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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바띡, 느린 영혼의 여행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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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경의 잘란잘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9,329회 작성일 2017-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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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가지 금지된 문양들 Motif Larangan
 
글. 사공 경 / 한인니문화연구원장 
 
*무단복제 금지
 
 
금지된 문양. 갑자기 격렬한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복식에 대해 평민과 왕족은 구분되어 있었다. 또한 자바 궁중에서 만들어진 바띡 문양의 예술성과 바띡 제작기술이 평민들에게 빠르게 전파되고 인기를 끌자 왕궁에서는 서둘러 특정 문양에 대해 금지령을 내렸다. 바띡에 대한 애착과 왕궁의 권위를 위해 18세기 족자와 수라까르따(솔로) 왕궁(Kraton)은 특별하게 궁중 사람들만 입을 수 있는 문양을 법령으로 제정하였다. Sultan(왕)들은 세 차례, 즉 1769년, 1784년, 1790년에 몇몇 문양들에 대해 평민들에게 착용 금지령을 선포하였다. 어떤 문양은 왕족 중에서도 왕세자에게만 허용되었고, 어떤 문양은 왕실 사촌들에게 허용되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 특히 해안지역 사람들과 왕궁이 없는 뻐깔롱안(Pekalongan) 지역 사람들은 그러한 칙령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계급적으로 엄격한 궁중 예법을 지키는 족자, 솔로에서는 ‘금지된 문양들’이 계급과 상황에 맞게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엄격하게 적용하였다. 특히 족자가 솔로보다 더 엄격하게 규칙을 지켰다.
 
바띡사업가(1972년 바틱 공장 China Seas, Inc 설립) 및 사진작가로 활발히 활동했던 미국인 여류 예술가 엘리엇(Elliott)은 “Batik, Fabled Cloth of Java”(1984년 作)에서 가장 잘 알려진 금지된 문양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까웅문양 Motif Kawung
 
까웅문양은 자바힌두인들의 신성하고 질서 정연한 우주관을 표현한 문양으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 4개의 타원형이 맞닿아 있는 형태에 중앙에 마름모꼴이 있다.
 
이 문양은 아렌 야자나무(aren palm) 열매의 단면을 닮았으며 거기서 비롯되었다고 추정한다. 왜냐하면 아렌나무의 옛 이름이 까웅이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문양인 까웅문양은 또한 연꽃을 단순화한 4개의 꽃잎처럼 보이기도 한다. 4개의 타원 중앙에는 ‘+’ 모양이 있는데 이는 우주의 연결된 힘의 근원을 나타낸다. 4개의 타원과 중앙의 마름모는 힌두교에서 우주를 이루는 5가지(물, 불, 공기, 땅, 바람)의 원소를 의미한다.
 
한편, 4개의 타원은 방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농사가 주업이었던 자바인들에게는 태양의 방향이 중요했다. 중앙의 마름모는 신이 사는 곳을 의미한다. 그래서 자바인들은 모든 방향이 중앙에서 시작되고, 인생은 동쪽에서 출발하여 북쪽에서 끝난다고 믿는다. 까웅문양 바띡은 시신을 감쌀 때도 사용된다. 자바인들은 우주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 까웅문양 바띡을 사용함으로써 망자가 무탈하게 빨리 신에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까웅문양의 가운데 마름모 믈린존(Mlinjon)은 사람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타원에 둘러싸여 있는 모양이 사방(四方)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사람들은 균형 잡힌 삶을 바라는 마음에서 까웅문양의 바띡을 입기도 한다.
 
빠랑문양 Motif Parang
 
빠랑은 인도네시아의 전통 검인 끄리스(Keris)를 상징하며, 악을 이기는 힘과 발전, 권력을 함축하고 있다. 사람들은 빠랑문양 바띡이 불운을 막아 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특히 이 문양은 흠이 없어야 신비스러운 힘을 지니며, 흠이 있으면 문양이 가지는 힘이 약해진다고 믿었다. 빠랑문양은 또한 파도를 상징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계속되는 파도처럼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을 가르친다.
 
빠랑루삭문양 Motif Parang rusak
 
 
루삭은 ‘파괴된, 부서진’이라는 뜻의 단어로, 그 문양은 ‘적을 무찌른다, 적이 패배했다’라는 의미로 힘과 권력을 상징한다. 또한, 긴 칼이라는 의미도 있다. 왕 또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이 문양을 입을 수 있었다. 빠랑루삭문양을 다양한 대각선 문양으로 우아하게 변형한 것이다. 파도처럼 자연 에너지의 근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설적인 마따람(Mataram) 왕국을 세운 세노빠띠(Senopati, 1587년-1601년) 왕은 북부 왕국의 공격을 피해 남쪽 빠랑뜨리띠스 해변에 갔다. 그가 명상을 하다가 파도에 부서지는 바위를 보고 영감을 얻어 빠랑루삭 문양을 고안했다고 유명 바띡 디자이너 이완 띠르따(Iwan Tirta)는 주장한다. 또한 왕은 그곳에서 해안에 살고 있는 끼둘여신(Ratu Kidul)을 만났다고 한다. 세노빠띠 왕은 끼둘여신의 관심으로 존재의 인식과 본질을 구현하게 된다. 세노빠띠 왕에 대한 연정으로 그때부터 날마다 가슴이 젖은 끼둘여신은 세노빠띠 왕의 손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오늘날까지 매년 솔로와 족자왕궁에서는 끼둘여신에게 재물을 바치는 관습이 내려오고 있는데, 직물재물로는 빠랑루삭문양의 바띡을 바친다.
 
