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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신비의 세계' 바르셀로나 몬세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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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871회 작성일 2017-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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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부부의 인상파식 여행] 아! 이베리아 반도 
 
▲  몬세라트 산과 수도원
 
"뭘 그렇게 간절하게 빌었어?"
 
묻고 나서 아차 싶다. 이런 거 함부로 묻는 게 아닌데∼. 스페인 바르셀로나 인근 몬세라트(Montserrat) 수도원에서다. 수도원의 명물 '검은 성모상(La Moreneta)'을 친견할 때다. 그 앞에 무릎을 꿇은 한정보씨 모습이 참 경건하고 간절해 보였다. 그의 뒤에 줄을 이은 탓에 그의 행동을 눈여겨보게 된 것이 툭 삐져나온 질문의 발단이다. 기왕 그의 뒤에서 줄을 섰으니 그의 진중함에 적당히 묻어가자는 속셈도 있었다. 길동무들 또한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 모두의 눈길이 한정보씨에게 멎었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다국적 인파로 붐볐다.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진 때문일까? 검은 성모상을 만나려는 사람들도 많다. 입장 시간을 정해놓은 것도 입장객 수를 제한하는 것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줄을 선 길동무 모두 아주 천천히 뒤를 따랐다. 기다림과 다를 바 없는 느린 걸음, 성소에 들면서부터는 모두 엄숙한 몸가짐에 발걸음도 진중하다. 종교의 유무와 종류 신앙심의 높낮이, 방문 목적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모두가 숙연한 모습이다.
 
▲  몬세라트 수도원 바실리까 내부. 300년 역사를 지닌 몬세라트 수도원 소년 성가대의 공연을 보기 위한 인파가 인산인해였다.
 
느림에는 분명 그다운 미학이 있다. 카펠라(Cappella)를 천천히 살펴볼 수 있어 좋다. 천국과 지옥문 열쇠 두 개를 쥔 남자 베드로 성인을 찬찬히 뜯어볼 수 있어 좋다. 거동이 불편한 순례자를 정성으로 돕는 또 다른 순례자의 사랑이 한가득 넘친다. 보는 이들의 마음도 흐뭇하다. 은은히 퍼지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귀를 타고 가슴으로 흐른다. 모두를 위한 아름다운 소리의 세례가 따뜻하다.
 
수도원의 내부는 단조로운 겉모습과 달리 화려하다. 몬세라트 바위산처럼 장중하다. 그 장중함과 화려함 속에서도 아주 은밀하고 겸손하게 도드라지는 것이 있다. 검은 성모상을 만나기 위해 오르는 계단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밟았을까? 동판이 닳고 닳아 눈에 띄게 파였다. 금빛보다 더 반짝이는 그 자리, 계단을 올랐던 사람들의 염원이 그리 빛나는 것이리라.
 
▲  몬세라트 수도원 바실리카의 흑성모 조각상
 
내가 검은 성모상 앞에 설 차례, 감연히 우러러본다. 이 성모자(聖母子) 목조상은 탄소 연대 측정으로 12세기 것임이 밝혀졌단다. 성 누가가 조각한 것을 사도 베드로가 스페인으로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고도 했다. 무어인이 지배할 당시 동굴 속에 감춰져 있던 것이 양치는 목동들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천천히 다가가 느긋이 마주한 검은 색의 성모자 상, 모자상이 보기에 참 편안하다. 모든 색을 수용하는 검은 색이 집중하게 한다. 모든 색을 혼합하면 드러나는 색이니 기도 또한 무한 수용될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지 모르게 동양적 풍모도 풍긴다. 이래저래 기도하는 마음도 마음 놓고 원색이 된다. 기도를 받는 대상과 기도하는 마음 모두 태초 적이니 더 바랄 바 무엇이랴.
 
검은색의 성모자 상을 친견하고 난 후에도 길동무들의 발걸음은 조신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둥근 방을 지나 성당 뒤편으로 나가는 문을 지나서야 긴 숨들을 토한다. 긴 호흡에 흔들거리는 것이 있다. 성당 뒤안길 소원을 비는 장소에 켜진 촛불들이다. 색색의 초가 소망도 화려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  오묘하고 장엄한 갖가지 모양의 바위 집합체 몬세라트
 
"제가 아는 젊은 친구 전셋집 얻기를 바란다고 빌었어요."
 
길동무 모두의 눈길을 피할 수 없었던 한정보씨 대답이다. 과연 한정보씨답다. 멀리 여행을 와서 많은 기적이 그의 중재력이라고 알려진 흑성모께 소원한 것이 이웃의 전셋값이라. 참 엉뚱하고 상큼하다. 검은 성모상이 그의 소원을 쾌히 수용해줄 것 같다. 검은 흑에서 아름다운 꽃 한 송이 피어나듯, 검은 줄기 나무에서 튼실한 열매 열려 익어가듯 아름다운 결실이 보기 좋게 드러날 것 같다.
 
