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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놀래라, '311살의 감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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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536회 작성일 2017-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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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가 쓰는 사람의 향기 ②] 인도네시아 한국인 주부 ‘5인의 감성전’
 
한 며칠 '감성' 앓이를 했다. 더불어 '중년'이란 단어가 내 안에서 물결쳤다. 하필 내 나이가 중년에 걸쳐 있고, 감성이란 단어가 앞장을 섰으니 속 모를 혹자는 얄궂은 상상을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감성과 중년' 앓이 이거 사서라도 해볼 만했다. 흥미진진했다.
 
감성, 사람은 누구에게나 타고난 감성이 있다. 살면서 때마다 동행하는 것이 감성이다. 팍팍 써도 바닥이 드러날 리 없는 감성, 근데 이게 내 것 쓰고 내가 어색할 때가 있다. 그래서 솟구치는 감성을 꾹꾹 눌러 감출 때가 많다. 꼭 참아야 할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감성, 옳게 활기차게 활용한다면 이 얼마나 멋진 삶의 에너지이랴. 가라앉아 굳어지지 않도록 늘 휘휘 젖고 아낌없이 퍼올릴 일이다.
 
▲  자카르타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5인의 감성전> 멤버들
 
내 잔잔한 감성(?)에 <5인의 감성전(FIVE SENSES & SENSIBILITIES IN INDONESIA)>이 돌을 던졌다. <5인의 감성전>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한국문화원과 찌까랑 자바팔레스 두 곳에서 연이어 선(2017, 3, 16~4, 21)을 보인다. 전시 주인공 5인은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국인 중년 여성들이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한인 미협 소속 회원으로 활동하는 작가요, 주부들이다.
 
미협 소속 회원 중 나이가 많은 쪽으로 5명이 뭉쳤다 했다. 나이 많은 쪽이라…, 감성으로 뭉쳤다는 것보다 흥미를 더 끌었던 말이다. 답하기 싫다는 걸 다그쳐 나이를 따졌다. 셈이 느린 내가 5인의 멤버 나이를 더듬더듬 뭉쳐봤다.
 
"놀래라. 무려 311살의 감성전이잖아요?" 
"그게 뭐예요~ 왜 하필 나이를 뭉쳐요?"
 
짓궂다고 손가락질받아도 싸다. 항의가 웃음으로 묻어난다. 나이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던 것인데, 웬걸 이미 나이 따위 초월한 지 오래라는 사실이 작품들 속에 감성으로 뭉쳐 좌정하고 있다. 그렇다. 시간을 다스리고 창작으로 마음을 가꿔 이국의 시공에 내건 이들에게 물리적인 나이를 따질 게 뭐 있겠는가.
 
▲  전시장에서
 
▲  자카르타 한국문화원 인근에서 <5인의 감성전> 멤버들
 
함께 천천히 작품을 감상했다. 식사도 함께 맛나게 했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거리를 거닐고, 둘러앉아 창작 이야기에 집중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중년의 향기가 짙어진다. 중년이란 시기가 걸칠 곳이 이리 풍부했나 싶다. 진즉에 몰랐던 바다. 중년이란 참 마력을 지닌 단어다.
 
창작과 여행, 음악이란 단어가 중년과 어울리니 빠져나오기 힘든 깊이로 어우러진다. 에세이, 품격, 사랑, 행복 등 어떤 단어를 들이대도 이는 파문이 특별하다. 그랬다. 커피 한 잔 놓고 앉은 창작하는 중년들의 모습, 어디가 배경이어도 다 어울렸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도 요즘처럼 진지하게, 또 제 내면과 맞물린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중년의 나이에 다다랐기 때문일까요? 창작의 대상을 자꾸 내면으로부터 찾게 돼요. 종교성 짙은 작업에 몰두하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창작에 몰두하다 보면 '아 이것이 행복인가' 싶어요.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그림을 그린다는 일이 더 좋아지고요."
 
▲  화실에서 작업 중인 김선옥 작가
 
▲  김선옥 작품 1
 
▲  김선옥 작품 2
 
5인 중 나이가 가장 어리다는 김선옥 작가는 진지했다.
 
"지금 제가 처한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게 돼요. 아껴서 써야 하는 소중한 시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성심수녀회 수녀원의 경당 미술 작업을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지로 작업하고 있어요. 오래 전 학교에서 동기들과 연합으로 설치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처럼 참 신나요."
 
