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루왁 커피에 얽히고설킨 기막힌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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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고양이와 산지기, 산마을 사람들과 산악회원들
▲ 닭을 세 마리 담은 바구니를 짊어지고 산에 오르다
▲ 닭 바구니 걸머지고
▲ 바구니에 얌전히 앉은 닭 세 마리
닭 세 마리가 등산객에게 업혔다. 등산객은 인도네시아 한인 산악회 <산빠람> 회원이다. 배낭 뒤 매단 바구니가 한 걸음 두 걸음 옮길 때마다 흔들거린다. 묶이지도 않았는데 닭은 쥐죽은 듯 앉아 있다. 친구 형제들 곁을 떠나 더 높고 깊은 산속으로 팔려가는 것이 매우 서러울까?
"그나마 셋이 함께 팔려가니 다행이여. 너희들은 시방 좋은 데로 살러 가는 거여. 지금 가는 곳이 아까 그 집보다 닭살이 하기에 아마 열 배는 좋을 것이니."
닭이 가는 곳은 등산객이 오가다 머무는 산지기 집이다. 자카르타 인근 보고르 지역 '리디아산' 기슭에 있다. 산지기 집은 뜰이 넓다. 옆으로는 항상 고랑 물이 졸졸 흐른다. 집 주변에는 사철 푸른 풀밭이 너르게 펼쳐져 있다. 헤치고 쪼기만 하면 먹잇감이 부지기수일 것임은 딱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산지기 집에 사는 닭들의 깃털에서는 항상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건강미 짱이다. 배짱도 좋다. 등산객이 남는 밥을 던져줄 때면 놀러 온 먼 집 개를 호령하기도 하고, 등산객이 다가가도 웬만해선 피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 집에선 더러 살생이 발생한다. 지난주에도 또 같은 일이 생겼다. 산골 외딴집 고요한 밤을 소란에 떨게 한 침입자가 있었다. 늘 그렇듯 주변에서 야생하는 사향고양이 루왁(Luwak)이 출몰했다. 몇 주 전에도 같은 일로 닭 식구가 줄었는데, 그나마 단출했던 닭 가족 두 마리를 죽이고 또 한 마리를 물고 달아났다 했다.
남은 닭 중 유난히 짠한 느낌이 드는 닭이 있었다. 얼마 전 엄마를 잃고 아빠에게 의지하던 어린 닭이다. 제법 자란 탓에 아빠 닭이 밀쳐내며 푸대접을 하는데도 아빠 곁을 졸졸따라 다니더니 그만 아빠도 잃었다.
"이런 빌어먹을 사향 괭이 같으니라고…."
성질 급한 산빠람 회원 아무개씨가 캭 침을 뱉는다. 욕을 뱉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하여튼 사향고양이 루왁이 빌어먹을 리 결코 없다. 루왁은 매우 빠르다. 주로 밤에 활동한다는 루왁이 이른 아침 등산길에 아주 가끔 발견되기도 한다. 누군가 "와~ 루왁이다" 하면 벌써 뛰고 날라 저만치 달아난다. 나뭇가지를 흔들어 방향까지 알려주며 사라진다. 잡지도 못할 테고 차분히 보지도 못할 것이니 흔들리는 숲이나 보라고.
루왁은 사냥 솜씨도 뛰어나다. 쥐나 개구리. 카멜레온, 뱀, 지네, 달팽이 등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는다. 그런데 뭔 심뽄지 툭하면 산지기 집에 침입해 닭을 채간다. 근데 이게 산빠람 회원들에게 심각한 도전이다. 산지기집 닭의 실제 소유주는 산빠람 회원들이기 때문이다.
"야생 닭이 어찌 우리가 먹는 닭백숙만 별미것어? 갸에게는 날 것으로도 맛있것지."
불난 회원에게 부채질하는 회원도 있다. 아 그러고 보니 그가 닭띠인 것 같다. 어쨌든 이번에 닭을 잃은 것은 순전히 산지기의 관리 소홀이다. 루왁에게 빌미를 줬다. 밤이면 닭이 들어가 잠을 자는 헌 닭장을 고치지 않은 탓이다. 닭을 잃었으니 닭장을 고쳐야 한다. 가난한 산지기, 닭을 잃어버리고도 별로 미안해하는 구석도 없는 산지기가 자기 돈을 들여 닭장을 고칠 리 없다. 이들의 정서니 어쩌랴. 철망을 사줬다.
