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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산나루’, 집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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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235회 작성일 2017-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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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 존재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
 
 
 
현판 하나 걸었다. <山羅樓(산나루)>다.
산이 울타리처럼 둘러친 곳에 망루인 듯 지은 집이란 뜻이다.
자연과 집이 어우러진 현상을 그대로 반영해 붙인 이름이다.
산으로 드는 길목, 도시로 나가는 나들목에 자리한 집이란 의미도 있다.
2층 테라스에 앉으면 마을로 접어드는 고갯마루가 안산인 듯 건너다보이고,
산마을 길 한 부분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것을 연유 삼은 것이기도 하다.
 
산나루가 자리 잡은 곳은 인도네시아 보고르 지역 산마을 찌자얀띠,
자카르타에서 남쪽으로 약 60km 지점이다.
우람한 산 구능 그대(2,956m)와 수려한 산 구능 살락(2,217m)을 저만치 우러르는 마을이다.
높고 거대한 산 구능 그대의 영향을 받았을까?
찌자얀띠 동남쪽으로 1천 수백을 헤아리는 봉우리가 여럿, 어깨를 겨룬다.
언제부터였을까? 내리뻗은 능선 자락을 걸고 찌자얀띠 마을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이.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나는 이 산마을의 일원이 되었다.
타국살이 서생이 고향인 듯 찾아들어 둥지를 튼 지가 어언 5년여다.
오직 서예가로 살아온 나, 건축에 대해선 문외한인 나와 아내가 서툰 수고를 쏟아가며
집을 짓기 시작한 세월은 어언 6년여가 지나갔다.
물론 아직 진행형이다. 현판을 이제 붙였듯이.
 
주지하듯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애정의 발로다.
편리성 추구에 앞서 존재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그러니 이름의 의미야 그렇다 치자. 혹 현판을 건 이유를 물을 수 있다.
별 사유 아니다. 서예가의 집이니 서예가다운 취향을 드러낸 것이다.
거주와 창작 공간, 교습 장소이며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공간에 관한 애정을 작은 실천으로 맺었다.
밋밋하게 지어진 집의 아웃 테리어이기도 하고,
마침 쓸 만한 재료를 만났으니 잘 활용해보자는 속셈도 작용했다.
 
이 모두를 압축할 딱 한 마디가 있다. ‘즐기기’다.
흐르는 시간, 지나가는 순간에 이야깃거리와 즐거움 한 조각 얹고 싶었음이다.
더러 함께 하는 인연들과 한 조각 삶을 이야기 삼고 한잔 술로 어울릴 핑계로야 이 아니 좋은가.
어쨌든 山羅樓 현판으로 인해 나 또한 산나루 주인으로 거듭난 셈이다.
산나루는 향후 내 작품 낙관 부분에 수없이 등장할 것이니 산나루에 관해 나도 기대하는 바 작지 않다.
 
 
 
 
산나루를 예비한 현판이 있다. 바로 屾津㟸 (신진고)다.
신진고는 정원 한쪽에 세운 정자 이름이다.
역시 <산 둘러선 나루 목에 지은 정자>라는 뜻을 담아 신진고라 이름 짓고 현판을 걸었다.
 
산나루 현판과 어울리게 조성한 주련도 있다.
집 전면 네 개의 기둥에 건 주련(柱聯)이다.
우선 시 내용을 밝히자면 중국 송 시대의 명 시인 정호(程 顥 1032∼1085)의
칠언 율시 <어느 가을날 우연히 이루다(秋日偶成)>이다.
 
 
 
閑來無事不從容 睡覺東窓日已紅 萬物靜觀皆自得 四時佳興與人同
道通天地有形外 思入風雲變態中 富貴不淫貧賤樂 男兒到此是豪雄
(한래무사부종용 수각동창일이홍 만물정관개자득 사시가흥여인동
도통천지유형외 사입풍운변태중 부귀불음빈천락 남아도차시호웅)
 
이 시중 내가 주련으로 휘호한 것은 앞 네 구절이다.
나름의 고려를 거듭한 결과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시에 대한 세간의 다양한 해석이다.
모두 뜻이 깊고 멋지게 해석을 붙였는데 아무래도 내 나름으로 해석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거다.
내가 이 시를 주련 내용으로 활용한 의도를 드러내고 싶은 거다.
불손하게도 이 시를 지은 작자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위의 시 자의적 해석은 이렇다.
 
일없이 한가로우니 마냥 조용하여,
동창이 이미 밝은 후에야 잠에서 깬다네.
고요히 만물을 살펴보매 모두 제 분수에 알맞으니,
사계절의 아름다움과 흥취 우리 더불어 즐기세.
도란 모름지기 천지 사물의 형태 밖에서 소통하고,
생각은 바람과 구름의 변화 가운데서 얻어진다네.
부귀를 부러워 말고 빈천 또한 즐기세나,
남아가 이 경지에 이르는 것이 바로 영웅이라네.
 
문법에 근거한 해석과는 거리가 먼 오역이라고 종주 먹을 댈 강호의 대가들 왜 없으랴.
다만 산마을 살이에 취한 서생의 치기를 이해 바랄 뿐이다.
덧붙여 결례를 하나 더 고백한다. 네 번째 구절 첫머리 사계절을 의미하는
<四時>를 현판에는 두 계절이란 뜻 <兩時>로 바꾼 것이다.
 
어쩌랴 인도네시아엔 우기와 건기만으로 나뉘는 것을.
그마저 한국인이 느끼기에 밋밋하기가 그지없음을.
그런데 웬걸 그것만이 아니다.
관찰해보면 두 계절 안에 사계절의 모습이 다 있다.

아! 인간으로선 알 수 없는 우주 운행의 오묘함이여.
경외하는 자연이여!!
 
* 이 글은 손인식 인재선생님의 블로그 ' 붓으로 먹으로' 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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