▲  신비한 바위산 몬세라트와 수도원 부속 건물
 
▲  산책길에서 바라본 산타코바 전망대
 
몬세라트(Montserrat)는 '톱니 모양의 산'을 뜻한다 했다. 바르셀로나 북서쪽 약 50km 지점의 해발 1236m 높이의 바위산, 몬세라트는 메시지가 명료했다. 두 가지다. 하나는 '품 안에 깊이 파고들라'다. 온전히 자기를 몬세라트에 맡긴다면 분명 그에 답할 것이라고 확신을 주는 모습이다.
 
몬세라트는 아주 오래 전부터 수도자들의 영토였다. 허물어지지 않을 신앙의 산을 쌓고자 하는 수도자들이 가깝고 먼 곳으로부터 모여든 곳이다. 자신의 믿음이 바위처럼 단단해지고자 원하는 수도자들이 바위굴에 들어 자신을 닦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  침식 작용으로 기암과 괴석으로 드러난 사암과 역암(礫岩) 산봉우리들
 
또 하나의 몬세라트 메시지는 '멀리 보라'다. 자신을 던져 몬세라트에 파고들지 못할 바엔 적당히 다가오지 말고 그냥 멀리서 바라보라는 느낌이다. 정좌하여 그 신비한 모습을 오래 바라보며 더 넓은 세계를 생각하라 한다.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과 마주 선 모든 세상과 사물을 온전히 인정하라 한다. 자기마저 멀리 떼놓고 바라볼 것을 아주 육중하게 제시한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는 몬세라트를 바라보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몬세라트의 뜻을 깨우치고 자기 식으로 발현했다. 둘의 조화가 위대함으로 드러났다.
 
▲  멀리 희미하게 신비한 모습을 드러낸 만래사에서 바라본 몬세라트 산.
 
"저기가 어디죠?"
"우리가 갈 곳 몬세라트입니다."
"저기가 우리가 갈 수 있는 세계입니까?"
 
참으로 어리둥절한 질문을 던진 곳은 만레사(Manresa)였다. 몬세라트에 닿기 전 길동무가 탐방한 곳 바르셀로나 주의 작은 도시 만레사, 만레사는 이냐시오 성인(Ignacio de Loyola)이 바위굴에 들어앉아 수도한 동굴 성당이 있는 곳이다.
 
만레사에서 바라본 몬세라트는 신비였다. 닿지 못할 영험의 세계 같았다. 다가가면 사라질 신기루 같기도 했다. 몬세라트와 15km 떨어진 동네 만레사, 바로 그곳은 몬세라트가 제시하는 '멀리 보라'의 최적 거리일까? 군인이었던 이냐시오, 칼을 찬 자신을 항상 자랑스러워하던 그가 왜 몬세라트의 검은 성모께 칼을 놓아두고, 밤새워 기도한 다음 만래사로 가 수도를 시작했을까?
 
▲  이냐시오 성인(Ignacio de Loyola)의 모습
 
▲  이냐시오 성인(Ignacio de Loyola)이 앉자 수도한 바위굴. 지금은 작은 성당으로 꾸며져 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예수회를 창립한 창의력과 실천을 겸비한 학자다. 가톨릭의 뛰어난 영적 지도자요 현재까지도 수많은 가톨릭 신도들에게 참 영신 수련을 깨닫게 하는 성인이다. 특히 그의 영신 수련은 기도 방법뿐 아니라 삶의 근본 태도를 바꾸는 데 필요한 지력과 의지의 수련법으로 존중받고 있다.
 
"이냐시오 성인은 단 한시라도 회심의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몬세라트의 산봉우리가 보이는 만레사의 동굴에서 고행했다고 합니다. 단식이 일상이었는데, 나무 탁발 그릇을 들고 겨우 생명을 유지할 정도만 문전걸식했다고 합니다. 어둡고 습한 동굴 안에서 추위를 견디며 수도를 하는 동안, 자살을 생각할 만큼 어두운 밤에 갇힌 자신의 영혼에 대해 고민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만레사를 떠나 몬세라트로 가는 길은 잘 닦인 길이었다. 그러나 여행자가 편안히 즐길 길이 아니었다. 빼어난 풍경이 압도하는 길이었다. 차창에 비쳤다가 구비를 돌 때면 사라지는 몬세라트, 다가갈수록 그 모습은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다가갈수록 신비가 사실로 다가오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다가갈수록 근원으로 다가가는 느낌이 점점 커졌다.
 
몬세라트는 그러했다. 자연(自然)이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했다. 사람과 물질 모두의 고유성이자 본질처럼 스스로 존재하는 천연 그대로의 상태로서 저절로 그렇게 이루어진 곳, 그러므로 몬세라트는 '품 안에 깊이 파고들라'거나 '멀리 보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그냥 열린 것을 열린 마음으로 보기를 기다린다. 마음을 열고 마음을 채우는 것이 마음의 문제 더 이상이 아니므로 품에 들거나 멀리 떨어질 것을 스스로 깨우치라 한다.
 