그리고 오늘 아빠 잃은 어린 닭, 딱 그 또래 세 마리를 더 사가는 중이다.
▲ 베이스 캠프 역할을 톡톡히 하는 산지기 집
루왁 똥이 산지기 집으로 모인다
이야기는 여기부터가 진짜다. 얽히고설킨 관계 때문이다. 루왁과 산지기, 띄엄띄엄 산에 묻혀 사는 산마을 사람들, 그리고 우리 산빠람 회원들이 다 얽힌 일이다. 실상은 사향고양이 루왁의 후식 때문이다. 동물도 후식을 먹는다. 사람만 후식 먹겠다고 특허 낸 것 아니니 할 말 없다. 근데 하필 이 녀석 후식이 커피인 게 문제다. 선택한 후식치곤 제법이다. 물론 커피를 끓여 마시는 것은 아니다. 익은 열매를 따 먹는 것이니 실색할 일이 아니다.
사냥 솜씨가 좋은 루왁이 육식으로 배가 부르면 소화성분이 강한 커피콩을 둘러싼 과육을 찾는다. 야생 커피나무를 순례하며 커피를 따먹는 것이다. 그리고 소화를 시킬 수 없는 커피 알맹이는 고스란히 배설한다. 그 배설물, 즉 루왁의 똥으로 만든 것이 그 유명한 루왁 커피 아닌가(관련기사 : 말 많고 탈 많은 루왁 커피, 제맛 보려면).
이 똥, 바로 산마을 사람들에게 짭짤한 수입원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커피가 익을 때를 기다린다. 루왁이 건강하게 활발한 활동하기를 기대한다. 산빠람 소유의 닭을 잡아먹는 것은 알 바 아니다. 루왁이 커피 똥을 많이 싸기를 바란다. 그리고 비닐봉지 하나씩 들고 루왁 똥 찾아 산과 골을 누빈다. 그 루왁 똥이 최종 모이는 곳이 바로 산지기 집이다. 팔기 위해 산지기에게 위탁한다.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잦은 곳이기 때문이다.
▲ 산지기 집 앞 마당에 널린 사향고양이 루왁 배설물
각설하고 산빠람 회원들에게는 루왁 똥이 혐오의 대상이어야 한다. 그야말로 똥 취급해야 한다. 더러워서가 아니라 허락도 없이 닭을 잡아간 루왁의 똥 따위는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 그걸 일반 커피 몇 배의 가치를 인정하며 사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산빠람 회원들은 그게 아니다. 닭 빼앗긴 사실을 언제 당했냐는 듯 까먹고, 오매불망 루왁 똥을 기다렸다는 듯 덥석 산다.
심지어 작전을 짜서 산다. 너도나도 나서면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대표 한 사람이 비장한 마음으로 나선다. 산지기를 매수(?)해서 선금을 줘가며 그것도 싹쓸이를 시도한다. 그래 봤자다. 모인 루왁 배설물이 대부분 빈약하다. 시즌이라야 산지기 집에 한 주간 모인 것이 20∼30kg이다. 그것도 몇 주 반짝인데 그나마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양이 대폭 준다.
다행이랄까? 사지 않겠다는 회원도 생긴다. 루왁 똥을 사가지고 가서 아내에게 혼쭐이 난 경우다. 사실 루왁 배설물이 커피로 마실 수 있기까지는 너무 일이 많다. 아파트와 같은 일반 가정에서 하기에는 마뜩잖다. 그러나 손수 손질할 수만 있다면 그리 맛보는 느낌이란 참 특별하다. 그 독특한 맛과 향을 아는 지인에게 감탄사를 들을 때는 그저 우쭐해진다. 일반 커피와 섞인 것이 대다수일 수밖에 없음을 아는지라 더욱 그렇다.
닭 잡아간 루왁으로 인해 따져본 관계가 이리 복잡하다. 하니 어지간한 세상사야 따져 보기를 피해야 한다. 목숨 걸 일 아니면.
▲ 커피 한 잔 놓고
쪼르륵~
루왁 커피 드립이 끝났다는 신호다. 한 잔 마시고 또 하루를 시작해야겠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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