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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오곡밥에 절편, 모주까지... 여기 인도네시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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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175회 작성일 2017-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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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판 대보름 잔치 펼친 서예동호회
 
"윷이야∼"
 
제법 넓은 실내에 문이 사방으로 열렸는데도 고함이 실내를 흔든다. 허공으로 솟구친 윷이 바닥에 깐 매트에 떨어지며 툭 튕기고 또르르 구르더니 이윽고 멈춘다.
 
"걸이다. 걸도 좋지. 앞말에 걸 업혀 모로 달려…"
 
▲  왁자지껄, 정월 대보름 맞이 자필묵연 윷놀이
ⓒ 손인식         
 
▲  도, 개, 걸, 윷, 모 그리고 백도, 무엇이 펼쳐져도 윷놀이는 폭소다
ⓒ 손인식         
 
윷을 모아 쥔 손을 바닥에 탁탁 두어 번 때리더니 으라차차∼ 단단히 기합을 넣어 윷을 던진다. 손안에든 윷가락 네 개 던지는데 기합이며 힘쓰기가 마치 씨름판 장사들의 그것과 별다르지 않다.
 
몇 순배 돌지도 않았는데 대진을 하는 두 사람은 물론 좌중까지도 윷놀이 삼매에 빠진다. 상대방 말을 잡은 쪽에서는 환호가 터지고 말이 잡힌 쪽에서는 탄식이 터진다. 윷놀이, 참 단순하면서도 흥겨운 전통 민속놀이다. 좌중이 함께 즐기기에 이만한 놀이도 흔치 않다. 
 
정월 대보름, 고국으로부터 정월 대보름 소식이 속속 전해왔다. 현대 문명의 꽃 SNS가 큰 역할을 한다. 까치 보름날은 이미 만월이라며 사진이 올라왔다. 곳곳에서 열리는 민속 축제 소식도 타국살이에 정월 대보름 분위기를 돋운다.
 
인도네시아 서예 동호회 <자필묵연> 역시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함께 모여 정월 대보름 기념행사를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자카르타에 인접한 보고르(Bogor) 시 산마을에 자리한 자필묵연의 본거지 <데사드림>에 모였다.
 
▲  자카르타에서 남쪽으로 약 1시간 거리 보고르 시 산마을에 위치한 <데사드림>. '꿈마을'이란 의미를 지닌 이름이다.
ⓒ 손인식         
 
▲  정성을 다해 대보름 상차림을 준비하는 손길들
ⓒ 손인식         
 
▲  상차림이 끝났는데도 아직 윷놀이 삼매경
ⓒ 손인식         
 
"와우∼ 이게 다 뭐야? 이걸 누가 다 장만했어요? 이런 재료들을 인도네시아에서 살 수 있어요?"
 
평소 다양하게 사용하는 넓이 120cm, 길이 3m 서대(書臺)가 오늘은 상이다. 회원들이 손수 장만한 음식들이 큰 그릇에 담겨 통째로 서대에 오른다. 뷔페식이 전개될 태세다.
 
가지나물, 시래기나물, 파나물, 무나물, 콩나물, 호박 나물, 머위 나물 등 정월 대보름 특유의 나물들이 보기도 좋게 들어찬다. 눌린 소머리 고기에서 풍기는 고소한 향이 코를 자극하는데, 곁들인 새우젓과 간장으로 만든 두 가지 소스가 그 나름의 향으로 입맛을 다시게 한다.
 
상추, 깻잎, 얼갈이 등 채소가 싱싱함을 다투는데, 어찌 싱싱함만 맛이랴. 잘 발효된 배추김치와 백김치가 점잖게 얼굴을 내민다. 어찌 이에 뒤질까 사과와 배를 갈아 만든 소스를 모양 좋게 얹은 배추겉절이가 대세라는 듯 도드라진 비주얼로 유혹한다.
 
▲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참 설레는 시간
ⓒ 손인식         
 
▲  몇 가지 얹다 보니 그릇에 한 가득
ⓒ 손인식         
 
묵묵히 있어도 눈길을 빼앗는 것이 있다. 바로 한국산 도토리묵이다. 빚은 정성만큼이나 탄력으로 다가선다. 빼놓을 수 없기에 느긋하게 숨죽이고 있는 것도 있다. 흰색과 녹색 절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대보름 주인공이 등장한다. 정월 대보름을 실감 나게 하는 오곡밥이다. 큰 양푼 두 개에 그득히 담긴 오곡밥이 상위에 오른다.
 
