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向人尋書 : 사람에게서 서예 찾기 ]재미 창작! 재미가 힘이 센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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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人尋書 : 사람에게서 서예 찾기
재미 창작! 재미가 힘이 센 이유
재미와 창작 사이
재미를 강조하는 학자가 있다. 사람의 삶은 뭘 하든 재밌어야 한다는 거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전 명지대 교수), 그는 재미없으면 다 꽝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지금, 재미있게 살고 있는가?”라고 들이댄다. “재미가 창조를 만든다!”고 창작자들의 감정선을 건드린다. 그래서 재밌다. 그의 재미 논리가 흥미롭다. 재미가 뭐지? 하고 곱씹게 된다.
재미의 위력이 잘 드러난 사례가 있다. 미국 프로 골프 투어 주관 단체 PGA가 한국의 프로 골프선수 최호성에 주목한 것이다. PGA는 2019년 페블비치 프로암(AT&T) 대회에 최호성을 특별 게스트로
초청했다. 이유가 흥미롭다. 낚시질 할 때 고기를 낚아채는
듯한 그의 골프 스윙 동작 때문이니까. 최호성(한국투어 2승. 일본투어 3승)은 한국 내 프로선수들로 한정해도 도드라지는 선수가 아니다. 그런데
세계 유명 프로 골퍼들 몇이 최호성을 흉내 낸 영상 짤을 남겼다. 재미있는 스윙이 최호성의 가치를 제대로
높인 것이다.
▲최호성 프로 스윙
서두에 재미를 꺼낸 이유가 있다. 재미가 창작의 가치와 학습의 효율을 높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서예 학습자들께 이유를 물으면 좋아서 즐긴다고 할 거다. 그러나
좋아서 즐기는 것과 창작의 관계를 물으면 ‘글쎄요’라는 답
많으리라. 창작이 서예 학습의 결정체요 목적임에도.
창작과 학습, 뗄 수 없는 하나다. 혹 때가 이르러야 창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 빨리 바꿔야 하지 않을까? 창작 개념부터 쉽게 정리해보자. 오늘 내가 긋는 선은 다 처음 드러나는 새로운 것이다. 세상에 없던 것이 생겨나는 것이니 분명 창조다. 거기에 자기의식만 담는다면 첫 획부터 다 창작이란 의미다.
재미의 출처
인간의 즐거움이나 재미의 감정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정서라 했다. 하니 갑자기 ‘재미’의 정의를 외부에서 찾는 것은 부질없으리라. 『재미란 무엇인가』를 저술한 영국의 벤 핀첨도 “재미가 있거나 재미가 없다는 것을 빼면, 재미란 것이 너무나 뻔하고 애매해서 딱히 정의하기가 까다롭다.”고 밝히니 말이다. 재밌는 서예를 위해 향인심서(向人尋書), 사람으로부터 서예를 끄집어내보는 것은 참 좋은 창작방법 아닐까?
서예의 임팩트는 뭘까? 창작이다. 재밌는 창작이다. 이쯤에서
생기는 의문, 재미의 바탕은 어디인가? 둘러보고 돌아보며
찾아보자, 다만 멀리 갈 일이 아니다. 바로 자기가 바탕이니까. 내가 재미없으면 남에게 재밌을 수 없다. 내가 재미없는데 남이 재미있을
것이라 여긴다면 그 창작은 실패가 뻔하다. 차라리 자기의 슬픔을 창작하면 훨씬 효율이 높으리라. 내 슬픔이 다른 사람에게는 흥미 요소요 카타르시스가 될 수 있으니.
향인구서, 다른 사람에게서 재미를 찾아보자. 분명
재밌는 창작을 할 수 있으리라. 최호성 스윙처럼 다른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재미에 내 느낌을 살려내는
창작 말이다. 사람이 재미를 느끼는 순간은 대부분 대동소이하다고 한다.
필자는 서예 창작의 재미를 자유, 전통성이나 정통성과 상호작용, 자발성, 몰입 등에서 찾는다.
