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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리스본 소매치기, 동양인이라 좀 쉬워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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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853회 작성일 2017-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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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부부의 인상파식 여행] 아! 이베리아 반도 ⑳
 
숨죽인 낭만
 
첫째, 고전 그대로 따라 쓰는 것. 둘째, 고전에 담긴 의미를 살펴 쓰는 것. 셋째, 모양과 의미를 배척하고 창의적으로 쓰는 것. 이것이 서예 고전을 임서(臨書)하는 학습 세 단계다. 같은 글자 천 번을 쓰더라도 쓸 때마다 새롭게 살피고 창의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서예학습 세 단계에 스민 의미다.
 
나는 서예가로서 전통적인 학습방법 이 세 단계를 매우 존중한다. 그러나 누구나 이런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에는 한마디로 반대다. 아무리 존중해야 할 원칙이라 해도 아무에게나 적합한 것이 아니다. 서예가 모방만을 일삼는 '고답적'인 예술이 아니므로 더욱 그렇다. 취향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자기 창작을 즐길 수 있고, 그에 따른 흥미로운 결과를 얻는 것 이것이 바로 아는 사람만이 아는 진짜 서예다. 
 
취향과 상황에 따라 즐기는 것, 여행이 딱 그런 것 아닐까? 아니 그렇게 되고야 마는 것이 여행 아닐까? 같은 여행지라도 계절은 물론 날씨나 시간에 따라서 느낌이 다른 것이 여행이다. 동행자의 유무와 동행자가 누구인가, 소요 시간이나 닥친 상황은 어떤가에 따라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 여행이다. 무엇보다 어떤 목적을 가졌느냐에 따라 느낌의 결과가 달라도 많이 다른 것이 바로 여행이다. 
 
그러므로 포르투갈의 브라가와 포르토, 리스본 세 곳의 한결같은 느낌은 오히려 드문 것일 수 있다. 세 곳이 공통으로 풍긴 느낌은 다름 아닌 '숨죽인 낭만'이다. 지금 여기서 사용하는 '숨죽인 낭만'이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면서 긍정과 부정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더 설명하자면 그것은 깊고 아련함일 수 있다. 잔잔하고 경건함일 수도 있다. 또한, 따뜻하고 애잔함일 수도 있다. 분명 멋진 여행지이면서도 가슴 한구석 먹먹함이 사라지지 않는 포르투갈만의 끈적끈적한 매력이랄까?
 
"뭐가 그래요? 이건 풀어내는 게 아니라 꼬는 거 아녜요? 한 곳도 아니고 어떻게 세 곳의 느낌이 그런 식으로 같을 수 있어요?"
 
"여행을 함께 한 당신의 느낌은 어땠는데?"
 
의문을 제시할 때와는 달리 아내도 어떤 느낌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선뜻 대답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다. 각자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문에 생각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이제 그 답을 찾아 밝히려 한다. 공감하지 못할 혹자가 많을 수 있지만, 내 식의 답을 내 세우려 한다.
 
포르투갈 민속악 파두와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숨죽인 낭만', 그것은 파두(Fado) 때문이다. 포르투갈 하면 동시에 떠오르는 민속 음악 파두 때문이다. 어떤 이는 포르투갈 하면 축구 스타 호날두나 와인 등을 떠올릴 수 있겠는데, 나는 단연 파두가 떠오른다. 그것은 내가 판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임을 부정하지 않겠다.
 
포르투갈의 전통음악 파두는 구슬픔이 절절히 묻어나는 음악이다. 그러나 구슬픈 흐느낌이 아니다. 낭만을 끌어들여 삶에서 생겨나는 정한을 해소하는 것이다. 파두는 운명, 혹은 숙명을 의미하는 라틴어 'Fatum'에서 유래했다 한다. 로마인 게르만인 무어인의 침략과 회복 등 암울했던 포르투갈의 역사, 그 틈새에서 고난을 겪었던 민중의 애환이 촉촉이 깃든 음악이다. 현실을 둘러싼 고난을 벗으려는 음악이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 기저에 깔린 음악이다.
 
그러므로 어딘가에서 또는 무엇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설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만약 한국과 교류가 있었다면 한국의 판소리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을 낳지 않겠는가? 파두는 멜리스마 창법, 기타 반주, 숙명론적인 사고 이 세 가지를 특징으로 꼽는다. 민중의 정서를 실은 음악 대부분이 그렇듯 멜리스마 창법은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깊은 울림이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이것이 포르투갈이야!" 하고 내 무릎을 쳤던 것은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다.
 