대개 생의 단계를 여섯으로 나눈다. 어린아이, 청소년, 청년, 장년, 중년, 노년이 그것이다. 중년은 여기서 다섯 번째다. 어린아이, 청소년, 청년, 장년이란 네 단계 인생 여정을 뒤로 흘려보낸 시기다. 앞으로 남은 것이라곤 오직 노년이란 한 단계다. 그렇지만 바로 그 중년이 설정하고 꾸미기에 따라 천 인 천 색이 되는 특별한 것임이 <5인의 감성전>을 통해 두루 확인된다.
 
전시로 인한 만남이니 작품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만나기 하루 전 이미 몇몇 질문도 던져놓은 상태다. 5인 모두 어떤 질문에도 멋진 대답을 할 채비를 다 갖췄다는 태세가 역력하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5인이 드러내는 향기에 주목하게 된다. 마침 내가 오마이뉴스에 '사람의 향기'를 주제로 막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더욱 그렇다. 감성을 화폭에 창작하는 원숙미 넘치는 중년의 향기에 이래저래 관심이 쏠린다.
 
"저는 개인전도 몇 차례 했고 공모전에서 성과도 나름 거뒀어요. 지금은 나이도 잊은 채 교회에서 재능기부도 하고 있지요. 제 삶에서 교류의 폭을 넓히는 데 아주 좋은 매개가 그림이었습니다. 남편과도 그림을 놓고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제 그림에는 산골 마을이나 빈민촌 같은 삶의 애환이 서린 곳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그림이 제게 세상을 따뜻하게 보는 시각을 형성해준 것 같아 고맙기도 하지요."
 
▲  화실에서 작업 중인 박정자 작가
 
▲  박정자 작품 1
 
▲  박정자 작품 2
 
칠순을 맞이한 박정자 작가, 일반적으로 칠순이면 변명이 필요 없는 노년이다. 그러나 그에게 노년이란 정말 안 어울리는 단어다. 현재 하는 왕성한 활동이 그렇거니와 앞으로 계획도 많다. 아직도 일주일에 3~4일은 시간을 온통 그림에 투여한다는 그는 그림 이야기만큼은 누구보다 젊었다.
 
자신을 만들어가는 여성은 강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영국 상류사회에서는 '여성의 제일 아름다운 연령은 중년'으로 존중한다 한다. 삶의 체험과 교양을 조화시켜 여유를 드러내고 우아하게 펼치는 중년의 여성, 어느 사회인들 그 가치가 빛나지 않으랴.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그림과 떠나 있었어요. 주부 역할에 그림을 빼앗긴 셈이지요. 그런데 세상에 창작 아닌 것이 있을까요? 주부 생활도 분명 아름다운 창작이라고 봐요. 저는 요즘 제 존재감을 손녀로부터 확인합니다. 손녀는 저를 그림 그리는 할머니라고 참 자랑스러워해요. 이번 전시 끝내고 미국 사는 손녀를 만나러 갑니다. 선물로 뭐 사 갈까 했더니 괜찮다면서 빨리 와서 자기와 함께 그림 그리자고 해요."
 
▲  화실에서 작업 중인 원영옥 작가
 
▲  원영옥 작품 1
 
▲  원영옥 작품 2
 
원영옥 작가, 평소 담담한 여유를 풍기는 그가 전시장의 작품 앞에 서니 아연 활기가 넘친다.
 
"저는 화가라는 호칭이 괜찮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주부가 더 자신 있어요. 한동안 그림을 손에서 놓았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지요. 그래서 지금 저는 더욱 그림을 즐기고 있고 그로 인해 행복해요. 추억은 늘 제 그림의 주제고요."
 
'주관성과 객관성이 조화롭게 성취된 시기가 중년'이란 말 맞다. '젊은이에게 설교하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하는 때가 중년'이란 말도 틀리지 않는다. 본의와 다르게 '참담한 중년'이 된 경우를 보게 되는 것도 현실이다. 중년이 책임지고 조심하고 떠안아야 할 것이 이리 많다.
 
