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경영 이야기-8] 자신의 포트를 잘 활용하라! 성공은 따 놓은 당상!
페이지 정보
본문
[경영탐문, 경영이 예술이다]
- 포트 역할의 묘란 이런 것, 최태립 대표의 경영 세계-
포트(port),
접속 매개다. 항구나 공항을 나타내는 용어이니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외부세계와 접속하는 관문이란 의미야 자연스럽게 따라 붙는다. 컴퓨터에서도
마찬가지, 컴퓨터에서 포트란 외부의 다른 장비와 접속하기 위한 플러그와 같은 접점을 말한다.
여기 포트(port)의 가치로 삶을 멋지게 다스리는 경영인을 소개한다. 회사경영, 사회활동, 나눔, 자기 다스리기까지 포트의 특성을 창의적으로 가꾸고 펼치는 분이다. 바로
최태립 대표시다. 그는 해운 경영의 전문가다. 포트적 능력은
대학의 전공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길러졌다. 그리고 그것이 2006년
창업 후부터 제대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 하라고 하잖아요? 해운경영은 제 전공이니 제가 가장 많이 공부한 분야지요. 동남아 해운에 근무한 것이 19년여네요. 현장에서 숨 쉬는 실제를 직접 체험하고 체득하는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제게는 그야말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 제가 좋아하는 일인 해운경영이 창업으로 이어졌으니 잘 된 것이지요? 지금까지 나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경남 거창 출생(1963년생)이다) 진주 대아고를 거쳐 한국 해양대학교 해운경영학과를 졸업했다. 87년 12월 동남아해운에 입사하여 근무하던 중, 2004년 1월 인도네시아 법인장으로 인도네시아와 인연을 맺었다.
필자는 최태립 대표와 대담하고 글로 정리하며 ‘발견이 예술’임을 또 되뇔 수밖에 없었다. 최태립 대표의 창의적 포트 역할에 두텁게 감동 먹었기 때문이다. 그의 포트적 역할은 해운경영에만 머물지 않았다. 사회 활동에서도 자기 경영에서도 폭넓게 요동쳤다. 그가 하는 일 모두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또 다른 기반으로 삼았다.
PORT, 필자는 최 대표로 인해 사람마다 그 나름의 포트적 역할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쳤다. 경영탐문, 최태립 대표 이야기로 인해 모두가 마음열고 자신의 포트적 역할을 점검하는 기회가 될 것을 믿는다.
“2006년 12월 인도네시아에서 PT. ITL 창업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인도네시아 수출입 관련 화물 및 port 정보 공유에 힘쓰고 있고요.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ITL은 배송을 총괄하는 업체(shipping general Agency)라고 하겠는데요.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현재 인도네시아 top 3 정도는 되지 않을까 자부합니다.
현실이 어렵다면, 접속의 지혜가 필요한 때
“19년여 종사하던 회사를 퇴사하자 마음이 복잡했어요. 특히 퇴직 단계에서 승계 받은 2세 경영자에게서 느꼈던 실망감이 쉬 사그라지지 않았어요. 도중하차가
자의반 타의반이었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문득 문득 솟구치는 화가 다스려지지 않았어요. 함께 일하자는 제안도 있었어요. 그러나 다시 취직을 할 경우 내
생각과 행동의 결정권을 또 회사에 위탁해야 하잖아요? 그것이 싫었어요.
다만 제안하신 분께는 감사한 마음 컸는데요. 행동으로 표했지요. 인도네시아에서 할 수 있는 사업 약 20가지를 간추려 리포트 했습니다.”
“창업을 해야겠는데, 온전한 창업을 하려면 화를 다스리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때 마침 위빠사나 명상의 기회가 찾아왔어요. 미얀마 참메이 메디센터에 한 달간 단기 출가를 감행했지요. 원래 규정에 의하면 3개월의 시간이 필요한 수행 프로그램이었는데. 제 사정을 아는 한 스님의 도움으로 기간을 줄일 수 있었고요. 1일 1식에 하루 12시간씩 수행에 몰두해야 하는 과정이었어요. 전화기도 껐습니다. 한시적이었지만, 세상과 단절이었지요. 저를 돌아보고 현실을 직시할 참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최 대표는 이후에도 5년간 매년 2회씩 일주일 수행에 참여했다고 한다. 현재는 매일 30분 정도 메따 수행을 실시하는데, 언제라도 마음이 복잡하다 싶으면 좌선하고 호흡에 집중한다. 사람마다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이 있으리라. 그는 좌선 명상을 최고로 여긴다 했다. 필자도 월정사 단기출가학교 29기 수료자다. 공감대 백퍼였다는 의미다.
