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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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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964회 작성일 2018-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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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대하여
        
        시, 마종기
 
 
오래 전 희망에 대해 말해준 분이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그 귀인의 희망은 어디쯤에 숨어 살고 있을까. 그 후 언제부터인지 나도 내 희망을 찾아서 헤매 다녔다. 전에는 널려 있는 듯 자주 보이던 희망이 요즘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희망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 싱싱한 냄새의 생명은 혹시나 계절이나 나이와 상관이 있을까. 이제야 조금 후회되면서 지나가버린 희망이 그리워진다.
 
함께 붙잡고 울 수 있는 것도 행복이란 것을 아는 이, 남의 깊은 속까지 다 믿고 있는 이가 희망의 신호다. 당당히 걸어서 사람의 마음속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희망이다. 내가 처음 품었던 희망과 지금의 희망은 많이 달라졌다. 희망은 구름 같이 변하는 것인가. 벌판 같이 나른한 것인가. 희망이 등을 다독이며 속삭였다. 희망은 땅도 아니고 사람이다. 산천초목도 아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고른 섞임이다.
 
내가 세상과 작별할 때에도 나는 희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희망은 아마 날개가 되어줄 것이다. 내가 가진 작은 희망들 때문에 나는 누구라도 용서할 힘이 생겼다. 내 손을 보라, 허영이 치유되는 침묵의 소리. 손해 보고 상처 받았다고 괴로워하던 남루한 내 생을 안아주면서 당당하게 가벼워지라고 희망은 오늘도 내게 말해준다. 
 
[출처] 마흔 두 개의 초록 (문학과지성사)
 
NOTE************************
황금 개띠의 해가 시작되는 날. 독자 여러분들께 뭔가 새로운 희망이 되는 시를 선물하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책장에서 마종기 시인의 시집을 꺼내 든다. 과연 귀를 기울여 듣고 싶은 어른의 말을 그에게서 얻을 수 있으리란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시집 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자의 희망에 대하여 새로운 발견을 한다.
 
언제부턴가 희망은 우리 모두가 터부시하는 단어가 되어버린 듯 하다. 어릴 적에야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젊음의 특권인 양 신나게 떠들어 대던 시절도 있었지만, 특히나 당장 눈 앞에 닥친 고단한 현실에 몸을 가누기 조차 힘든 요즘 청년들 앞에서 그 단어를 내뱉는 일은 무슨 죄짓는 것 마냥 낯부끄럽고 민망하다.
 
그런데 70대에 들어선 노년의 시인이 우리에게 희망의 신호들을 보여준다. 젊은 날 싱싱한 생명력으로 넘쳤던 희망은 사라져 버렸지만, 나이가 들면서 얻는 새로운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함께 울고, 깊은 속을 믿으며, 사람과 사람이 고르게 섞이는 것. 그 작은 희망들 때문에 시인은 누구라도 용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남루한 생을 스스로 안아줄 수 있다고 말한다.
 
마종기 시인은 5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며 스무 권에 달하는 시집과 산문집을 낸 시인이다. 그러고 보면, 외롭고 가난하고 괴로웠을 청년 시절을 낯선 미국 땅에서 시를 쓰는 일로 견디고, 마침내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의사이자 시인으로서 노년에 이른 저 시인의 맑고 또렷한 시 정신이야 말로, 무엇보다 나에게 큰 희망이 되는 새해 아침이다.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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