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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남원 광한루원, 송강 정철의 꿈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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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1건 조회 8,568회 작성일 2017-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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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다섯 부부 <길동무>,
인상파식 고국 여행기 4
 
 
20여 분 정도였을까? 길동무는 해설사와 약속한 시각보다 남원의 광한루원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일단 들어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입장권을 내고 정문 안으로 들어섰다. 탁 트인 잔디밭을 빙 둘러싸고 끌밋한 정원 다정하게 펼쳐져 있다. 그래 이 느낌이다. 시간이 두텁게 쌓인 데서 오는 안온함. 아늑한 기운 쪼르르 달려와 여행자를 반긴다. 몇 발자국 들여놓은 가을 기운 하르르 추임새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딱 ‘사랑가’ 쪼다. 사랑가 한 구절 귀에 들리지 않는데, 미소를 잣는 그 구절들 또르르 눈앞에서 구른다. 과연 사랑의 정원이지 싶다. 남원을 사랑의 여행지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겠다 싶다. 저만치 잔디밭을 가로지른 왼편의 완월정(玩月亭)이 단박에 눈을 사로잡는다. 나무 사이, 대숲 사이로 펼쳐진 연못은 요염한 곡선을 긋고, 그 너머 광한루는 다소곳 묵언수행 중.
 
이거 참 썩 괜찮다. 느낌 참 좋다. 한자리에 서서 전체를 찬찬히 조망하는 것, 서둘러 탐방을 시작하는 것과 영판 다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덕에 누리는 여유가 몇 곱절이다. 그래 더러 이런 식 첫 대면도 괜찮겠어.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행복’하다더니 기다리게 하는 것 보다 기다림이 이리 흡족함을 안기지 않는가.
 
 
그도 길동무 마음을 꿰뚫었을까. 도착한 해설사 대뜸 길동무를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로 이끈다. 정취 넘치는 돌 의자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곳. 길동무도 해설사도 각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피차 편하고 좋다. 여행 중 어딘가에 걸터앉으면 시작되는 것이 있다. 이야기다. 그로부터 길동무는 광한루가 오래 빚은 이야기 속으로 천천히 빠져들었다.
 
“광한루원은 명승 제33호입니다. 우리나라 4대 누각의 하나인 광한루는 선녀가 산다는 달 속 궁전 이름인 광한전(廣寒殿)의 '광한청허루'(廣寒淸虛樓)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곳은 축조가 1461년인데, 당시 남원에 부임한 부사가 근처 강물을 끌어다 연못을 조성하고, 화강암과 강 돌로 4개의 무지개형 오작교를 조성해 월궁(月宮), 즉 달나라 궁의 모습을 갖췄다고 합니다.”
 
달나라에 선녀가 산다는 이 솔깃한 이야기, 대체 얼마나 오래전부터 있었던 이야기일까? 근데 도대체 누가 달나라 궁전에 갔지? 선녀가 사는 곳을 그리도 자세히 봤지? 그곳을 본떠 연못을 조성하고 비 온 후 무지개 걸린 형상으로 아름답게 오작교를 빚었지? 그러함으로 광한루원이 우러러만 볼 수 있는 넓은 은하 세계, 즉 천체우주를 상징하고 있다니 참으로 놀랍고 놀랍다.
 
“광한루원은 남원에 유배를 온 조선의 정승 황희가 그 시작입니다. 그는 남원 유배 때 지금의 광한루보다 작은 광통루(廣通樓, 1418)를 지었다고 합니다. 이어 1434년 남원 부사 민여공(閔汝恭)이 증축했고, 1444년 전라관찰사 정인지(鄭麟趾)가 광한루라 고쳐 부른 것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광한루원은 1584년 송강 정철이 나서 수리를 했다고 합니다. 이때 송강은 전설 속 봉래 · 방장 · 영주 삼신산(三神山)의 형상을 연못 속에 들였어요. 그로부터 광한루원이 광한루, 오작교와 더불어 더욱 천상의 선경 월궁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옳거니 광한루원은 송강의 꿈이었겠다. 수려한 시조 107수를 남긴 시인, 읽는 이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는 절창의 가사 문학을 지은 대가 송강, 작품마다 인간미, 산수의 자연미, 선비 취향의 기풍과 호방함을 담아내 시대가 변해도 대문호로 추앙받는 정철이 아닌가. 그가 꿈으로 품은 신선 사상, 즉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현실로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꿈 중 으뜸이었으리. 그러니 나는 여기에 한 구절 옮기지 않을 수 없다.
 
"백쳔동 겨태 두고 만폭동 드러가니/ 은 가튼 무지개, 옥 가튼 룡의 초리/ 섯돌며 뿜난 소래 십리의 자자시니/ 들을 제난 우레러니 보니난 눈이로다(기술 부족으로 고어 그대로 옮기지 못하고 느낌만 옮긴다)"
 
시각과 청각의 대조, 직유법과 은유법의 절묘한 구사, 거리감을 시간상으로 드러낸 정철 묘사법의 진수가 드러난 대목이다. 참 뜬금없는 고백이거니와 나는 송강 문학의 신봉자다. 그의 문학 세계는 내 서예 학습의 주 대상이었고, 내 서예 작품의 주 소재였다. 예나 지금이나 송강 문학 한 대목 소재 삼아 붓을 들면 송강의 리듬과 흥취가 절로 내 붓을 이끈다. 송강의 문학은 내 이런 저런 글쓰기의 큰 지침이다. 광한루원이 어찌 감격할 장소가 아니랴.
   