2014년 6월 한국에서 개봉했던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이 영화는 내가 포르투갈을 이해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포르투갈 역사와 철학, 정서 등이 그냥 그대로 리얼 포르투갈이라 해도 아무런 거슬림이 없을 것이다. 곱씹을수록 맛이 나는 영화 속 대사들은 포르투갈을 사색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한다. 우연한 사건, 한 권의 책과 한 장의 기차표에 빨려들고 만 주인공의 여행,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일탈과 깨달음은 명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포르투갈을 진하게 연민하게 한다.  
 
그러므로 나는 권한다. 브라가와 포르토, 리스본 세 곳의 여행자라면 반드시 포르투갈의 민속 음악 파두나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감상할 것을 추천하다. 어느 계절, 어떤 날씨, 누구와 어떤 형태의 여행을 하더라도, 또 소요 시간은 얼마며 어떤 상황과 부딪치고 어떤 목적이냐에 따라 모두 결론이 다를 것이지만, 바로 그 다른 결론을 위해 위 두 가지를 추천한다. 
 
사실  '숨죽인 낭만' 이미지는 하나의 대상이나 단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아주 천천히 내게 스며들었다. "곧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경을 지납니다"라는 가이드 이 선생의 멘트가 있기 전부터 나는 몇 가지 대상들로 인해 가랑비에 젖듯 아주 서서히 미지를 향한 미묘한 사색에 다가가고 있었다. 끝 간 데를 모르게 시야에 드는 도토리 숲도 그렇지만 포르투갈 국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의 한산함이 우선 한 몫을 했다.
 
고속도로가 참 한가했다. 컨테이너 차량을 볼 수 없음은 포르투갈의 경제 침체 현상이 보이는 듯했다. '공사가 없으면 돈도 없다'는데…. 주제넘은 걱정이 내게 밀려들었다. 국경을 넘자 풍경도 변했다. 같은 도토리나무 숲도 스페인의 그것보다 눈에 띄게 거칠게 다가왔다. 논밭은 더 분명했다. 묵힌 땅도 보이고 관리 소홀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구석구석 잘 다듬어져 있던 스페인과는 영판 달랐다.
 
그리 본 때문일까? 포르투갈에 들어서자 유난히 눈에 띄던 유칼립투스 나무도 한 몫을 거든다. 묘목 때와 달리 성장한 다음 잎의 모양이 아주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해서 '환골탈태' 나무라고 한다던가. 인도네시아 일부 지역에서 많고 많은 그 나무, 참 정취가 있다고 느낀 그 나무가 포르투갈의 산야에서는 왜 가녀린 모습으로 다가왔을까?
 
좀 우습게 생각하는 혹자도 있겠는데, 잠시 쉬어가는 고속도로 휴게소, 낙서가 난무한 화장실, 남자 화장실 청소부가 여성이었던 것도 또 다르게 한 몫 했다. 또 있다. 흐린 날씨와 추적추적 내린 비다. 리스본을 탐방한 날은 브라가와 포르토를 탐방한 이틀 후였음에도 세 곳 모두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 했다.  
 
브라가의 산에 있는 예수
 
"브라가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입니다. 예전에는 서유럽 가톨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종교적인 도시지요. '기도하는 도시'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답게 브라가 시내에는 성당이 약 70개 정도 있습니다."
 
▲  자연과 멋지게 어우러진 <봉 제수스 두 몬트(Bom Jesus do Monte)> 성당
 
▲  <봉 제수스 두 몬트(Bom Jesus do Monte)> 성당 내부. 때 마침 질밥을 쓴 이슬람교도 부부도 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  <봉 제수스 두 몬트(Bom Jesus do Monte)> 성당을 오르는 계단. 길동무들은 각 계단에 나뉘어 서서 한 컷 사진을 찍었다.
 
▲  <봉 제수스 두 몬트(Bom Jesus do Monte)> 성당에서 내려다 본 빗 속의 브라가 시내.
 
<봉 제수스 두 몬트(Bom Jesus do Monte)> 성당, 브라가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이라 했다. 이 성당을 탐방하기 위해 길동무는 푸니쿨라를 타고 가파른 비탈길을 올랐다. 왜 누가 '산에 있는 예수'라는 별칭을 붙였을까? 참 절묘하게 어울린다. 시내와 5km 정도 떨어진 산속 높은 곳의 성당, 마치 절집처럼 아늑하고 한가롭게 자리하고 있다. 브라가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탐방하는 내내 가는 비가 내렸다.
 
