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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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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080회 작성일 2017-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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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시. 허 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 붙이고 서 있던 여름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 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출처: 불온한 검은 피 (민음사)
 
NOTE *************
칠월이 오면 가장 먼저 꺼내 읽는 시. 세계사에서 초판이 나왔고 이후 민음사에서 다시 개정판을 낸 허 연 시인의 <불온한 검은 피> 속에 실려 있다. 늘 아끼고 아끼는 마음으로 읽는 시집이다. 시집 속의 모든 시가 한 편 한 편씩 다 좋은 시집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싸라기 같은 햇빛이 폭포처럼 쏟아지다가도 쓸려갈 듯한 빗물이 세상을 덮어버리는 여름의 절정, 칠월은 체념과 눈물과 지옥과 흑백영화와 잊은 그대가 떠오르는 계절이다. 빗물에 쓸려가 버린 그대를 떠올리며 처마 밑에 등을 붙이고 서서 혼자 아픈 계절이다.
 
기실 잃어버린 당신을 떠올리는 것이 어찌 칠월의 여름날 뿐이겠는가. 봄날의 당신, 칠월의 당신, 낙엽 속의 당신, 눈밭에 서 있던 겨울의 당신이 다 그립고 아플 것이다. 그저 여름날에는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빗물이 파놓은 깊은 골 속에 비치는 당신을 더 자주 바라보게 될 뿐이다.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카피라이터, 라디오 작가,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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