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똥'이다! 심마니의 '심봤다' 같은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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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에서 늪까지 걷다 下】 커피나무 숲 걷기 3시간
터벅터벅 커피나무 숲길을 걷다 사향고양이 루왁의 배설물을 발견했다. 배설한 지 오래되지 않았나 보다. 끈적하고 촉촉한 느낌이 잘 살아있다
"와 똥이다."
터벅터벅 커피나무 숲길을 걷던 김우주 회원의 환호다. 사향고양이 루왁의 배설물을 발견했다. 배설한 지 오래되지 않았나 보다. 끈적하고 촉촉한 느낌이 잘 살아있다. 배설물이 그 임자의 건강 상태를 생생하게 증명한다. 원형 그대로 상태 좋은 커피 루왁의 생생한 오리지널을 확보했다. 김우주 회원 득의양양이다. 루왁 커피를 마실 때보다 훨씬 더 환희에 찬 모습이다.
"어 냄새가 나는 데요~"
이런 이런, 사향고양이의 똥은 똥이 아니란 말인가? 그럼 루왁 커피 바탕이라는 이유로 똥에서 루왁 커피 향내가 날 줄 알았단 말인가? 김우주 회원 등에 진 가방을 벗어 비닐봉지를 꺼낸다. 행여 똥의 형체가 변할까 싶어 정성을 다해 거둔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다. 길을 가다 똥을 발견했으면 응당 오만상을 찌푸리며 피하거나 타악 침이라도 뱉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마치 심마니의 '심봤다'같은 환호라니. 그리고 소중하게 모시다니. 이야말로 똥의 재인식이라 해야 하나? 똥의 똥에 따른 가치 매김이라 해야 하나. 그때부터 산빠람 회원들은 걸으면서도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훑기 시작했다.
"와 여기도 있다."
뒤 따라오던 박인심 부부가 동시에 외쳤다. 이번엔 쓰러진 나무 위였다. 길을 막듯이 가로 걸친 커다란 나무 위, 루왁은 또 그렇게 참 별난 자리에 환영받을 배설물을 남겨놓고 갔다. 이날 루왁의 배설물을 찾기 위해 커피나무 숲속을 뒤지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똥 덩이 찾기에 열심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덕분에 그 비닐봉지 안에는 제법 여러 덩이의 루왁의 배설물이 모였다. 아무에게도 원가를 내지 않고 마셔도 되는 루왁 커피 두어 잔 정도의 양이다.
커피나무 숲 연속이었다. 산과 산이 커피나무로 연결되어 있었다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커피나무
커피나무 숲 연속이었다. 산과 산이 커피나무로 연결되어 있었다. 유유상종 온통 커피나무 세상이다.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넓이다. 자카르타 남쪽으로 광활하게 자리 잡은 보고르 시의 산악지대 표고 약 1천m쯤에 감춰진 Rawa Gede에서 Cisadon까지 늪과 늪 사이 3시간여를 걷는 동안 산과 구릉의 대부분이 커피나무로 덮여있었다. 물론 다른 나무도 많았다. 다만 들러리였다. 다른 나무숲은 험준한 봉우리 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커피나무 주변 나무들은 그늘과 습기를 좋아하는 커피나무를 위한 것들이었다. 농부들에게는 경계선과 이정표 역할도 하리라.
그러므로 이날의 산행은 늪 탐사가 아니었다. 실제로는 커피나무 대단지 탐사였다. 그 드넓은 곳에 떼를 지은 커피나무는 야생인 듯했지만 누군가의 관리하에 있었다. 미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많았다. 기승을 부리는 잡목과 뚫고 나가기도 힘든 무성한 잡풀에 잠식을 당한 곳도 있었다.
커피나무 숲 길
커피나무 숲길, 길은 비교적 뚜렷했다. 커피나무 관리와 수확물을 옮기기 위해 다듬은 길이다. 길 주변 잡목과 풀들도 크게 방해받지 않을 정도로 다듬어져 있다. 덕분에 산빠람 일행이 걷는 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길은 공들여 돌로 조성한 구역이 많았다. 깨트린 돌을 차곡차곡 세워 깐 길이었다. 흙길은 비에 쉽게 유실되기 때문이다. 돌길은 비가 올 때 미끄럼을 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 걷기에는 불편한 점도 있는 길이었다.
