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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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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작성자 편집부 댓글 1건 조회 7,070회 작성일 2018-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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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출처: 백석 시전집-흰당나귀)
 
 
NOTE***************
‘백석’이란 이름은 어떤 전설처럼 들린다.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고 모더니스트였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며 그는 남과 북 모두에게 외면 당한 시인으로 생을 마감했다. 1963년 북한의 협동농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1996년에 사망한 것으로 새롭게 밝혀졌다. 그가 북한에서도 시작 활동을 했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우리에게는 이 시에서 나타샤를 가리키는 ‘자야’라는 여인과 백석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가 오래 회자되었다. 자야(본명 김영한)는 16살에 조선 권번이 되었지만 영리하고 뛰어난 머리로 일본 유학을 떠난다. 그녀를 독립운동가로 키우고자 했던 스승의 사망 소식에 잠시 귀국했다가 백석 시인을 만났고 단번에 사랑에 빠졌다. 백석 집안의 반대로 결혼에 이르지 못했고 남쪽에 홀로 남은 그녀는 제3공화국 시절 3대 요정 중의 하나였던 '대원각'의 안주인이 되었다. 이후 법정스님을 만나 무소유의 의미를 깨달으며 대원각 자리에 ‘길상사’라는 절을 지어 시가 10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시주하였다. 그녀가 시주의 대가로 받은 것은 ‘길상화’라는 법명과 108염주 하나였다. 또한 그녀는 1997년 창작과 비평사에 사비 2억원을 출연하여 백석문학상을 제정하도록 도왔다.
 
자야를 남겨두고 함흥으로 떠나는 날, 백석은 미농지 봉투 속에 한 편의 시를 남겼다고 한다. 백석이 친필로 쓴 '나와 나탸샤와 흰 당나귀'였다. 자야는 시를 읽으며 몸과 마음이 야릇한 감격에 오싹 자지러질 지경이었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했다. 백석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나타샤를 자야에 빗대어 이 시를 썼다고 전해진다. '나와 나탸샤와 흰 당나귀'를 받은 자야는 평생 백석을 그리워하다 1999년 눈을 감았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린다는 시인의 말처럼, 다만 그녀가 세상에 남긴 한마디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을 뿐이었다.
 
“천 억원의 돈도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고, 인도네시아 문화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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