그는 창업 당시 해운업 관련 경기가 최고조였다고
했다. 행운이 겹친 거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정황이나 흐름만으로
쉽게 성공에 이른 사업이나 사람, 세상 어디에도 없다. 소설이나
드라마에마저 찾아보기 어렵다. 창업 초년병에게 일이 많이 밀려들 리 없다. 일이 주어진다면 규모가 작고 과정이 복잡하며 난해한 일들이나 차례가 오기 마련.
“문제가 생긴 현장은 대게 오지였습니다. 이익의 크고 작음이나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았어요. 무조건 현장으로 뛰어갔지요. 한마디로 찬밥 더운
밥 가리지 않을 상황 때문이기도 했지만, 책상머리 이론보다 현장에서 대안이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제 신념이었으니까요.”
현장에 도착하면 문제의 원인과 결과부터 정확히 분석했다고 했다. 현장에 가보니 보이는 게 많더라고 했다. 지역의 항구라 해도 포트는
포트다. 그리고 그 지역의 요충지일 것은 재론의 여지도 없다. 그는
맡은 일 외에도 어느 나라 어느 회사의 배가 왜 정박해있는지 살폈다. 파고들다보니 그건 덤이 아니라
가치 큰 실체가 되었다. 효율 괜찮은 정보들이 수집한대로 쌓였다. 충만한
포트의 사명감으로 포트를 살피니 얻을 것이 많았음이다.
“의뢰받은 건은 물론 향후 실효 가능성 높은 주변 정보까지 의견을 덧붙여 리포트를 작성하고 제출했어요, 의뢰사로선 창의적 리포트로 간주 되었을까요? 저도 모르게 입소문이 퍼졌던가 봅니다. 그 입소문 효과는 곧 피드백 되었고요. 당시는 주로 어려운 일 위주로 제게 맡겨졌어요. 그거나 그것은 오히려 제 진가를 높이는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필요와 효율 사이에 해야할 것들
“그래서 저는 사업하면서 잘 한 거 하나 내놓으라면 책상에 안주하지 않은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전역(Java, Kalimantan, Sumatra, Sulawesi, Papua 등)을 발로 뛰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보가 필요한 곳과 활용처에서
의뢰하면 저는 서슴없이 제가 가진 정보들을 공유합니다. 제가 수집하고 체험한 생생한 정보들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소중한 것이 되고 새로운 바탕으로서 실마리가 된다면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요.”
최태립 대표께서 세운 원칙 중 하나가 인도네시아에 상주하는 한국인 업체와의 과당 경쟁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이런 원칙은 스스로 좀 더 넓게 눈을 돌리게 했으리라. 현재 거래
국가가 14개국이라는 것이 그 증거다. 연 15회가 그의 해외 출장 평균이라 했다. 때마다 다지고 넓히고 또 새로운
정보를 얻는 기회 아니랴.
연륜이 쌓이면서 최 대표는 비즈니스 필요와 효율, 준법에 맞춰 법인을 늘렸다. 2013년 9월에 PT. KAL(Join venture)을 추가 설립했다. 끄라까따우 포스코 구내 물류와 창고, 하역 등 포스코 인도네시아 진출과 활동에 필요한 부분을 담당하기 위해서다. 모든 물류정보 제공 역할도 맡고 있다. 이 외에도 그의 예하에는 철강 무역회사, PT. Management consultancy가 있다.
“고등학생 땝니다. 가나안 농군학교 프로그램을 체험한 적 있어요. 그때 정신문화 연구원 교수의 특강을 들었는데요. 강의 중에 중국이 개방될 거라고 확신하더군요. 그게 제 귀에 꽂혔어요. 철의 장벽이 개방된다니, 우리나라와 수교 전일 때이니 당시 제게는 좀 충격이었지요. 다른 한편으론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개방에 관한 공감이 컸고 기대도 생겼어요. 이건 바로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동남아 해운에 취업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동남아 해운에 근무하면서도 기회가 될 때마다 중국 개방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피력했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틈틈이 영어실력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어 학원에 등록하여 중국어를 익혔고, 일본어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 노력이 후에 중국과 대만을 뚫는 결과로 이어졌고 변함없이 다국적 거래의 힘으로 작용하죠.”
자리이타, 스스로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그는 소문난 나눔 실천자다. 그의 나눔 크기에 관해 주변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의 나눔의 특징은 편향이 없기 때문이다. 멀고 가까움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액수와 횟수도 보통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래서
궁금한 것은 스스로 정한 년 30만 불 기부의 배경이다. 그
큰 금액이 막연한 설정이었을 리 없지 않은가. 열심히 일해서 그 정도 기부를 실행하는 능력자가 되겠다는
다짐 아니겠는가. 누구에게나 어떤 일에 관해 목표가 있고 설정은 참 다양할 수 있다. 다만 기부를 기준으로 소득의 목표치도 정했을 것이니 이 얼마나 신선한가?