"어머 이걸 어째?"
박인심 회원 부인의 비명이다. 그에게 거머리가 붙었다. 온갖 맛 난 음식을 가져와 산빠람 팀을 즐겁게 해주는 부인의 팔꿈치에 거머리가 붙었다. 일찍 발견해 다행이다. 순간 너도나도 거머리 검열이다. 신발과 바지엔 출발할 때 약을 뿌렸기 때문인지 모두 괜찮았다. 그런데 회원들의 어깨와 배낭에서 몇 마리가 더 발견됐다. 모두 나뭇잎을 스치면서 달라붙은 작은 것들이다. 그러나 피를 빨면 그 크기가 금방 커진다. 열대 나라 숲속 거머리는 화창한 날도 가리지 않고 활동한다. 옷에 붙은 거머리가 스멀스멀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간 일이 커진다. 증상이 드러나지 않아 집에 도착해서야 발견한 때도 있다. 물리고 나면 지혈이 쉽지 않다. 이래저래 거머리는 거머리다.
다다닥 쁘다닥 부릉부릉 쌔애 쌔애앵~
거머리 소동을 끝내고 얼마를 더 걸었을 때다. 산을 쥐어뜯는 소리가 들린다. 산악 오토바이족 출몰이다. 목에 두른 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린다. 산중에서 맡는 매연은 더 고약한 느낌이다. 구경꾼이 있어 더 신나는 걸까? 악을 써대고 질주를 한다. 면식 불문, 국적 불문 산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항상 먼저 인사를 하는 산빠람 회원들인데 이들에겐 시큰둥하다. 산길에서 만큼은 깡패 같은 산악 오토바이 그룹과는 별 친하고 싶지 않은 게다.
열대 나라 숲속 거머리는 화창한 날도 가리지 않고 활동한다. 옷에 붙은 거머리가 스멀스멀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간 일이 커진다
서로 취미를 즐기는 중이다. 나 있는 산길 공유하는 것이니 뭐라 할 말 없다. 그러나 이들은 농부들에게 피해를 준다. 애써 닦은 길을 흉하게 망가뜨린다. 길 곳곳에 골을 깊게 파놓는가 하면, 돌이 잘 깔린 길을 뒤집어놓는다. 난코스일수록 이들이 지나고 나면 험한 길이 되고 만다. 무거운 짐을 등과 어깨에 지고 나르거나 소형 오토바이를 활용하는 농부들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산악오토바이 족들의 출입을 막으세요. 아니면 통행세를 단단히 물리던가요."
커피를 수확하던 부자는 웃었다. 출입금지도 통행세를 물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다. 불평불만이나 신세 한탄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인도네시아 서민들의 정서로는 신의 뜻이라는 '인샬라"나 웃음은 최선의 답이다. 이러쿵저러쿵 더 하는 것은 췌언이다.
연이어진 첩첩산중에 마치 빈집인 듯 띄엄띄엄 민가가 있다. 커피 농사가 주업인 농부들의 집이다
연이어진 첩첩산중에 띄엄띄엄 민가가 있다. 커피 농사가 주업인 농부들의 집이다. 몇 가구가 모여 있는 곳도 있고 외딴집도 더러 있다. 놀라운 것은 거의 모든 집에는 소위 대가족이 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크고 작은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인도네시아 곳곳을 다니면서 부러운 점이 몇 가지 있다. 드넓은 국토(세계 4위)가 부럽다. 많은 인구(세계 4위)가 부럽다. 눈에 띄는 것만으로도 풍성한 자원들은 더 부럽다. 역시 사람만이 희망인가? 많은 어린이가 단연 눈에 띈다. 어린이는 미래를 향한 가능성, 곧 모두의 희망 아닌가. 인도네시아에 아이가 많은 이유는 전통인 조혼 문화라 할 수 있겠다. 그보다 더 앞선 이유가 있다. 순전히 내 느낌이다.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기 때문이리라.
