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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많은 여아, 그게 다 풍수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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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1건 조회 8,123회 작성일 2017-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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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에서 늪까지 걷다 ①
 
참 조화란 이런 것이지 싶었다. 찬란했다. 태양 빛이 대자연을 통해 빛난다는 것, 대자연은 태양 빛으로 생동한다는 것, 뻔히 아는 이 사실이 이리 실감 날 줄이야. 산마을 길로 들어서자 눈이 커지게 빛의 빛깔이 변했다. 그래 과연 태양 빛이다. 산천 논밭 안 가리고 참 오지게 빛난다.
 
과연 태양 빛이다. 산천 논밭 안 가리고 참 오지게 빛난다.
 
아직 덜 우거진 조림지 작은 나무와 가지, 잎들 틈바구니에서 제멋대로 나뒹구는 빛
 
산마을 길로 들어서자 눈이 커지게 빛의 빛깔이 변했다
 
산마을 길로 들어서자 눈이 커지게 빛의 빛깔이 변했다
 
야자수 그 야문 잎을 가늘게 찢어 내는 빛, 바나나 그 풍성한 잎 농염한 부채질에 통통 튕겨나는 빛, 아직 덜 우거진 조림지 작은 나무와 가지, 잎들 틈바구니에서 제멋대로 나뒹구는 빛, 살다 살다 보는 이런 빛, 오메! 이걸 어쩌라고. 이 공짜인 빛 값 어디에 치를까나.
 
'늪', Rawa Gede(큰 늪)를 탐험하고자 한 것은 진작의 생각이었다. 산빠람(인도네시아 한인 등산 모임) 회원들 사이에 설로 오간 것이 몇 년 전부터다. 그러나 아무도 재촉하는 이가 없었다. 그냥 뒤로 밀쳐졌다. 때가 이르렀을까? 아주 간단한 이유로 느닷없이 늪 탐험이 결정됐다.
 
본래 계획은 같은 날 살락산(2,211m)행이었다. 산빠람 회원들은 그대산(Gunung Gede, 2,958)을 다녀온 뒤 충천한 그 사기가 식기 전에 내쳐 살락산 정상을 정복하기로 했다. 비교적 도로 사정이 좋을 무슬림 금식 기간을 택해 무박 2일로 결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살락산은 산빠람 팀의 정복을 원치 않았다. 포터와 가이드를 구하던 중 정상에 오르는 네 코스 중 세 곳이 잠정 폐쇄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나머지 하나도 지난 우기 잦은 산사태로 인해 위험요소가 많다고 했다. 꿩 대신 닭, 관심 밖이던 늪 탐험이 실행된 이유다.
 
'늪', 늪은 그 글자만으로도 몇 가지 느낌이 겹치는 곳이다. 늪이 지닌 가치성과는 영 다른 느낌들이다. 우선 칙칙하고 무겁다. 뭣이든 끌어들여 아주 천천히 물속에 묻어버릴 것 같은 음산한 느낌, 아주 오래 묵은 이야기들이 물렁한 늪으로부터 축축하고 질기게 솟아오를 것 같은. 게다가 Rawa Gede 탐험 길은 절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했다. 누구나 질겁하는 거머리. 
 
"알람 맞춰놓고 잠자리에 든 밤은 왜 꼭 먼저 깨서 알람을 기다린담?"
 
머피의 법칙이라 하던가? 생각이 많은 것이 탈이었다. 전날 밤 나는 심하게 잠을 설쳤다. 자다 깨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가장 쉬운 코스를 택했지만, 편도만으로 다섯 시간여를 걸어야 하는 곳, 그걸 감안해서 넉넉히 자두려던 내 수판질은 삐끗 헛 튕겨지고 말았다. 되돌릴 수 없다. 오기로 때우든가 즐기는 수밖에.
 
괜찮았다. 길을 나서고 동료들을 만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잊혔다. 날씨 효력은 더 놀라웠다. 잠자리의 느낌과는 영 달랐다. 늪이 안긴 미묘한 느낌쯤은 날씨가 던진 잽 두어 개로 간단히 날아가 버렸다. 빛 좋고 바람 좋은 시골 풍광 끗발이 이리 강할 줄이야.
 
길은 험했다. 고도 약 3백쯤의 시골길부터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아스팔트 길이었지만 그야말로 무늬뿐이었다. 게다가 오르내림이 심했다. 지프형의 힘 좋은 차량이지만 과연 오를 수 있을까 걱정되는 경사길이 예고 없이 턱턱 다가들었다. 낭떠러지 같은 내리막도 불쑥 나타났다. 좌불안석, 운전은 기사가 몫인데 힘쓰는 것은 조수석에 앉은 내 차지다.  
 
