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 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열린 책들) > 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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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창문 넘어 도망 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열린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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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310회 작성일 2017-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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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좀 더 일찍 결정을 내려 남자답게 그 결정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알란 칼손은 행동하기 전에 오래 생각하는 타입이 아니었다.다시 말해 노인의 머릿속에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그는벌써 말름셰핑 마을에 위치한 양로원 1층의 자기 방 창문을 열고 아래 화단으로 뛰어내리고 있었다.이 곡예에 가까운 동작으로 그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사실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으니, 이날 알란은 백 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백 회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양로원 라운지에서 한 시간 후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시장도 초대되었고,한 지역 신문도 달려와 이 행사를 취재하기로 되어 있었다. 지금 노인들은 모두 최대한 멋지게 차려입고 기다리는 중이었고, 성질머리 고약한 알리스 원장을 위시한 양로원 직원 일동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파티의 주인공만이 불참하게 될 거였다.
 
 
NOTE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잠시 후 100세 생일을 앞두고 있는 알란이라는 노인이다. 노인은 100세가 되는 아침, 양로원을 탈출해서 자유로운 삶을 찾기로 결심한다. 사실 그것이 결코 실행하기 쉬운 일은 아니다. 텍스트에 언급되었듯이 양로원이 있는 이 도시의 시장과 양로원의 오랜 벗들, 게다가 언론사의 취재진까지 자신의 파티를 취재하기 위해오고 있는 중이었다.그러나 원래 타고난 천성이 고민같은 걸 깊게 하는 스타일이 아닌 관계로 알란은 황당무계한 이 계획을 덜컥 실행에 옮겨버린다. 그는 창문 너머 오로지 자유로운 자신의 삶을 찾아 이제 마악 100세의 탈출을 시도한 것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양로원을 탈출하자 마자 버스 정류장에서 갱단의 돈보따리를 떠맡는 불행(아니, 사실은 행운?)이 닥쳐온다. 이후부터 돈보따리를 찾으려는 갱단을 피해 도망을 다니는 노인의 하루하루와 세계사의 엄청난 사건들과 천연덕스럽게 마주쳤던 노인의 과거가 기묘하게 맞물리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엉뚱하고 기이하기까지 한 그의 경험들은 당연히 소설 속에서나 가능할 이야기들이지만,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면서 ‘어어’하고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저도 모르게 ‘푸하핫’하고 한방 웃음이 터지는 유쾌하고 코믹한 독서를 경험하게 된다.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온갖 사건들에 개입되면서도 그의 행보는 늘 천연덕스럽고 능청맞다. 

그가 세계사를 바꾼 이야기는 수도 없다. 어릴 때부터 폭탄 만들기를 좋아하던 특이한 취미 때문에스페인 내전에서 교량 폭파를 돕다가 적군인 프랑코 총통을 구하고, 미국의 핵폭탄 연구소에서 써빙 일을 하다가 단순명료하기 짝이 없는 해결책을 제시하며 원자폭탄을 제조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게되는 식이다. 그가 별 쓸모도 없다고 생각했던 정보들을 이야기 해 준 덕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마오쩌뚱의 아내를 구해주기도 하며, 북한으로 가서 김일성과 그의 어린 아들 김정일을 만나는 일화도 등장한다. 이야기에 다르면 그때 알란이 어린 김정일에게 거짓말을 했던 사실이 들통나지만 않았어도 한반도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알란의 탈출이 끝을 맺는 마지막 행선지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등장한다. 머리는 모자라고 목소리만 큰 여자 절친(그녀는 아인슈타인의 이복동생의 아내이다)이 발리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정치인이 되었고, 과거에 자신을 도와 준 알란과 친구들이 꿈의 섬 발리에서 여생을 보내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100세의 노인이 마지막으로 삶의 풍요와 자유를 만끽하는 공간으로 발리가 선택되는 것이다. 책 속에 부록으로 끼어있는 세계지도를 따라가면서 100세 노인 알란과 함께 한 편의 로드무비(실제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를 찍는 것처럼 가볍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범접할 수 없는 유쾌한 내공으로 가득 찬 100세의 노인은 나를 사로잡았다. 살아 온 날보다 살아 갈 날이 훨씬 짧을 것이 분명한 노인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기 위해 마치 숨박꼭질하는 어린아이처럼 가볍게 양로원 창문을 넘어버리는 것을 보고(그것도 실내용 슬리퍼를 신은 채였다),책 첫 장부터절로 탄성이 터졌다. 노인은 마치 스무 살 청년처럼 남은 생을 위한 모험을 주저하지 않았고, 살아 온 100년의 세월 동안 터득한 지혜로 어떤 무거운 삶의 질문들도 단칼에 정리해버리는 깨알같은 통찰력을 가진 매력적인 ‘남자’였기 때문이다. 연애 편지라도 쓰고 싶을 만큼 발랄하고 통쾌하고 자유분방하게 반짝거리는 노인의 100세 앞에 “브라보”를 외치고 싶었다. 그가 100세이면 뭐 어떻단 말인가. 우리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권리와 의지가 있다. 
 
 
글쓴이: 채인숙 /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라디오 작가와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한,인니 문화연구원 부원장으로 일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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