“어느 순간부터 자리이타(自利利他)가 제 삶의 절대 가치가 되었습니다. 작으나마 제가 사회 기여에 동참하는 원천은 ‘스스로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자’는 자리이타가 기반입니다. 불가의 교리에 따른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는 실천 강령인 셈이고요. 즉 집착이 없는 베풂을 실행하는 것인데요. 그래서 디테일한 것까지 다 밝힐 필요를 못 느낍니다. 가족들에게는 다 밝히는데, 자식들에게는 제 2배 정도의 목표를 세워 실천할 것을 권고 하지요.”
필자는 최 대표께서 자리이타 정신의 소유자라는 것을 진작 알았다. 그가 홀인원(2011년)을 하고 후에 기념패를 제작할 때다. 그는 홀인원 패를 필자에게 작품으로 부탁했다. 필자는 그가 바라는
대로 자리이타(自利利他)를 휘호하여 작품을 꾸미면서 거기에
홀인원을 기념하는 내용을 새겼다. 작품이자 홀인원 패(사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오직 하나뿐인 홀인원 상징물은 그렇게 창작되었다.
여담이다.
그가 홀인원 당시 받은 부상이 자동차 한 대였다. 그 부상으로 받은 자동차 값보다 홀인원으로
인한 나눔으로 지출한 돈이 훨씬 더 많았다는 것은 지인들이 두루 아는 사실이다.
“홀인원 하나로 많은 분들과 함께 즐겼습니다. 그러나 아직 자동차 바퀴 하나 값 정도는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밤 저 기념작품으로 인해 그마저 다 소비해야 할 것 같네요.”
그가 작품을 받아들고 만족해하면서 한 말이다. 사람은 모두 ‘自利’, 즉 자기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 풍진 세상 살아남기 위해서다. 이타(利他)는 그래서 더 필요하다. 혼자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함께 즐겁게 살아야 하니까.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타인도 이롭도록 돕는 자리이타, 포트의 특성을 삶에서 실천하는 최 대표께 참 어울리는 가치다.
그대의 포트, 바로 지금 어떤 모습인가?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포트다. 누군가와 날마다 소통한다.
알게 모르게 연결 고리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자신의 포트적 존재를 대부분 잊고 산다. 그렇다면 최 대표는 과연 언제부터 포트로서의 지평을 넓히고 역할에 충실했을까?
“창업은 저를 많은 부분에서 바뀌게 했어요. 구체적인 인생 목표도 그때 세웠으니까요. 가족 여행도 그때 계획하고 실행했는데요. 16일 동안 가족과 함께
인도와 티벳의 8대 불교 성지 순례는 여러모로 특별했습니다. 가족
모두가 힘을 많이 얻는 계기였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이 순례 후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고요.”
그 여행엔 스님 한 분도 동행 했었다고 한다. 성직자로서 성지 순례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스님이었다. 스님이 지닌 깊고 다양한 시각과 고견이 순례길에서 포트적 역할로 빛났을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함께 한 최 대표나 그 가족들 또한 모두 나름의 관점을 기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으리라.
“두 번째 가족 여행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4,200고도) 베이스캠프 까지 18일 Tracking인데요. 세 번째 여행은 실크로드의 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약 20일 탐방이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평생 써도 모자라지 않을 나름의 에너지가 갖춰진 여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도네시아 한인 사회에서 최태립 대표의 활동은
참 폭이 넓다. 한인 상공회 KOCHAM의 부회장이며, 한인 중소기업 모임 KOSA의 수석부회장이다. 민주평통 자문위원이자 재인니한인회 이사이며 에너지협의회, 자유총연맹에도
동참하여 그의 역량을 보태고 있다.
그런데 눈여기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는 참여하는 어느 단체에서도 수장이 아니다. 쉽게 말해 앞에서 이끌기보다 뒤에 미는 자리에 있다. 여기서도 그의
무주상보시 신념, 또는 포트적 행동 양식이 잘 드러난다.
“‘방하착(放下着),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이 말은 평소 늘 되뇌는 생활의 지침입니다. 참 나의 주인으로서
저를 늘 바로 서게 합니다. 어느 곳에 처하든지 저로 하여금 수처작주(隨處作主), 저를 저답게 지탱하게 하지요."
“마음을 내려놓으시게(放下着)!”,
“마음에 지닌 것을 모두 가지고 떠나시게(着得去)!”
불가의 가르침이다. 과연 오늘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마음에 담고 나아가야할 것들은 또 무엇일까? 마음을 비우면 이내 채워지는, 이 순환원리는 불변이다. 그러나 아무리 비워도 꼭 하나 남는 것도 있다. 자기 십자가다. 누구도 대신지지 못하는 자신이 지고가야 할 십자가.