일반적인 상상을 아주 쉽게 뒤집는 성당이었다. 편견이라 할 수 있겠는데, 우선 자연에 파묻혀 멋지게 어우러진 것이 그랬다. 자연과 어우러져 장중하지만 엄숙하기보다 낭만적이다.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지그재그 층층 계단도 참 흥미롭다. 위에서 내려 볼 때나 아래도 올려다볼 때 모두 종탑과 십자가만 없으면 딱 절집 느낌의 구조다.
 
계단 각층 모서리마다 정교하게 새겨진 예수님 일대기와 가톨릭 덕목도 그래서 더 눈여겨보게 된다. 계단이 만났다 다시 갈라지는 곳에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조성된 샘과 분수 등이 참으로 독특하다. 만약 산 아래 도시에서 걸어서 성당에 드는 신자가 있다면 그 길에서 속세를 벗어나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왜 이런 구조를 갖게 되었을까? 자연적일까? 아니면 건축가의 절묘한 의도일까? 선뜻 결론이 안 난다. 하지만 둘러볼수록 참 깊은 맛이 느껴지는 성당이다. 엄청나게 큰 호흡을 감춘 낭만이 거기 그렇게 있다.
 
▲  포르토 시가지 오르막 길에 자리한 산 프란치스코 교회(Igreja de Sao Francisco)
 
▲  도루 강 변의 이름모를 작은 성당. 거대한 성당이 지척에 즐비한데 이렇게 작은 성당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여전히 그 기능을 충실하게 한다고 했다.
 
비 내리는 포르토
 
▲  상 벤투 역(Sao Bento Train Station) 플렛폼.
 
비가 계속 내렸다. 브라가에서 40분여를 달려 포르토에 도달했는데 여전히 비가 그치지 않았다. 무시하고 맞아도 좋을 낭만적인 비였다. 하지만 여행자가 계속해서 비를 맞는다는 건 객기리라. 부부가 하나씩 혹은 혼자서 우산을 펼쳐 들었다. 여행자의 일과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걷고 보고 느끼며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벽면 가득한 아줄레주가 비췻빛 매력을 뽐내는 상벤투 역(Sao Bento Train Station)에 다다랐다. 플랫폼에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한 기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리스본행 열차도 있다고 했다. 과연 어떤 레인의 기차가 빗속을 달일 리스본행인가? 그래 그 영화에서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가 붉은 코트와 오래된 책 한 권의 주인공을 찾아 리스본행 기차를 타던 바로 그 시각도 비가 내렸지.
 
"여기가 바로 포르토에서 유명한 도루(Douro) 강변 산책길입니다."
 
▲  도루(Douro) 강 변 산책길. 왼쪽으로는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고, 그 건너편에는 포르토 와인으로 유명한 와이너리들이 있다.
 
도루 강 변을 거닐 때는 잠시 비가 그쳤다. 때가 아닐까? 줄지은 노천카페가 한산하다. 비 내리는 날인데 왜 빨래를 내걸었을까? 시간깨나 쌓은 건물이 젖은 빨래 때문에 궁상맞아 보인다. 강 건너 와이너리 몇 곳 큼직한 간판들도 물안개로 희미하다. 강위를 오가는 관광용 케이블카도 대롱대롱 몸이 무거워 보인다.
 
그러나 낭만의 도시 포르토의 잠재력은 곳곳에 있다. 수만 가지 요리법이 존재한다는 염장 대구 요리 '바칼라우'가 그것을 증명한다. 늘어선 레스토랑 중 찾아 들어간 곳, 분위기나 친절보다 요리가 일품이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다다른 곳, 렐루 서점(Liviaria Lello)도 큼지막한 낭만 한 덩이다.
 
▲  렐루 서점(Liviaria Lello). 10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서점이요, 유럽에서 단연 손꼽히는 서점, 작가 조앤 롤링이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고자 자주 들렀다는 곳 세계 최고 수준의 인기 만점 서점, 대중에게는 해리포터를 촬영한 서점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곳.
 
10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서점이요, 유럽에서 단연 손꼽히는 서점, 작가 조앤 롤링이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고자 자주 들렀다는 곳 세계 최고 수준의 인기 만점 서점, 대중에게는 해리포터를 촬영한 서점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곳, 역시 흐린 날에도 그다운 낭만이 품위 있는 미소를 짓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비가 오락가락한다. 언덕길 많은 포르토, 볼 것 많은 길이 모두 촉촉하다. 앞서 걷는 길동무의 우산 깃을 닿을까 싶게 노면전차 트램이 스친다. 포르토의 중요한 교통수단 트램, 아 그렇다 비 내리는 날은 트램을 타지 않은 것도 낭만이다.   
 