▲ 광한루 사랑 이야기에 빠져들어 이리저리 걷는 사이 물길을 만났다. 광한루원을 선경으로 만드는 절대적인 요소 요천강(蓼川江)에서 끌어온 물이다.
 
아 넉넉한 이 물길은 또 뭐람? 광한루 사랑 이야기에 빠져들어 이리저리 걷는 사이 물길을 만났다. 광한루원을 선경으로 만드는 절대적인 요소 요천강(蓼川江)에서 끌어온 물이다. 돌로 쌓은 수로를 따라 오동통한 두께로 때로는 제법 소리를 내며 광한루원을 가로지르는 물, 물은 가다가 커다란 연못을 이룬다. 그리고 연못을 가로지른 오작교를 유유히 떠받들고 있다.
 
▲ 물은 광한루 불러들여 살랑살랑 지붕을 먼지를 씻고, 둘러선 나무들 불러들여 물낯 거울을 제공한다.
 
물은 광한루를 유혹해 살랑살랑 지붕의 먼지를 씻고, 둘러선 나무들에게 거울을 제공한다. 손님 많은 곳이니 형상 좀 가다듬으라고 물낯을 내민다. 연못엔 비만으로 관능미 넘치는 주인공들이 있다. 떼를 지어 노니는 잉어들이다. 근데 잉어들 왜 길동무를 자꾸 따라올까? 함께 한량놀이 하자는 걸까? 춘향이와 이몽룡이 사랑가로 노는 꼴을 너무 많이 봤나?
 
▲ 오작교와 광한루 앞 지킴이 돌 거북을 벗 삼아 유유히 노니는 광한루원 연못의 잉어들
 
▲ 광한루원을 거니는 현대판 춘향과 몽룡.
 
때맞춰 어디선가 한 소리 구성지게 깔린다. 가까이에서 판소리 공연이 있나 보다. 들리지 않아도 느껴지던 소리, 이제는 진짜 들린다. 난데없이 파고드는 선율이 또 있다. 타레가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 그래 그곳과 이곳이 다 없는 물을 멀리서 끌어다 생명력을 불어넣은 곳이다. 둘 다 인공조성, 알람브라 궁전이 웅장
한 인공미가 절정이었다면, 광한루원은 소담한 자연미가 절정이다. 문화의 특별함이 이리도 다르니 얼마나 흥미로운가.
 
“광한루원은 정유재란(1597)으로 모두 불에 탔다고 합니다. 1638년(인조 16)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광한루원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춘향전’에 의해서입니다.”
 
흥미진진, 드디어 ‘춘향’이란 단어가 나왔다. 춘향전은 대게 작자 미상, 연대 미상으로 알려져 있다. 영조 정조 시대(1724~1800. 75년간 통치) 판소리와 설화로 맥을 잇다가 소설화를 이루었다. 현재 한글본 · 한문본 · 국한문혼용본 등 이본이 70여 종임을 백과사전이 밝힌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창극 · 현대소설 · 연극· 영화 등으로 개작되었다. 시대의 난맥상을 흥겹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에 버무린 이 흥미로운 내용이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새로운 창작으로 전개될까?
 
거닐었다. 노닐었다. 혜안을 가진 선현들이 자연에 순응하고, 합일하려는 노력으로 조성한 광한루원을 한껏 즐겼다. 광한루 앞을 지키는 커다란 돌 자라 이야기를 듣고, 열녀 춘향의 영정이 배치된 사당을 들여다보며 그림 속 춘향의 자태를 훔쳐보기도 했다. 오작교를 건널 때는 부부간 손을 꼭 잡고 건넘으로써 백년해로를 보장(?)받았고, 완월정에 올라서는 당찮게도 판소리꾼을 흉내 내며 즐겼다.
 
 
▲ 월매집 정원
 
거슬린 것도 있었다. 놀이 시설로 만들어 놓은 그네의 줄이 너무 무겁고 길었다. 웬만큼 숙련되지 않고는 타기가 어려웠다. 사소한 것이라고? 아니다. 때론 사소한 것이 중요하다. 푼돈 벌이에 치우쳤다 싶은 곳도 있었다. 지정된 곳에 동전을 던져 성공하면 판소리 한 대목이 흘러나오는 월매집 정원 연못에 설치한 이몽룡 상이다. 어렵게 성공하고 득의만면 판소리 좀 듣겠다 싶은데 겨우 한 소절에 그치고 만다. 쩨쩨하다고? 그래도 좋다. 다만 충언을 무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민원 넣어야 혀. 나 민원 넣을 겨∼”
 
최근 화제에 오른 아직 상영 중인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주인공 나옥분 여사가 내뱉은 대사가 아니다. 정문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이몽룡과 성춘향 상 때문에 길동무들이 공감한 말이다. 앉을 곳을 만든 것으로 보아 광한루원을 찾는 이들의 촬영을 위한 세트, 근데 이게 영 볼썽사납다. 조성한 상도 그렇거니와 배치해놓은 꽃과 나무, 아치의 색 구성도 엉성하기 이를 데 없다.
 
▲ 광한루원을 찾는 이들의 촬영을 위한 이몽룡 성춘향 모형 세트, 근데 이게 영 볼썽사납다. 최소한 위치를 옮겨야 한다
   
 
시각이나 느끼는 미감이 좀 다르다고 대뜸 틀렸다는 게 아니다. 살펴보면 알 것이다. 그것이 누원 전체는 물론 왼쪽으로 빤히 보이는 완월정의 격(格)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부탁한다. 송강 정철의 입장이 되어 헤아려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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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전설님의 댓글

가을의전설 작성일

민원을 넣읍시다.... 청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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