“제 지론은 무조건적 합일입니다. 공자가 외친 인간과 자연의 거시적 합일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한인들이나 단체 간의 합일이죠. 예컨대 인도네시아에서 창업은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성장은 창업만큼 쉽지가 않지요. 진입 장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높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합일은 지극히 현실입니다. 인도네시아 화교 상권의 규모를 보세요. 크고 높습니다. 일본인들이 이룬 상권도 한인의 상권과는 비교 불가죠.”
“화교나 일본일들 상권이 이렇게 큰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살펴봐야 할 것은 이렇게 큰 상권에도 분열이 적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잘 뭉쳐있기 때문이죠. 결론은 간단합니다. 한인들도 잘 뭉쳐야 해요.”
최 대표는 개인적인 인맥이나 로비에는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함께 협력하여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최 대표는 경영도 지론도 정직한 직립보행이다. 왜 불편함과 부딪치지 않았으랴. 무사안일 현실주의자들에겐 때론 낯설 수 있다. 단체 안에서는 때로 이상주의자로 비춰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합쳐 행동하면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음식 한류를 위한 <예원> 설립
최 대표께선 얼마 전 의외의 행보를 했다. 2023년 6월 자카르타 남부에 오픈한 한국레스토랑 예원에 전적으로 투자한 것이다. 한인이 경영하는 한식점 중 최대 규모라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바다. 상차림을 살피니 제대로 된 한정식 전문점 포스 그대로다. 최 대표 역량이 발휘될 포터적 역할이 하나 더 늘었다 싶다. 그답게 성공적으로 이끌 것이라 믿게 되는데, 그러면 그렇지 이면의 계획들이 두텁다.
“예원을 설립한 배경엔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다만 이제 시작입니다. 지금 다 밝히고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봐요. 방법과 형식은 시간이 가면서 하나씩 드러날 것입니다. 일단 한류를 기반 삼고 음식 한류를 다지는 것이 중심입니다. 아울러 한국의 전통음식 맛과 문화 전달, 그리고 더불어 누린다는 몇 가지 목표가 분명하죠. 품격을 갖춘 한식점으로 확고한 자리를 굳히고 난 다음 펼쳐질 일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경영하는 법인들 모두 비슷한데요. 함께 가꾸고 키워나가는 직원들에게 지분이 나뉘어 있고 경영도 승계
가능하도록 조치되어 있습니다. 안정적이고 연속성 강한 비즈니스의 바탕이라 생각하므로 취한 조치죠. 새로 설립한 예원도 마찬가지인데요. CEO를 비롯 셰프, 서비스 등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제 영향력이 너무 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업무의 중요도에 따라 지분을 나눈 이유입니다.”
최 대표와 대담 기념으로 필자는 사군자를 쳤다. 매 · 난
· 국 · 죽 사군자를 한 폭 그림으로 어울러냈다. 매화의 진실과 운치(信韻), 난초의 겸양과
운치(謙香), 국화의 맑음과 기상(淸氣), 대나무의 강함과 유연함(强柔)를 그와 나누고 싶어서다. 사군자의 풍격과 특성 또한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괜찮은 포트적 역할을 해왔으니까.
성경 창세기에는 우주 만물을 향해 이름 붙이는
장면이 나온다. 존재를 인정하면 가치가 생긴다는 가르침이 들어있다. 한
시인은 꽃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다가 와서 꽃이 되었다고 읊었다. 모든 존재가 지닌 포트의 특성을 애정하며
창의적으로 활용하라는 멋진 가르침들,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가까운 이웃 최태립 대표를 통해 또 명쾌하게
확인했다.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 이에 힘입어 각자의 귀한
포트적 역할을 돌아보는 바람이 불기를 기대한다.
바쁘신 중에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신 최태립 대표께 다시 감사드린다. 아울러 최 대표의
하시는 모든 일 더욱 번창하심과 가족의 건강과 행운을 빈다.
※ 이 글은 <인니 한인 사회가 보유한 소중한 자산 기록하기> 여덟 번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재인니한인회가 주최하고, 재인니 한인상공회 KOCHAM이 주관하며 자카르타 경제신문이 후원합니다. 예술가의 시각으로 탐문하고 기록하는 경영 현장과 경영인들의 창의력과 실천 능력, 다음 편을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경영탐문 내용은 영상으로 제작되어 You Tube 채널 <손작가 TV> 경영탐문 섹션에 업로드 됩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관련링크
-
https://youtu.be/vxzPTjCg5HE
1056회 연결
- 이전글[인도네시아 한인들의 경영 이야기-9] 지는 것이 이기는 것, 베풀라! 23.10.05
- 다음글[인도네시아 한인들의 경영 이야기-7] 변화에 도전하라! 안정은 저절로 찾아질 것이다!! 23.08.0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