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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向人尋書 : 사람에게서 서예 찾기 6] 프로리그, 선택사항 아닌 필수- 인공지능 시대, 어떤 작가가 잘 사는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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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003회 작성일 2024-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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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人尋書 : 사람에게서 서예 찾기 6] 


프로리그, 선택사항 아닌 필수

- 인공지능 시대, 어떤 작가가 잘 사는 작가인가


인재 손인식/서예가

필자 주 : 본고는 본지 2월호 필자 원고 “한판 뜨자! 공감과 이해의 리그로”의 범주다. 사단법인 한국서예협회가 필자에게 의뢰한 논고(서예가의 문제의식과 현실감각. 2024, 《한국서예》, 본지 5월호에 전제)의 일부분과 동일한 주장임을 밝힌다.


필묵예술과 조인트어텐션
미학의 핵심 중 하나로 감각론을 꼽는다. 감각이 집중과 어떻게 관계하고 결합하는가? 학자들이 말하는 조인트 어텐션(Joint Attention)이다. 뭔가 관심을 좇아 집중하는 부류, 대상을 결합하거나 해체하며 창작에 몰두하는 그룹이 있다. 작가들이다. 그러니까 나름 지닌 감각 발휘를 자부하는 작가들일수록 세상의 흐름, 즉 현실에 조인트 어텐션 하는 것에 노력을 쏟는다. 시대의 핵심을 집어내는 작품이 생명력 높으니까. 이런 작품 창작할수록 작가에게는 존재감 UP이니까. 창작품 가치가 높아지는 거야 당연지사.

 

조인트 어텐션을 기준점으로 수판을 놔보자. 작금 한국 서단의 작가활동이나 창작품들 경향은 어떨까? 시대 흐름을 선도하고 있는가? 창작이란 절대가치에 잘 부응하는가? 긍정할 작가 많지 않을 게다. 왜냐고? 필묵이란 도구를 벗어나거나 문자조형이라는 본질을 벗어나는 것이 참다운 조인트 어텐션이라고 판단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시대 흐름에 집중하고 결합하기 어려운 장르가 필묵 예술이라고 에두른다면 그건 딱 잘라 핑계다. 실행능력 없는 사람들이 쓰는 단골 멘트다. 꼭 새로운 것, 전에 없던 것을 짠하고 보여주는 것만이 조인트 어텐션이 아니다. 필묵예술, 어느 예술 장르보다 역사가 유구하고 근간이 두텁지 않은가. 고전 하나하나가 다 영원한 현대라는 것 아시잖은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필묵 세계는 철저히 다져야 본질을 알고 자기답게 펼칠 수 있다. 쌓인 것이 많아 새롭힐 바탕 또한 무궁무진이다. 다변하고 과속하는 세상에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기둥, 바로 그 특성에다가 조인트 어텐션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귀한 방법일 수 있다. 나아가고 변하는 시대에 오래 묵어서 더욱 빛나는 그 진리에 집중하고 결합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독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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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단, 프로리그 도입의 의미

따라서 필자가 주장하는 프로리그 도입도 그렇다. 있던 것을 버리자는 것 아니다. 새로운 것을 찾아 하던 것 하지 말자는 건 더욱 아니다. 가진 특성을 더 폭 넓게 펼쳐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널리 이해시키자는 거다. 왜냐면 아직도 대중은 필묵예술의 진수에 관해 힘들여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니까. 필요성을 못 느끼는데 이해야 바랄 바이겠는가? 하니 서단의 작가들이 바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대중의 관심 아쉬운 쪽이 어느 쪽인가?


내친걸음에 생뚱맞은 각도로 우리의 한국서단을 돌아보자. 지금 한국 서단 작가들의 삶의 질, 또는 쌓아올린 위상이 범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될까? 철학적으로 깊은 차원의 논의를 하자는 게 아니다. 그냥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가장 일반적 통계 수치로 쓰이는 게 % 나누기, 상위 30프로 중위 40프로 하위 30프로로 구분 어떤가. 이렇게 나눌 때 한국 서단 작가들 삶과 서단의 위상은 주로 어디에 속할까? 이 수판질 과연 부질없는 짓일까?

 

사람 잘 사는 것 참 중요하다. 누구나 잘 살고 싶다. 자기가 잘 하는 일 즐겁게 하면서 잘 살면 그게 찐 행복이다. 그런데 사람의 욕망 참 얄궂다. 예컨대 10억이란 돈이 있다고 치자. 경제적 재정적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사람에 따라 다르다. 10억으로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5억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1억으로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왜 이렇게 다른가? 각자가 하고 싶은 것, 즉 욕망과 관련돼 있다. 그래서 욕망은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강조가 이때 필요하다.

 

작가들에게는 일차적으로 창작의 욕망이 있다. 경제적 여유로만 만족하는 삶이 아니다. 창작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산다. 물론 뭉뚱그려지거나 뜬구름 잡는 식의 욕망이 아니어야 한다. 작가로서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하면 삶의 만족지수가 반드시 높으리라 믿는다. % 분류가 어디에 속할지 답도 쉽게 찾아질 것이고. 하니 이거 한 번 리마인드 하고 넘어가자. 돈이 있는 곳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 세상 이치다. 네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술적 과학적 꿈을 이뤄야 할 때마다 돈이 있는 곳을 찾았다. 왕실이건 귀족이나 지주이건 꿈을 이루게 해줄 후원자를 물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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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캐피털 확장을 위해
그러니까 위의 %적 분류는 경제적 자유, 즉 파이낸시 프리덤이 중심이다. 필자는 한국서단의 작가들이 파이낸시 프리덤 수준이 높기를 바란다. 서예가들이란 태생적으로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어려운 직업군이라고 치부하지 말자. 작품이란 특별한 무기를 가졌잖은가. 돈도 내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을 잘 사용해야겠거니와 더 필요하다면 다빈치처럼 개척하면 된다. 이도 조인트 어텐션이니까.