다리에만 힘이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눈은 더 요동이었다. 풍광이 가만두지 않았다. 눈동자를 이리 빨리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목도 쉴 틈이 없다. 저절로 솟는 감탄사 내뱉기에 바쁘다. 숨쉬기는 뒷전임에도 들숨 날숨 자동이니 놀라워라 인체의 절묘함이여.
 
반세기 세월이 더 흘렀고, 국가와 지역도 다른데 벼 터는 모습은 왜 이리 같을까?
 
별난 현장도 있다. 주유기다. 길가 몇 집에 신식 주유기가 딱 한 대씩 설치되어 있다
 
한 모퉁이 돌아드니 아! 벼 타작 풍경이다. 눈 비비고 볼 것도 없다. 딱 내 어릴 적 그대로다. 반세기 세월이 더 흘렀고, 국가와 지역도 다른데 벼 터는 모습은 왜 이리 같을까? 아무리 봐도 민속촌의 연출이 아니다. 별난 현장도 있다. 주유기다. 길가 몇 집에 신식 주유기가 딱 한 대씩 설치되어 있다. 제대로 된 주유소가 까마득히 먼 상황에서 이것 참 괜찮은 아이디어다. 구닥다리 방식 벼 털기와는 영판 안 어울리는 신식이다.  
 
좁은 길, 반대편에서 오는 트럭을 만났다. 양쪽 다 물러서기 만만치 않다. 사람이라면 부둥켜안고 길을 바꾸기도 하련만, 차는 서로 비빌 수가 없다. 계곡이 잡아당기는 느낌을 아찔하게 견디고서야 서로의 갈 길을 간다. 아찔함이 지나자 짜릿함이다. 칼끝처럼 솟아오른 바위산이 우뚝 다가온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소스라쳐 숨고 마는 산, 그렇게 나타나고 숨기를 몇 번 반복하던 산, 어느 사이 옆으로 느긋이 나앉는다. 그리고 잘 가라고 머리를 조아린다.
 
고추밭이 스쳐 지나가고, 파밭이 흘러갔다
 
고추밭이 스쳐 지나가고 파밭이 흘러갔다. 조촐한 삶으로 여유가 넘치는 집들이 연이어져 있다. 벼를 말리는 마당이 닿을 듯 차창 밖에서 흐른다. 뛰노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만져질 듯 스친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새로움 청아한 음표로 떠다닌다. 내려서 걷고 싶다. 걷다가 구멍가게 들려 봉지 커피 한 잔 놓고 노닥거리다 가고 싶다. 비까번쩍한 도심의 빌딩 숲에서는 찾기 어려운 평화가 뭉텅이로 푸르른 곳, 나도 함께 푸르러지고 싶다.
 
아~ 어쩔 수 없는 이 촌티, 산세 좋은 시골만 만나면, 햇빛 좋은 산야만 만나면 도지는 병. 아마 내 평생에 정녕 못 벗을 이 촌티. 곰팡이 날 촌티가 Rawa Gede 이정표로 멈췄다. 그로부터 길은 더욱 험해졌다. 지난 우기에 점령군처럼 휩쓸고 간 폭우의 흔적들을 감추는 공사판이 여기저기다.
 
"어머~ 저 싱싱한 파 좀 봐요?"
 
작은 트럭 한 대가 다시 길을 막고 섰다. 수확한 파를 적재하는 중이다. 길이 막혔으니 잠시 차가 멈춰야 한다. 동행한 두 여인이 다짜고짜 내린다. 어쩌자는 걸까? 도매로 넘기는 값에 좀 더 얹어 주겠다고 흥정이다. 한 뭉치 파가 차 트렁크에 실렸다. 두 여인은 득의만면이다. 싱싱한 것 좀 보라고? 파 향이 너무 좋다고? 차 주인은 차에 밸 파 냄새에 울상인데. 어쨌든 너무 많다. 몇 집 나눈다지만 파전, 파김치, 파절임 등 한 며칠 파 잔치 좀 하겠다.
 
한 뭉치 파가 차 트렁크에 실렸다. 두 여인은 득의만면이다. 싱싱한 것 좀 보라고? 파 향이 너무 좋다고? 차 주인은 차에 밸 파 냄새에 울상인데
 
같은 햇빛도 돌길에 구르니 뙤약볕이다. 따글따글 소리가 날 듯하다. 돌길 옆으로 제법 큰 도랑이다. 철철 물이 흐른다. 늪으로부터 흐르는 물이다. 벌거숭이 아이들이 멱을 감고 있다. 얘들이 차 안 아재들의 추억에 불을 댕겼다. 앞다퉈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벼를 터는 모습이 한 치도 다르지 않더니 연을 날리던 아이들, 멱 감는 아이들 모습까지도 우리들의 옛 모습 그대로다. 아무래도 꾸몄지 싶다. 이리도 같을 수가 있는가?
 