 
또한 이완 띠르따가 쓴 책에 의하면 빠랑루삭은 문양의 크기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고 한다. 설화 라마야나(Ramayana)의 등장인물의 성격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큰 크기의 빠랑루삭 바롱(Barong)은 거인 꿈빠르까르나(Kumbakarna) 왕자를 상징하고, 작은 크기의 빠랑루삭 끌리띡(Klithik)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데위 시띠(Dewi Siti) 공주를 상징한다.
 
쯔무끼란문양 Motif Cemukiran
 
이 문양은 연꽃에서 유래했으며 통치자의 상징이다. 빠랑과 비슷한 문양에 광선 모양이 더해졌다. 주로 까인빤장(Kain panjang, 긴치마)이나 마름모 모양의 이깟 끄빨라(Ikat Kepala, 두건)의 가장 자리에 사용한다. 그래서 왕궁사람들이 착용하는 모자(Belangkon)에서도 이 문양을 많이 볼 수 있다.
 
 
사왓문양 Motif Sawa
 
사왓문양은 큰 날개라는 뜻으로 창조의 신 위스누(Wisnu)가 타고 다녔던 불멸의 새 가루다(Garuda)를 상징한다. 이는 힌두자바 신화에 나오는 사람의 몸과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 꼬리를 가진 상상의 새이다. 가루다의 한쪽 날개만을 도식화 한 것을 라르(Lar), 양날개가 있는 것을 사왓(sawat), 양날개에 꼬리가 있는 것을 가루다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통칭 라르라 하기도 한다. 이 문양도 왕관과 함께 최고의 권력을 상징한다.
 
우단리리스문양 Motif Udan Liris
우단리리스 문양은 농사에 있어 풍작을 기원하는 문양으로 가랑비를 뜻한다. 마치 가랑비가 내리는 것처럼 가늘게 사선으로 흘러내리는 문양이다. 다양한 자연의 형태가 조화롭게 그려져 있으며 풍요, 번영, 비옥, 신에 대한 은총을 상징한다.
 
스맨문양 Motif Semen
 
스맨문양은 새싹이나고 자란다는 뜻으로 비옥한 결실과 번영하는 삶을 상징하며 힘과 권력의 중심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주질서에 대한 자바 사람들의 믿음뿐만 아니라 다산에 대한 숭배를 나타내는 상징들로 가득 차 있다. 문양 중 산은 신이 살고 있는 신성한 곳이며, 사원과 누각은 명상하는 장소, 날개는 영의 세계로 가는 수단, 동물은 지구, 새는 하늘, 뱀이나 용은 지구 및 지하 세계의 어머니를 상징한다. 덩굴손이나 단순하게 정형화된 동식물 군은 다산을 상징한다. 다시 말하면, 식물, 동물, 사원 및 산과 같이 토지와 관련된 것은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의미하고, 날개, 새, 가루다와 같이 공기와 관련된 것들은 신들이 사는 세상을 의미한다. 그리고 뱀, 물고기, 개구리와 같이 바다나 물과 관련이 있는 것들은 지하세계, 즉 유령들이 사는 세상 혹은 악의 세상을 상징한다. 이러한 세 개의 세계가 조화를 이루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알라산알라산문양 Motif Alasalasan
 
삶과 다산을 상징하는 처녀림을 의미하며, 동식물의 풍성한 결실 및 농작물의 보호를 나타낸다. 산을 배경으로 덩굴손이 연속적으로 펼쳐져 있고 자연 상태의 동식물과 세상 사람들의 생활을 그린다. 사람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자연과 조화롭게 행복하게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또한 이 문양은 스맨과 비슷한 모티브로 스맨보다 먼저 존재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대체로 금박으로 장식을 강조한다.
 
또 어떤 바띡연구가들은 금지문양에 Rujak Sente(우단리리스 비슷하나 배경이 어둡다.) Garuda Ageng(꼬리가 있는 큰 가루다)를 넣기도 한다. 물론 그 외에도 금지된 문양이 있다. 금지되었다는 것은 비밀이 가득함을 의미한다. 그래서일까. 엘리엇은 바띡을 전설의 옷이라고 말한다. 아무튼 19C초부터는 모든 사람에게 바띡문양이 허용되었다. 바띡은 드디어 모든 인도네시아인들에게로 온 것이다. 허나 아직도 전통을 존중하는 족자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라랑안 문양이 들어간 바띡은 착용하나 전적으로 라랑안 문양으로 만들어진 바띡은 잘 입지 않는다.
 
지금은 철학적 상징으로 가득했던 문양의 특별한 의미보다는 아름다운 디자인이 더 부각되기도 하지만 아직도 인도네시아 사람들, 특히 자바 사람들은 문양의 상징을 새기며 바띡을 입고 철학적인 삶을 살고 있다.  
 
라라안 문양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자바인들은 자연, 신,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균형이 잡힌 삶을 추구한다. 아시다시피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발전된 사회이며 사회학적 상상력이 풍부한 사회인 것이다. 그들은 바띡을 통해 신의 가르침과 삶의 의미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배우며 그 옛날부터 그렇게 성숙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Batik A Play of Light and Shades by Iwan Tirta
Batik Fabled Cloth of Java by Inger McCabe Elliott (19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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