▲  데사드림 표 모주(母酒). 막걸리에 계피, 감초, 황기, 대추, 구기자, 생강, 흑설탕을 넣고, 마지막으로 뽕잎을 띄워 미열에 장시간 정성으로 저으며 끓인 모주.
ⓒ 손인식         
 
정월 대보름이면 딱 한 번 비상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다. 데사드림 표 모주(母酒)다. 막걸리에 계피, 감초, 황기, 대추, 구기자, 생강, 흑설탕을 넣고, 마지막으로 뽕잎을 띄워 미열에 장시간 정성으로 저으며 끓인 모주다. 모주에 담긴 의미까지 새기면 모주야말로 정월 대보름을 즐기는 술로서는 그만한 것이 없으리라.
 
윷놀이가 미처 우승자를 가리기도 전 음식이 다 차려졌다. 본래 예정된 순서는 식사하기 전 난타 공연이다. 그런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좌중을 주도한다. 우선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마땅히 먹는 즐거움이 윷놀이를 능가하는 걸까? 윷놀이 때와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모두 식사에 집중이다. 
 
"참 놀랍네요. 우리가 인도네시아에 사는 것 같지 않아요. 꼭 민속촌에 온 기분입니다."
 
올 대보름 윷놀이에 처음 참석한 신입 회원의 말에 모두 한바탕 폭소를 참지 못했다. 신입 회원은 계속해서 먹느라 바쁘고 감탄하느라 더 바쁘다.
 
▲  먹는 즐거움이 윷놀이를 능가하는 걸까? 윷놀이 때와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모두 식사에 집중이다.
ⓒ 손인식         
 
우리는 때로 바쁘다는 핑계로 삶의 본질을 옆으로 밀친다. 당장 필요한 것도 중요한 것도 바쁘다는 핑계로 뒤로 미룰 때가 많다. 진짜 바쁜 것은 자기 할 바를 다 하느라 분주한 것이리라. 내가 알기로 자기 본분과 하고자 하는 바를 두루 해내는 사람은 뜻밖에 바쁜 모습이 아니다. 그 존경하는 지인에게 한 번은 비결을 물었다. 답이 간단했다.
 
"아 제 몫이 아니다 싶은 것은 관심을 두지 않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나 잘하려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난타 공연을 즐기기 위해 둘러앉았다. 처음 계획은 자카르타 사물놀이패가 한바탕 함께 놀기로 계획했던 바다. 그런데 느닷없이 상쇠가 참석할 수 없는 상황으로 팀을 꾸릴 수가 없다고 연락이 왔다. 하는 수 없이 난타 팀, 그것도 단 두 명이 하기로 했다. 한 분은 자필묵연 회원의 부인이고 또 한 분도 늘 만나는 지인이다.
 
▲  난타 공연 시작.
ⓒ 손인식         
 
▲  열띤 공연으로 열기 만발
ⓒ 손인식         
 
▲  공연 감상
ⓒ 손인식         
 
올해는 정월 대보름 행사에 생략한 것도 있다. 자필묵연 합동 휘호다. 대형 화선지를 펼치고 그 위에 너도나도 마음껏 붓을 휘둘러보던 합동 휘호 순서를 올해는 건너뛰기로 했다. 정월 대보름이면 더러 함께 치르던 현지 극빈 이웃들 학비 지원 행사도 이번에는 없었다. 이미 연말에 치렀기 때문이다.
 
▲  행운권 추첨
ⓒ 손인식         
 
윷놀이 시상식과 행운권 추첨이 폭소 가운데 이어졌다. 행운권 추첨은 음식을 준비하지 않은 회원들이 너도나도 제공한 물품들이다. 위스키, 코냑, 와인, 소주 상자, 맥주 박스 등 갖은 주류들이 모였고, 과일, 공예품과 자사에서 제조한 의류도 제공했다. 한국 씨앗으로 한국인 찬거리를 생산하여 몰이나 슈퍼마켓에 공급하는 한 회원은 참석한 회원들이 무, 고추, 방울토마토 등 채소를 푸짐하게 나눠갈 수 있도록 준비해왔다.
 
▲  다음을 기약하며 기념 사진 한 컷.
ⓒ 손인식         
 
나눔은 즐겁다. 나눔이 즐거우므로 사람들은 누구나 적절히 나눌 기회를 찾는다. 타국에서 동포들끼리 또 동호인들끼리 더불어 나눔은 행복을 절감하게 한다. 그래서 함께 즐기는 문화이벤트는 꼭 필요하다. 작은 이벤트라도 준비하는 과정은 수고스럽지만, 함께 준비하고 함께 즐기고 나면 그야말로 삶의 활력이다. 
 
정월 대보름 축제, 비록 회원들끼리 즐기는 작은 행사다. 그러나 자필묵연으로서는 몇 가지 연례행사 중 빼놓을 수 없는 정기 문화 이벤트다. 다시 맞이하는 정월 대보름엔 더 즐겁고 보람이 있는 일들을 기대한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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