▲  사진의 왼쪽 건물이 볼사 궁(palacio da Bolsa, Porto)으로 증권거래소였다.
 
▲  볼사 궁 입구의 홀(entrance hell) 바닥 중앙을 장식한 화려한 문양.
 
▲  볼사 궁 입구의 홀(entrance hell) 천장. 막혀있되 열린 이 공간은 천장이 8각 돔 형태다. 유리로 덮여있어 자연 채광을 누릴 수 있다
 
▲  볼사 궁의 아랍 방(Arab Room). 9세기에 유행한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벽과 천장이 온통 뒤 덥혀 있다. 그 화려함이 알람브라 궁전 내부를 능가할 듯하다. 포르토를 방문한 귀빈을 위해 연회가 이루어진 곳이었다 한다.
 
▲  볼사 궁 아랍 방의 화려한 기둥과 벽면 그리고 문틀.
 
볼사 궁(palacio da Bolsa, Porto)에 닿았다. 배가 닻을 내리듯 우산을 접는다. 이름은 궁인데 증권거래소였다니 자본에 사로잡혔던 것일까? 이름과 달리 건물 외부나 내부 장식에서 자본의 위력이 물씬 풍긴다. 입구의 홀(entrance hell)은 막혀있되 열린 공간이다. 천장이 8각 돔 형태다. 유리로 덮어 자연 채광을 누리게 했다. 건물 내부의 계단과 벽, 기둥의 돌들을 마치 밀가루 반죽 다루듯 화려하고 정교하게 빚어 놨다.
 
증권 거래 역할은 1990년대에 리스본으로 합병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역할은 관광객을 맡는 것이다. 포르토 역대 상공회의 회장들 사진이 나란히 걸려 여행객을 맞는다. 분쟁을 해결하는 재판소도 회의실도 여행객을 위해 다 문이 열린다. 황금의 방을 거쳐 아랍 방(Arab Room)이다. 9세기에 유행한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벽과 천장이 온통 뒤덮여 있다. 그 화려함이 알람브라 궁전 내부를 능가할 듯하다. 포르토를 방문한 귀빈을 위해 연회가 이루어진 곳이었다 한다.
 
아 그런데 이걸 어쩌나. 화려함과 정교함, 웅장함이 별 감동을 안기지 못한다. 자본과 인위로만 치장되어 있으니 숭고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여긴 낭만이 숨죽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낭만이란 처음부터 없던 곳이지 싶다.
 
리스본, 아! 테주 강
 
리스본 하면 왜 소매치기부터 떠오를까? 너무 표시 나게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그 업계에서는 좀 어설픈 실력자들이었을까? 아니면 동양인 여행객이 좀 쉬워 보였을까? 리스본 벨렘 지구를 거닐 때다. 커플로 위장한 세 팀이 에워싸듯 따라왔다. 이미 마드리드 시내와 프라도 미술관에서도 커플로 위장한 소매치기들을 봐왔던 터다.
 
산전수전 다 겪은 길동무다. 이미 눈치가 백단에 이르렀다. 일부러 가던 길을 멈추고 둘러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척 동태를 살폈다. 얼레, 그들도 멈추고 딴청을 핀다. 그러면서도 길동무들의 가방을 흘끔 거린다.
 
"이런 못된 녀석들을 봤나……"
 
복나눔씨다. 길동무가 복나눔씨를 믿는 것은 키가 그들보다 반 뼘은 크다는 점이다. 복나눔씨가 참았다. 나이 몇 년 만 젊었어도 안 참았을 그다.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예수는 복나눔씨가 믿고 복은 그들이 받는 순간이다. 뒤로 걸쳤던 가방을 앞으로 돌리고 각자 소지품 단속하는 것으로 일단락 짓기로 했다.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지만 불쾌함은 쉬 가시지 않는다. 이럴 때 화살이 날아가는 곳은 대개 먹는 거다. 잠깐 들른 슈퍼마켓에서 여성 길동무들이 장바구니 가득 과일을 담는다. 멜론은 단골이다. 묻지도 않는데 오늘은 홍시와 참외가 더 맛있어 보인다고 한다. 남성 길동무들 놀지 않는다. 와인 몇 병 챙긴다. 저녁 식사가 예약된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이 소란하다. 소매치기에 당하지 않은 사실이 곧 무용담이다. 그날 저녁 식사였던 리스본의 닭고기 구이는 단연 최고였다. 분명히 밝히거니와 결코, 무한 리필 때문이 아니다.
 