고도계에 1천 2백이 찍히는 곳의 커피 농가 두 집의 어깨가 나란하다.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마당 한가득 커피를 말리고 있다. 돌을 다듬어 깐 길 위에 침구와 옷들을 말리고 있다. 꾸밈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헉헉 숨소리도 거칠게 산마루턱을 올랐을 때다. 고도계에 1천 2백이 찍힌다. 커피 농가 두 집의 어깨가 나란하다.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마당 한가득 커피를 말리고 있다. 돌을 다듬어 깐 길 위에 침구와 옷들을 말리고 있다. 꾸밈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가꾼 듯 그냥 자연인 듯 산뜻한 화단의 꽃들, 가까이 들여다보니 몸을 흔든다. 행복 에너지 무더기로 넘친다.
산골 커피 농가에 꽃처럼 예쁜 아이가 있다. 아장아장 걷는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도 있다
아직 한 돌이 지나지 않았다는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있다
꽃처럼 예쁜 아이가 있다. 아장아장 걷는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도 있다. 아직 한 돌이 지나지 않았다는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있다. 산행하는 외국인들을 보는 호기심 어린 표정들이 맑다. 건강해 보인다. 문명으로 누리는 호사는 이들이 몰라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진정 문명을 누리는 자의 오만 아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순정한 부러움이다.
젊은 집 주인이 루왁 커피를 사겠는지 묻는다. 가져온 커피 자루를 연 산빠람 회원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커피 원두이되 루왁 커피 원두가 아니라는 의미다. 산빠람 회원들 루왁 커피에 관한 한 가짜에 속지 않을 만큼 경험을 가졌다. 그가 그걸 몰라봤다. 그러나 눈치가 빠르다. 다른 것을 들고 나온다. 언제 속이려고 했느냐는 듯 태연하다. 이번엔 진짜다. 그러나 약속이나 한 듯 아무도 사지 않는다. 생산자의 과다 이익 추구와 소비자의 바라는 바가 충돌하는 현장이다. 지극히 인간다운 정서를 또 체감한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을 가뒀다.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제법 많다. 일종의 양식이다. 키우는 고기를 낚시하는 사람이 있다
작은 고개를 하나 넘자 그곳에도 두어 가구 집이 있다. 연못도 있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을 가뒀다.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제법 많다. 일종의 양식이다. 키우는 고기를 낚시하는 사람이 있다. 마구잡이를 하지 않는다. 고기에게 선택권을 줬다. 그러나 여전히 물고기의 생사여탈은 그가 쥐고 있다. 다만 그 여유에 한 표.
대부분 그렇듯 이 집도 사람이 지나는 길목에 루왁 커피를 원형 그대로 말리고 있다
저울이 등장한다. 골동품이다. 사고 싶은 저울이다
대부분 그렇듯 이 집도 사람이 지나는 길목에 루왁 커피를 원형 그대로 말리고 있다. 어림잡아 몇 kg, 사려는 회원이 나선다. 저울이 등장한다. 골동품이다. 사고 싶은 거울이다.
바로 잇댄 공터에서는 집을 짓기 위해 터를 다듬고 있다. 딱 봐도 알 수 있는 온 가족이 동원되어 집을 짓는다. 새살림을 나는 형제가 있다고 했다.
"잘 지으세요. 담에 놀러 올 테니……."
커피와 더불어 사는 커피 농부들의 삶, 왠지 커피와 닮은 구석이 많다. 맑은 자연환경을 좋아하는 커피나무, 생명력 좋은 커피나무, 무성한 잎 촘촘한 가지, 희고 아름다우며 향기 좋은 꽃을 피우는 커피나무, 딱 그만큼의 간격을 두고 마디마디에서 무리지어 열리는 열매 등.
탐스럽게 열린 커피 열매
커피 한 잔, 그 의미가 새삼스러워졌다. 충분히 음미해야할 가치를 현장에서 느끼고 보았다. 커피 한잔, 꽃피고 열매 맺고 자라며 빨갛게 익어가는 그 선한 풍광 모두가 그렇게 쓴맛과 짙은 향으로 응축된 것임을 기억하리. 똥이 그 본연의 진정한 가치로 인정받는 그곳에서.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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