Rawa Gede, 이름은 ‘큰 늪’인데 늪의 뽄세가 영 기대에 못 미친다
 
배 몇 척 물이 홀쭉해진 늪의 건너편 연안에서 졸고 있다
 
표고 970m Rawa Gede에 다다랐다. 오전 9시 30분, Suntul City 톨게이트를 벗어나 집결 장소로부터 자동차로 2시간 10분여를 달려온 일차 목적지이자 걷기 시작 지점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이름값에 턱없이 부족하다. Rawa Gede, 이름은 '큰 늪'인데 늪의 뽄세가 영 기대에 못 미친다. 쉽게 헤아릴 수 없는 범위는 그렇다 쳐도 수량이 첫눈에 초라하다.
 
건기라 그렇다고 했다. 물이 넘치고 낮게 깔린 구름이 바람 따라 휘몰아치는 우기에는 제대로 오금 저리는 곳이라 했다. 배 몇 척 물이 홀쭉해진 늪의 건너편 연안에서 졸고 있다. 시즌에는 성업을 이룰 늪 주변 길가 판잣집들도 금식 기간과 겹쳤기 때문인지 모두 문을 닫고 있다. 세상사 참 공평찮다. 좋은 날씨에 쾌재를 했더니 늪의 분위기는 좋은 날씨 땜에 영 모양 빠진다.
 
시즌에는 성업을 이룰 늪 주변 길가 판잣집들도 금식 기간과 겹쳤기 때문인지 모두 문을 닫고 있다
 
"사공을 찾아볼까요? 무려 천 미터 고지에 있는 보기 드문 늪입니다. 배 한번 띄워 봐야죠?"
 
김간뜽. 김이제 회원이 동시에 어른다. 빈 소리인 줄 알기에 누구도 호응하지 않는다. 주섬주섬 꺼내는 간식들이 답이다. 그래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해두어야 한다. 일행을 내려놓은 차 네 대는 이미 떠났다. 약 5시간 후 도착지에서 우리를 마중할 것이다. 이제부터 의지할 데가 없다. 고행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떠나기에 앞서 화장실을 찾았다. 공중화장실이 없다. 염치불구 찾아 들어간 곳이 장소를 임대하는 판잣집이다. 시즌이 아니거니와 금식 기간이라 임시 휴업 중이라 했다. 집의 반은 늪에 걸쳐 지었다. 화장실, 오직 막혔을 뿐인 공간이다. 대변기도 소변기도 없다. 볼일을 보고 저장된 물통에서 물을 퍼 끼얹으면 끝이다. 그 폐수 소화는 고스란히 늪의 몫이다. 늪에서 흘러나간 물에 멱 감던 아이들은 어쩌라고.
 
딸부잣집 딸들과 엄마
 
나오다 보니 들어갈 땐 못 보았던 가족이 있다. 일 나갔다는 아빠만 없다. 크고 맑은 눈을 가진 딸만 넷이란다. 조금 전 동료가 쥐어준 초콜릿을 꺼내 건넸다. 네 딸 누구도 부끄러워할 뿐 손을 내밀지 않는다. 평온한 표정 건강한 엄마가 감사하다며 받는다. 이해를 구하고 사진 한 컷 찍었다. 오는 차 중에 들은 소리가 있어서다.
 
"잘 살펴보세요. 산세 지세가 음기가 매우 강한 형국입니다. 이런 풍수에서는 여아들이 많이 탄생할 수밖에 없어요."
 
허튼소린 줄 알았는데 근거가 있는 말일까? 돌이켜보니 오는 길에 눈에 띤 아이들 중 유난히 여자아이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럼 뭐지? 언덕 위에서 연 날리던 아이들, 도랑에서 멱 감던 아이들은 모두 남아들이었는데. 스쳤던 산세를 복기해본다. 긴가민가다.
 
떠나야 한다. Rawa Gede 서남쪽 산을 넘어야 한다. 이차 목적지도 늪이다. 또 다른 늪지 찌사돈(Cisadon)이다. 늪과 늪 사이엔 무엇이 산빠람 일행을 맞이할까? 거머리가 많은 길이라 했는데.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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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zon님의 댓글

sozon 작성일

야자나무와 바바나 나무만 없다면 한국의 시골풍경과 다를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파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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