▲  참 맛이 특별했던 리스본의 닭구이 집 주방. 몇 명의 닭구이 담당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닭구이는 무한 제공이었다.
 
이쯤 되니 리스본의 명물인 발견의 기념탑과 벨렘탑, 제로니모스 수도원을 다른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왠지 밝지 못했고, 크게 흥미를 끌지 못했다. 발견의 기념탑 뒤편 바닥에 새겨 놓은 포르투갈의 항해 지도는 더욱 그랬다. 힘의 허망함이 새겨진 곳이었다. 포르투갈로서는 세계 곳곳을 지배했다는 그 사실이 영광이겠지만, 여행자의 느낌은 어째 그게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 가난한 나라가 되었지. 그때 복나눔씨처럼 참았어야지. 모험을 무릅쓰고 항해해 개척을 했으면 우호적이어야지 왜 갖은 것을 다 빼앗아 오고 무력으로 지배해? 역지사지, 처지 바꿔놓고 생각해 봐"
 
각설, '숨죽인 낭만'의 결정체는 바로 포르투갈어 테주 강(Tejo), 스페인어 타호 강이다. 타호 강은 이미 톨레도를 이야기할 때 등장했었다. 테주 강, 연장 1038킬로미터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긴 강이다. 총 유역 면적 또한 이베리아 반도에서 으뜸인 강이다.
 
▲  벨렘지구 대통령궁 앞 바스코다가마 동상
 
▲  포르토 구시가지의 돔 페드로 4세 동상
 
▲  발견의 기념탑 뒤편 바닥에 새겨 놓은 포르투갈의 항해 지도.
 
어디에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경을 가름하고, 또 어디에선가는 댐으로 식수원으로 활용 만점인 강, 어디선가는 넓은 충적 범람원으로 별천지를 조성하고 다시 어디선가는 계곡을 깎아 관광지를 빚은 강, 물의 은총과 지혜를 이베리아 반도에 새긴 강, 그리고 드디어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과 유럽에서 최고의 항구 기반으로 누운 강.
 
이 강이 더욱 감동인 것은 길동무와 만남이 벌써 세 번째라는 점이다. 여행 첫날 톨레도에서 만난 톨레도를 감싸고 흐르던 타호 강은 바로 허리였다. 그로부터 정확히 열하루 후 길동무 일행은 타호 강의 작은 숨결을 또 만났었다. 알바라신을 탐방할 때다. 타호 강의 수원지 알바라신 산맥 가르시아 샘으로부터 흐르던 타호 강의 상류를 바로 거기에서 만났다.
 
'타향에선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는 속담이 있다. 고향의 강을 타국에서 만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반갑고 가슴 뭉클할까? 리스본에서 만난 타호 강은 이미 강이 아니었다. 알바라신 산맥의 골 물도 아니었고, 건너편 소리가 들릴만한 넓이의 톨레도를 감싼 강도 아니었다. 몸을 불릴 대로 불린 파도가 출렁이는 망망한 바다였다. 이미 대서양 일부였다. 아 이 가슴 벅찬 뿌듯함이라니.
 
"사실, 인생을 결정하는 극적인 순간은 종종 놀라울 정도로 사소하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대사 중 하나다. 그래 내가 포르투갈의 브라가와 포르토, 리스본 세 곳의 느낌을 '숨죽인 낭만'으로 가름한 것도 정말 사소한 나만의 느낌일 수 있다. 어찌 포르투갈의 거친 낭만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하지 않으랴.
 
브라가와 포르토, 리스본이여! 우리 함께 할 낭만의 그 날을 위해 건배!  
 
하여, 엄중히 경고하노라. 여행자를 울리는 모든 소매치기들이여, 바라노니 다시는 길동무 복아무개씨의 인내심을 실험하지 말라! 그때는 결단코 나이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다. 부디 바라노니 길동무가 그 땅을 다시 밟기 전에 반드시 개과천선하여 새 삶을 살라.
 
▲  석양을 뒤로 한 벨렘탑. 스페인의 타호 강, 포르투갈에서는 이름이 바뀐 테주 강이 벨렘탑 뒤로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이 곳은 원래 인도·브라질 등으로 떠나는 배가 통관절차를 밟던 곳이다. 테주 강의 귀부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탑의 1층은 정치범들의 감옥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2층은 대포실, 3층은 귀빈실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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