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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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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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춤춘다
시. 김이듬
나는 춤춥니다
춤추기 시작했어요
파도가 파고드는 검은 모래 위에서
아름다운 눈발은 전조였죠
폭우 속에서
우선 가슴을 옮깁니다. 마음이 아니라 말캉하고 뾰족한
바로 그 젖가슴 말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너무 일찍 감정을 가지죠 다음으로
들린 발을 뒤로 보내는 겁니다
뒷걸음질이 중요합니다 나는 아직 스텝을 다 알지 못하고
몸을 잘 가눌 줄도 몰라요
내 몸은 내가 지탱해야 합니다 허벅지와 허벅지가 스치도록
발꿈치와 발꿈치가 스치도록 이동할 겁니다
모래에 뒤꿈치를 묻은 채 서 있지는 않을 거예요 멈춤과 정적을 좋아하지만
추종하지는 않아요 무한을 봐요 파도가 회오리 치는
수평선 너머에 시선을 두는 겁니다 눈을 내리깔지 마세요
당신이 오른쪽으로 움직일 때
나는 왼쪽으로 갑니다
당신이 당신 편에서 동쪽으로 갈 때 나는 나의 서편으로 심장을 밀고 가요
가슴 맞대고 춤추는 겁니다
마주 보지만 얼굴을 살피지는 말자는 겁니다
바다 바깥으로 해변 밖으로 나가라는 방송이 거듭될수록
서로의 어깨 깊숙이 손바닥을 붙이는 겁니다
이곳에 살기 위하여
피하고 흥분하고 싸우기라도 하듯이
나는 춤추겠다는 겁니다
눈 감고 리듬을 느껴 봅니다
당신이라는 유령,
다가오는 죽음을 인정하고 포옹하면서
매 순간의 나를 석방합니다
나는 춤을 춥니다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출처: 표류하는 흑발-민음사)
NOTE***************
새해를 맞아 보로부두르 사원의 부처님께 기도를 하러 갔다. 나는 카톨릭 신자이지만 부처님 앞에 서있을 때의 순정한 내 마음이 좋다. 아침 일찍 갔으므로 올해의 첫 시집으로 김이듬 시인의 ‘표류하는 흑발’을 꺼내 보로부두르 사원의 6층 스투파 사이에 앉아서 읽었다. 화두처럼 와 닿는 한 편의 시가 있다. ‘나는 춤춘다’를 낮게 소리 내어 읽었다.
춤을 춘다는 것은, 가슴(마음)이 아니라 젖가슴(몸)을 옮기는 것이고, 이곳에 살기 위해 피하고 흥분하고 싸우는 것이라 시인은 말한다. 나의 춤을 추며 사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데도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병폐가 있지만 눈을 감고 나만의 리듬을 느끼고 매 순간의 나를 석방하는 일이 된다고 한다. 나는 시인의 춤에 금방 혹한다.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춤을 추는 사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 세상은 한결 아름다울 것이다. 나는 함께 용기를 내서 춤을 추자고 말하고 싶다. 올해는 기꺼이 나만의 춤을 추며 그 춤에 스스로 매혹 당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한다. 보로부두르 부처님이 껄껄 웃으신다.
*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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