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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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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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시. 여영현
내 사촌 형은 말더듬이다
전기공학을 전공했으나 전류가 잘 흐르지 못했다
그래서 친구 누나를 소개시켜 주었다
꽃을 선물하라고도 일러 주었다
물론 사촌 형은 그녀를 두 번 만나지 못했다
무슨 꽃을 사 주었는지도
입을 다물었다
여수는 유채꽃이 환해서
사월이 바다를 건너는 향기가 아렸다
곤충들은 빛과 냄새,
어떤 것으로 꽃밭을 찾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상가(喪家)에서 친구 누나를 봤다
이십 년 시간의 빗금,
얼굴이 실금 간 작은 종지 같았다
그녀는 한번 본 사촌 형의 이름을 기억했다
바다를 지난 유채꽃밭까지
슬리퍼를 끌며 따라 나왔다
“세상에 조화를 사다 주는 남자가 어딨니?”
등 뒤로 바다가 일렁거리자 유채색의 긍정적인 느낌이
오히려 사람을 작게 보이게 했다
벌은, 등에는, 빛깔과 향기 무엇으로
이 꽃밭을 찾아낼까?
“그래도 그 남자 웃겨, 오, 오래 두 두고 보면 향, 향기가 날 겁니다, 하더라”
더듬는 말을 따라 하는 그 일렁임에
나는 시린 봄 바다를 바라보기 어려웠다
어딘가 비슷하게 보이는 슬픔이다
“잘 살지?”
나는 엉뚱하게 물었다
여수는 참 멀다
(출처: 월간 시인동네 2017년 11월호)
NOTE ----------
당신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었어요. 친구들이랑 수다를 떨 때도, 수업 시간에 선생님 질문에 대답을 할 때도 또박또박 말 잘하는 아이였는데, 심지어 학교 웅변대회에 나간 적도 있었는데….. 왜 당신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었던 걸까요. 머리 속이 새까매지고,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고, 방금 막 무슨 말을 하려던 것도 까마득해졌지요. 그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더듬었던 걸까요.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몰랐던 걸까요. 너무 어렸던 것일까요……. 사랑은 참 멀기도 했습니다.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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