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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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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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
시/ 성윤석
마산수협공판장 1판장
상어가 누워있다.
오징어 5백 상자 사이에 상어가 누워 있다.
상어는 가끔 오랫동안 굶는다.
굶어 상어는 상어
눈을 갖는다.
이놈도 오래 먹이를 먹지 않았네.
상어 한 마리가 누워 있다.
같잖은 수만 마리의 오징어상자 사이에서
쳇, 하는 입모양으로 누워 있다.
상어는
질주로 세상을 가른다.
작은 놈은 먹어치운다.
가을 추석 대목이 가까워지자,
상어 눈을 한 사내들이
돌아온다.
오래 굶은 사내들이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다른 이의 짐을 싣고 질주하는 것뿐이다.
이들도 가끔 오래 밥을 먹지 않고
술만 마신다.
가끔 상어 이빨을 드러내고
닥치는 대로 일행들을 물어뜯는다.
사람도 굶어, 다시 떠날 힘을 얻는다.
돌아온 자야, 떠나는 자야, 불러본다.
당신의 어깨 뼈 속에 들어앉아.
흐느끼고 있는 여자야.
생에 답은 없다. 그러니 창고 가서, 창고에서
언 채로 잔다. 이제는 작업복이 되어버린
외투를 입고서
자거라. 모든 괴로움의 답은 잠이다.
가서 자거라.
출처: 멍게 (문학과 지성 시인선 447)
NOTE ***********
오래 굶주린 자들의 눈빛에 대하여 시를 써보고 싶었던 적이 있다. 적의로 가득 찬 눈빛. 욕망으로 번뜩이는 눈빛. 오로지 생존만 남아있는 눈빛. 항구의 비린내 같은 것이 고여있는 눈빛. 적요한 바다 가운데를 떠다니는 눈빛. 성윤석은 그것을 상어의 눈이라고 말했다. 상어는 굶어서 비로소 상어의 눈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아…! 나는 감탄했다. 바다 속을 가르며 질주하다가 마침내 같잖은 수만 마리의 오징어상자 사이에서 쳇, 하는 입모양으로 누워 있는 상어의 눈이라니.
항구에는 상어의 눈을 한 사내들이 많다.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소도시의 항구에서도 그런 눈을 한 사내들을 자주 보았다. 늘 얼굴이 붉었고, 눈은 충혈되어 있고, 언제든지 어깨를 부딪치는 다른 사내와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밥을 먹지 않고 술을 마시며 어깨 뼈 속에 날마다 우는 여자를 감추고 사는 사내들이었다.
며칠 후면 그 소도시의 항구로 간다. 버스 안에서, 펄떡펄떡 슬프게 살아있는 사람들을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읽었던 성윤석의 시집을 다시 읽을 것이다. 항구의 그 사내들이 늙어 초라해진 등을 보이며 담배를 물고 있거나 혹은 이미 세상을 떠나 거기 있지 않아도 괜찮다. 어쩌면 나는 그 사내에 대한 시 한 편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나의 시에 등장한지도 모르는 채로 그들은 냉동창고 옆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어떤 생에도 답은 없다.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카피라이터, 라디오 작가,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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