그래서 <5인의 감성전>을 더 주목하게 된다. 반드시 점검이 필요한 시기, 지나온 네 단계 보다도 남은 한 단계를 위해 더 큰 희망을 품어야 하는 시기의 5인이 펼치는 축제를 의미 깊게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하여 우리 '성격에 완만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라는 중년을 평가한 말에 살짝 흥미를 느껴보자. 보수적이 되기도 하지만 느긋해지며, 그로 인해 과민성이나 심인성 질환들이 가벼워지거나 심지어 치유된다고도 하지 않은가. 역설적이게도 죽음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한몫을 하는 시기라니 중년, 축복의 계절이 아니고 뭔가.
 
"농대 출신인 남편은 식물 박사예요. 인도네시아에 살게 된 계기도 그거고요. 덕분에 자연과 더불어 오지에서 생활하기도 했어요. 그때도 그렇지만 아이들 교육 때문에 남편과 떨어져 도회지에 살 때도 저는 남편이 피워낸 꽃을 참 많이 그림으로 저장했어요. 남편도 남편이 기른 꽃도 제게 지지 않는 꽃이지요.^^ 그림 전공이 운명이었나 싶다니까요."
 
▲  화실에서 작업 중인 이은수 작가
 
▲  이은수 작품 1
 
▲  이은수 작품 2
 
이은수 작가다. 중년의 식지 않은 남편 사랑이 도도륵 솟아난다. 덧붙이는 그의 말에서 그의 현실과 작업 현장이 초록으로 묻어난다.
 
"주부와 화가 두 가지 다 소홀히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주부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작업을 할 때 더 성취감이 크더라고요. 많은 그룹 활동을 하면서 지금까지 개인전을 못한 이유입니다. 제 작품의 특성이 한 점 한 점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런 의미에서 가사도우미를 쓸 수 있는 인도네시아 환경이 제겐 참 좋습니다."
 
대개 중년의 여자는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삶의 지혜와 자신감이 뭉쳐 연륜이 지닌 매력과 우아함을 발산하는 부류, 그리고 도발적이고 외향적이며 사회나 상대방에 대해 까다로운 성향이 있는 부류란다. 전자를 깊은 맛이 나는 잘 익은 포도주에 비교하더니만, 후자를 쉰 맛 나는 막걸리에 비교한다. 물론 웃자고 하는 이야기리라.
 
"그림요? 제가 젤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이지요. 주부 역할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다고 하면 남편이 웃어요. 가족은 늘 제 작품의 중심입니다. 해외 출장이 잦았던 남편은 가끔 작품 속에 등장을 못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남편은 제 그림에 더 관심을 갖기도 하는데, 아이들의 항의로 추가로 그려 넣은 적도 있어요."
 
▲  화실에서 작업 중인 이춘희 작가
 
▲  이춘희 작품 1
 
▲  이춘희 작품 2
 
이춘희 작가, 그의 가족 사랑이 말 속에 또 작품 속에 오롯하다.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자기 사랑도 넘친다.
 
"우리는 지금 신경성이란 말이 대부분의 병명 앞부분을 장식하는 시대에 살잖아요? 저는 그림 그리는 일로 마음도 몸도 면역력을 길러요. 제가 몸이 좀 약한 편이어서 작업과정이 복잡하고 노동력이 필요한 작품을 하고 나면 늘 후회해요. 그런데 얼마 지나면 또 그런 작업에 몰두하거든요. 그런 저를 저는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해요."
 
세상엔 여행의 종류가 참 많다. 그런데 릴케는 "자신의 내면으로 향한 여행 딱 한 가지만 있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5인의 감성전>으로 인해 감성 여행 한번 잘 했다. 중년의 파도를 타는 동안 다른 사람 중년과 내 중년과도 더 친해졌다. 이젠 그 파도를 잘 탈 것 같은 느낌이다. 파도 너머 바다도 즐기고 밀려오는 다른 파도도 즐기면서.
 
중년의 중심은 성숙이다. 심리적 · 사회적 측면의 완숙도가 경지를 이루는 바로 그 성숙. 그런데도 인간관계 폭이 좁아지는 시기가 중년이란다. 관계가 선택적으로 변한다 한다. 인정한다. 이럴 때 내면을 향해 자기 창작 계획을 세워보면 어떨까? 무엇을 통해서건 나를 다시 창작해보기로 맘먹으면 어떨까? 내가 나를 새롭게 창작하는 것 맘먹기에 따라 찰나다. 중년의 나이와 경험에 숙성까지 겹쳐있으니 어려울 일이 아니다.
 
<5인의 감성전>을 빌어 자신의 창작을 믿는 세상의 모든 중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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