔직해서 좋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현장과 거기에서 드러나는 갈등 하나가 잡힐 듯이 드러난다. 기업 운영이나 생산 현장, 그리고 비즈니스에 문외한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니 고맙다. 아버님 회사였기 때문일까? 김 대표는 진급이 매우 빨랐다 했다. 그러나 빠른 만큼 주어진 임무도 그만큼 가중됐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부친께서 차츰 사무적이 되더라고 했다. 담금질이 좀 빠르고 강했다는 뉘앙스다. 이것이 자식의 성장을 바라고 믿는 바로 한국인의 부정(父情) 아니랴.
“아버님께는 놀랍도록 많은 것이 머릿속에 있더라고요. 경험으로 터득한 감도 폭이 크시고요. 창업 이후 부침과 더불어 오늘에 이른 연륜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안타까운 게 있습니다. 아버지의 연륜이 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제 매뉴얼대로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께서 30여 년간 이룬 것을 제가 다 이해하고 장악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성공하신 부분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나름의 결론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통해 실패한 부분까지 와 닫지는 않거든요.”
“너희는 젊지 않으냐. 젊은 감각으로 빨리빨리 이해를 해야지~”
“이런 말을 들으면 왜 당황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2세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동병상련입니다. 안이하지 말자고 서로 독려하며 웃습니다. 더러 선대께서 창업하신 때 보다 지금 우리 나이가 더 많다는 것을 상기하곤 합니다^~^. 그때마다 선대들께 존경심을 갖게 되죠.”
지혜롭다. 갈등을 조절하는 능력도 뛰어나고 또 매우 현실적이다. 그렇다. 물려받은 것과는 상관없이 공부할 시간도 필요하고 경험도 많이 쌓아야 하리라. 선대의 기업이 아닌 다른 회사나 직종에서 일하는 2세도 몇 있다고 했다. 그들 중에는 “이어받을 필요가 있나?”하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고 했다. 시간이 해결해줄 부분이다. 다만 선대가 일궈놓은 탄탄한 바탕에 후대의 의욕과 노력이 어우러져 새로운 꽃과 열매가 준비되고 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참 즐겁다. 인니 한인 기업들의 앞날이 왜 밝지 않으랴.
거래사 직원들의 회사 방문
응용과 활용, 그리고 밝은 내일
“인니는 제게 분명 기회의 땅입니다. 접근하기에 따라 누구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국처럼 변화가 빠르지 않아 좋기도 하고요. 그러나 움직여야 합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합니다. DCS에 바탕을 둔 저는 완제품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DCS는 아버지로부터 쌓인 노하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기반으로 3가지 정도 테스트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공정을 합치면 완제품으로 갈 수 있습니다. 현재 공장 크기와 갖춘 여건도 좋습니다. 잘 갖춰주신 아버님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김 대표는 년 전 인니 국적을 취득했다. 한국이 좋고 언제라도 한국으로 갈 생각을 하면서도 비즈니스의 편의를 우선 도모한 조처다. 이를 계기로 김 대표는 한국 기업과 현지 기업을 향해 더 적극적인 공략에 나섰다. 그가 가진 언어 능력이나 젊음 등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다양하고 능동적인 활동으로 유대가 돈독해지고 있음은 늘어난 오더가 설명한다고 했다.
“바이어의 요구사항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작업자들이 현장 환경에 만족해야 합니다. 신발 부품 산업은 6~70% 장치에 의존합니다. 나머지가 인력이죠. 스마트 팩토리를 지향하기에 썩 좋은 조합입니다. 정기적으로 기계 전시 참관과 새로운 기계에 대한 효율성을 살핍니다. 시설 기반을 갖추고 구매부터 생산, 출고까지 부서끼리 유기적으로 조합할 수 있도록 시스템 구축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죠. 저 나름의 프로그램을 짜 응용하고 있는데, 다양한 계열의 회사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좋은 토대가 되었습니다.”
김 대표는 최근 큰 경사를 맞았다. 그 아내가 아들을 순산했다. 43세 장남으로써 얻은 첫아들, 얼마나 기쁘랴. 그렇잖아도 웃음 많은 그가 인터뷰 내내 만면에 희색이었다. 둘이 있을 때도 좋았는데 셋이니 더욱 좋다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는 손자, 손자에게는 든든하고 자애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하니 이 얼마나 다복인가. 덤처럼 물었다.
2018, 무술년 설날 아침 차례상을 배경으로 3대가 함께
“경영철학이 뭐죠?”
“아버님이나 저나 ‘한 우물 깊게 파자’입니다. 하나를 바로 알지 못하면 열을 알 수 없지 않겠습니까? 행복경영도 목표입니다. 직원들 모두 함께 행복을 느끼는 기업을 만들어야죠. 새 생명인 우리 아들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 이 프로젝트는 <자카르타 경제신문>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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