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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허 연/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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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922회 작성일 2017-03-25 00:00

본문

살은 굳었고 나는 상스럽다
 
                                    시,  허 연
 
 굳은 채 남겨진 살이 있다. 상스러웠다는 흔적. 살기 위해 모양을 포기한 곳. 유독 몸의 몇 군데 지나치게 상스러운 부분이 있다. 먹고 살려고 상스러워졌던 곳. 포기도 못했고 가꾸지도 못한 곳이 있다. 몸의 몇 군데
 
흉터라면 차라리 지나간 일이지만. 끝나지도 않은 진행형의 상스러움이 있다. 치열했으나 보여 주기 싫은 곳. 밥벌이와 동선이 그대로 남은 곳. 절색의 여인도 상스러움 앞에선 운다. 사투리로 운다. 살은 굳었고 나는 오늘 상스럽다.
 
사랑했었다. 상스럽게.
 
 
NOTE
 
상처로 남은 일들이 있다. 무엇 때문인지, 우리는 그 상처를 들여다보고 약을 바르고 상처가 아물어 새살이 돋을 떄까지 기다릴 겨를이 없다. 상처는 굳은살이 되어 우리의 몸에, 우리의 마음에 여기저기 박힌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노라, 우리는 그 상처의 기억을 어루만지지도 못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꾸지도 못한 채, 보기 싫은 흉터로 남겨둔다.
 
누구에게나 몸의 몇 군데, 지나쳐버릴 수 없을 만큼 아픈 기억들이 흉터로 남아있다. 시인은 그  상처의 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굳은살이 될 때까지 견디는 것이 사는 일이라고 말한다. 밥벌이를 하느라, 혹은 내가 가진 능력 이상의 것들을 치루어 내느라 힘겹고 치열하게 싸웠던 흔적.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도록 굴욕스럽고, 숨기고 싶도록 비열하게 지나온 시간들이 부끄러운 상처로 아직 남아있다고 고백한다.
 
먹고 살려고 상스러워졌던 곳. 치열했으나 보여주기 싫은 곳. 포기하지도 못하고 가꾸지도 못한 곳. 밥벌이와 동선이 그대로 남은 곳. 살기 위해 모양을 포기한 곳. 위로 받지도 쓰다듬지도 못한 채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는 생채기.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누구에게도 드러내보이고 싶지 않은 내 삶의 흉터 자욱들.
 
그러나 시인은 밥벌이의 비루함과 상처에 울면서도 끝내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사랑이 그저 깊은 흉터 하나를 더 남기는 일이 될 뿐일지라도, 상처 앞에 함께 우는 여인이 있다면  또 상스러워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언젠가 그 사랑 앞에서 환히 웃으며 이리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 모든 상처들 속의 너와 나여, “사랑했었다. 상스럽게.”
 
 
글쓴이: 채인숙 /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카피라이터, 라디오작가,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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