▲  몬세라트의 위용과 그 너머로 펼쳐진 힘찬 풍경
 
깎이고 다듬어진 곳 몬세라트, 바다에서 융기하여 깎이고 닳아 지구의 뼈로 남은 곳, 하늘 아래 땅이되 산, 산이되 바위덩이, 솟을 만큼 높이 솟아서도 시속의 욕망이 느껴지지 않은 곳, 그러므로 몬세라트의 품에 안겨 그 숨결을 느끼는 것은 참 놀라운 기운의 체감이 아닐 수 없다.
 
바위산 몬세라트는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는 말을 긍정하지 않았다. '단순한 것이 더 많은 생각을 이끌어낸다'라는 진리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그래서 단조롭고 평범한 느낌이 강한 수도원의 외형은 더 돋보인다. 따져보지 않으면 참으로 단조로운 색 검은 성모상은 더욱 인상적이다. 바위의 무거움을 피하지 않는 곳이며, 바위를 다스리는 힘을 보여주는 곳이다. 진리를 밝히는 세상의 경전들이 또 하나의 실체를 만나는 곳이다.
 
진정한 경전 중 하나가 자연임을 또 그렇게 역설하는 곳, 몬세라트의 암시는 분명 질이다. 삶의 질이고 신앙의 질이다. 누가 알아주는 것, 가진 것과도 상관없는 것, 희망이 들끓지 않아도 마음이 늘 흡족하게 차오르는 것을 찾으라는 침묵의 암시다. 그 암시는 어쩌면 공기와도 같다. 그저 열심히 숨쉬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공기, 세상에서 가장 헐값인 공기, 차단되는 순간 곧 생명의 차단인 공기, 그래서 꼭 양질이어야 좋을 공기, 몬세라트의 암시는 분명 질이다.
 
▲  분위기와 값보다 맛이 따르지 못했던 몬세라트의 동굴 레스토랑
 
▲  몬세라트 전망대를 가기 위해 타야하는 푸니쿨라
 
그러기에 그곳에서 하룻밤 꼭 머물고자 했던 길동무 길대장의 애초 계획은 선견지명이었고, 노력에도 불구하고 숙소를 구할 수 없었던 것은 길동무 모두가 아쉬움이다. 분위기와 값보다 맛이 따르지 못했던 동굴 레스토랑을 다시 가지 않게 된 것이야 왜 다행히 아니랴만, 몬세라트의 어둠과 아침을 함께하지 못한 것은 쉽게 떨치기 어려운 아쉬움이다. 그러므로 2천 개가 넘는 트레킹 코스는 발 아래 묻는다. 산재한다는 동굴 수도처 탐방과 선사시대에 사람이 거주했음을 보여주는 유적지들은 상상으로 즐기리라.
 
▲ 몬세라트 수도원을 찾는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은 ‘성 조르디’ 조각상. 조각상의 눈동자가 보는 사람을 따라 움직이는 착시를 일으키는 것은 얼굴 부분이 음각되어 있고 눈동자 부분이 더 깊게 파여져 있어,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시선이 마주쳐 보이기 때문이다.
 
"길동무 재롱둥이 유프카 씨 '성 조르디' 조각상 앞에서 재롱 오래 기억할게요. 조각상이 오가는 사람을 감시한다는 말을 확인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녔지요? 덕분에 길동무들 한바탕 웃었어요. 그 조각상 작가가 바로 가우디를 이어 바르셀로나 성가족성당 예술 감독을 지낸 '조셉 마리아 수라비치'라는 것 알았지요? 우리가 성가족성당을 탐방하며 놀라고 감탄한 수난의 파사드를 조각한 그 작가 말입니다."
 
▲  몬세라트를 배경으로 길동무
 
300년 역사를 지닌 몬세라트 수도원 소년 성가대의 마음을 울린 공연 관람은 길동무에게 복이었다. 매년 수천 명의 지원자가 몰려들지만 한두 명을 뽑는데 그친다는 그들을 가까이서 만난 것은 어떤 성인의 안수(按手)였다. 그들을 만나러 온 유치원생들의 천진한 모습, 그 어린 손길로 서로를 챙겨주던 배려는 천사와의 조우 바로 그것이었다.
 
푸니쿨라를 타고 몬세라트의 허리를 더듬은 순간들을 길동무 누가 잊으랴. 산타코바 전망대로 가는 산책길 그 힘찬 풍광을 길동무 누구라서 쉽게 마음에서 지울 수 있으랴. 그 시공에 함께 하는 길동무의 자취를 새길 수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최상의 체험이 아니랴.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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