 

작가가 작품 창작하는 거야 그야말로 기본, 기본을 여기서 역설할 필요 없으리라. 작품 창작 그 다음 활동에 집중하자는 것 하나가 프로리그 개설이다. 대중도 이해시키고 후원처도 끌어내자는 거다. 자본 캐피탈, 프랑스의 사회학자 삐에르 브르디외가 한 말이다. 그는 돈만이 아니라 돈으로 환원되지 않은 자원도 자본에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작가들은 창작만이 아니라 창작 이후의 활동. 자기가 할 수 있는 마케팅을 기획하는 것도 창작이다. 곧 창작 캐피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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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전공이 직업생활 미래 삶을 결정하는 유일한 근거가 아니라는 것은 상식에 준한다. 따라서 지금은 전공 플러스 복수전공이 일반화다. 작가들은 창작이 전공이라면 자신의 작품 세계를 알릴 마케팅을 부전공으로 공부해야 한다. 작가의 마케팅 활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서단의 단체들은 그 일원들을 잘 살게 하는 것이 본 의무 아닌가. 프로리그와 같은 서단을 활성화할 기획안에 힘을 모으고 실행해야 한다.


협회나 작가들 개인에게 공통으로 질문을 던져보자. 얼마나 많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가? 공공성의 영역에서 얼마나 많은 접속 지점을 보유하고 있는가? 혹 소통의 대 다수가 동업의 작가군은 아닌가? 접속할 코드가 많아야 한다는 의미다. 코드가 많으면 많을수록 협회나 작가로서 창작 캐피탈이 넓은 거다. 쉽게 말해 자본이 많다. 지금 개인이건 단체건 떠올리고 꼽을 수 있는 플러그 숫자, 그것이 바로 개인이나 서단의 자본.

 

소통 플러그에 알맞은 기획을 하고 진행하면 그건 반드시 성공에 이를 것이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플러그마다 다른 고유의 영역이 있음이다. 꼭 필요할 때 아니면 예술론은 소통의 무기로 쓰지 말아야 한다. 소통 상대방의 세계로 들어가 그들의 관심사와 언어로 소통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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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사회적 캐피탈을 늘리는 과정이다. 사회적 자본을 늘리는 방법이다. 필자는 작가는 누구라도 유니크한 자산가라고 믿는다. 역사가 보증해주는 문화적 자본으로 문화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지 않는가. 나름 블루오션 영역이 열려있는 셈이다.


필자의 이런 주장, 단언컨대 필묵예술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없다. 필자는 필묵예술에서 벗어나 다른 직업을 가진 적이 없다. 다만 동떨어진 타국, 동도가 없는 이방지에서 2십 수 년을 살다보니 시각과 활동 영역이 달라졌다. 대다수 기업인들 사이에서 소통하다 보니 다른 이야기나 방법으로 필묵예술 본질이나 작가활동을 풀어내는데 좀 익숙해졌다. 따라서 본지에 1년간 연재하기로 한 주제는 필자가 개척하고 실행해냈던 것들 풀어내기다.

 

마치며

인공지능이 사진 한 장으로 수천 장의 그림을 순간에 그리던데 서예의 미래는 어떨까요?” 얼마 전 한 지인이 걱정스런 얼굴로 필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인공지능을 만든 것도 사용하는 것도 다 사람이다. 인공지능은 인류에게 위협이 아니라 유용한 도구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직업은 줄어들 수 있지만 일은 많아진다.”는 한 AI 전문가의 말이 얼마나 우리를 설레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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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 팬데믹 때다. 계획했던 인사동 전시가 막혔다. 유튜브 채널을 계정하고 열심히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던 필자는 전시 방향을 온라인 영상전으로 바꿨다. 시간과 소모비용, 효율, 결과까지 그야말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신세계를 체험했다. 자기 예술에 확신이 있다면 변화하는 시대는 다만 흥미를 끄는 조인트 어텐션의 대상일 뿐이다. 인공지능의 발달과 함께 예술가들에게도 새로운 활동 영역과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어떻게 기획하고 실행할 것인가? 참여하고 협조할 것인가?

 

프로리그의 본질은 작가들의 작품 수준 가르기 따위가 아니다. 작가라면 누구나 마땅히 좋은 작품을 지향하는데,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작품을 창작하는데, 알고도 좋은 작품 안 하는 작가 없는데 무슨 걱정이 필요한가? 맘껏 펼칠 그라운드가 필요할 뿐이다. 함께 발전하고 폭넓게 활동할 프로리그를 강조하는 이유다. 적절히 경쟁하자. 서로를 돕는 일이다. 단체의 단체를 위한 좋은 기획과 적극적인 실천이 있을 것을 믿는다.

※ 이 원고는 한국서화 월간지 《서예 · 문인화 》 6월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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