기껏해 기본을 말하는가?
창작의 희열은 자기의 느낌이 시각적으로 잘 표현되었을 때다. 그래서 느낌을 제대로 표현할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바탕이 부족한 창작은 그것이 아무리 기발한 것이라 할지라도 치기에 치인다. 이는 본인이 먼저 알거니와 안목을 지닌 분들에게 어찌 통하겠는가.
필자는 창작이 재밌으려면 두 가지가 명확해야 한다고 여긴다. 첫째가 바탕이다. 인문학을 아우른 정통성과 전통성, 기본기와 자법, 장법이 하나가 된 바탕이다. ‘이게 어디 하나의 기본이냐?’고 내지르는 분 계시리라. 서체별 획 좀 구사할 줄 안다고 기본을 마스터 한 것으로 착각하지 말자. 창작을 위한 공부들 모두 뭉뚱그리면 그냥 바탕이다. 하니 참다운 바탕이 무엇인지 깨달을 때가 바로 자기다운 창작을 할 때 아니겠는가.
기본 바탕의 두께와 넓이는 창작의 격으로 드러난다. 흥미로운 것은 기본을 다질 때 그게 바로 창작 실험이란 생각을 잘 안한다는 거다. 기본은 지나가는 게 아니다. 창작을 한다면서 기본을 무시하면 가벼움으로 치닫는다. 하니 필자가 기본이 곧 창작이라고 우기는 거다. 기본 획 구사와 선질의 다양성이야 말해 무엇 하랴. 조형의 원리와 미학, 인문학 공부 등 바탕은 너르고 두터울수록 좋으리라.
변화가 기본이라는 사실 천천히 음미해보자. 예컨대 변화란 첫 째와 두 번째가 느낌이 다름을 말한다. 세 번째는 앞의 다른 느낌 둘이 어울리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획과 글자는 물론 행과 전체 장법에도 이 원리를 잊지 않는다면 궁체정자를 써도 당시대의 구성예천명을 써도 그 작품만의 생명력, 즉 창작성과 재미가 짜릿하게 드러나지 않으랴.
▲“서예는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영상 URL QR코드.
스마트폰을 열어 QR코드를 스캔하면 영상이 재생된다.
독서량의 위력
2003년 필자가 자카르타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때다. 중국과 일본 소사이어티에 서예 활동이
있었지만, 필자에게는 황무지였다. 어디나 은자는 있게 마련, 사회성과 국제성을 장착한 구안자(具眼者)의 일갈이 날아들었다. 필자의 작품에서 미술적 재미와 문학적 감성의
부피를 따졌다. 국제적이어야 하지 않겠냐고 훅 들어왔는데, 그
내용은 다름 아닌 보편 진리였다. 추사가 강조한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의 범주랄까.
시각예술다운 작품성과 국경을 넘을 공통 언어인
재미로 말해야 한다는 충고, 이것은 황무지를 개간할 동력이 되었다.
“경력이 괜찮은데 왜 왔어요?”와 같은 별난 관심사도 물리칠 힘이었다. 정서가 다른 곳, 우군도 동료도 없는 곳, 오직 시간을 삭이며 역할로 인정받아야 했다. 문화와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이 재미를 느낄 바탕을 강조한 그 충고는 지금도 역시 필자의 창작 화두다. 오늘은 이 글의 바탕이고.
※ ‘向人尋書, 사람에게서 서예찾기’를 주제로 서예문인화 연재의 청에 응하기로 했다. 1년을 예정한 첫
꼭지에 ‘재미’를 끌어다 붙였다. 누구에겐 뜬금없을 수도 있겠다. 20년 전을 소환한 때문인데, 그 보다 사람에게 재미는 삶과 창작의 동력이니까. 동도들의 응원을
기대한다.
<서예는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AD91coIYcUE&t=7s
※ 이 글은 한국의 서예 문인화 2024년 1월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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