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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시인 김삿갓'도 놀랄 정읍의 김삿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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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9,114회 작성일 2017-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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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다섯 부부 <길동무>, 인상파식 고국 여행기 3
 
“소리치지 말어 잉 시끄러웅게. 술이 떨어지고 읍스면 주전자나 양은 종제기를 숫깔로 뚜드러 부러. 알았어어?”
 
주모 왈 시끄러우니까 말로 주문하지 말란다. 주전자나 술 종제기를 숟가락으로 두들기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더 볼썽사납고 더 시끄러울 것이 분명한데. 정말 어이 상실이다. 그건 그렇고 언제 봤다고 대뜸 반말인가. 나이로 치면 길동무 류 포토 맏형 나이를 반 뚝 자른 데서 두서넛 많을까? 뭣보다 길동무들은 손님 아닌가? 아니 장사하면서 손님이 왕이라는 소리도 못 들었나?
 
기왕 볼멘소리 몇 자 쓴 김에 이 주모 흉 좀 봐야겠다. 아니 내놓고 흉보기는 체면이 있으니 아주 고상한 문학용어로 묘사 좀 하고 넘어가야겠다. 크다면 큰 키, 얼핏 보아도 70kg을 오르내릴 듯한 몸무게, 몸집에 어울리는 도탑고 복스러운 얼굴, 걸음은 궁둥이를 흔드는 여덟 팔자 식. 그러니 뭐 위엄까지는 아니고 “거 참 육덕 좋다”는 말이면 중급 칭찬은 되리라. 아~ 놀라운 그 기세여.
 
▲  정읍의 막걸리집 김삿갓 내부
 
둥근 철판 테이블과 등받이 없는 플라스틱 둥근 의자가 놓인 집, 어두워지기 전부터 꾸역꾸역 손님이 모이는 집, 좁은 테이블 사이를 종횡무진 오가는 건강한 주모가 있는 집. 이정도 설명으로도 대강 그 분위기 감잡힐 것이다. 손님을 사정없이 구박했다가 순간에 어르는, 들었다 놨다 떡 주무르듯 하는 걸출한 주모가 있는 집, 사실 주모라고 하기엔 나이가 좀 빠지는 주모가 주모인 집.
 
아무튼,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선 좀 불편할 수 있겠다. 묘사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표현이 수치심을 느낄 인신공격에 가깝다고 따질 분 계시리라. 여행기를 쓰려면 명승지 이야기나 본받을 인물 행적을 역사를 토대로 풀어낼 것이지 시작부터 무슨 주막집 주모 말 트집잡기냐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내 느낌을 더 묘사하기보다 여성 길동무 장 마마의 소감을 옮긴다.
 
“마법을 쓰는 주모가 사는 주막집이라 해야 맞을 거예요. 저녁 식사에 막걸리 몇 잔이 마치 꿈속이었던 듯 어리벙벙해요. 그러니까 밤이면 도깨비 모이듯 사람들이 모이는 곳, 그런데 낮에 가면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 꼬부랑 할머니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상상이 드는 곳. 그런데 웃음이 넘쳐나는 즐거운 곳이 거기였어요.”
 
주막은 초가집이 아니었다. 짚으로 엮은 용마루를 얹은 흙담을 둘러친 집도 아니다. 정읍 구시가지에 자리 잡은 어느 3층 건물 1층 한 간에 간판을 단 집이다. 그러니까 주막이라 하기에는 안 어울리는데 그렇다고 음식점이라고 하기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답은 바로 그 집 이름에 있다. 이름이 ‘김삿갓’이다. 그러니 지하의 ‘방랑시인 김삿갓’이 동의를 하든 말든 그냥 주막으로 하자.
 
▲  막걸리를 시키면 줄줄이 따라 나오는 김삿갓의 갖가지 음식들
 
▲  여행 첫날 저녁 식사 장소로 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관해 왈가왈부했던 곳 김삿갓의 음식을 즐기는 길동무
 
이 집은 사실 한 세련 풍기는 여성 길동무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여행 첫날 저녁 식사 장소로 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관해 왈가왈부했던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성 길동무들 쉽게 적응이 안 되는가 보다. 언 듯 보니 여행사 김 대표께서는 표정이 좀 썩 좋지 않다. ‘문화 답사’니 ‘고국 방문’이니 하는 것과는 격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날 저녁만큼은 길동무가 선택을 하겠다고 했으니 함께 어울렸지만 왜 이런 곳을 찾아왔지? 왜 돈 주고 당하고 있지? 이런 표정이시다.
 
인기 많은 한 소설가가 언론사 기자를 주인공으로 세운 소설의 서두가 이런 내용이었던 것을 나는 어렴풋이 기억한다. 주인공은 그날도 변함없이 점심시간에 욕쟁이 할머니 집으로 향한다. 국밥 한 그릇 먹는 동안 욕을 국밥보다 더 많이 먹어가면서 허기진 배를 채운다. 특종을 찾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욕쟁이 할머니가 말아준 국밥으로 삭히고 험한 욕을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주인공, 그 소설 속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보다 김삿갓이 더 얄궂다고 할까?
 
▲ 시인 김삿갓도 허허 웃게 했을 정읍 김삿갓의 주모 설아 씨
 
설마 이 주모가 그 소설을 읽었나?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이 주모는 말만 거친 것이 아니다. 나름 창의적인 데가 있다. ‘나만 바라봐’라고 명찰을 붙인 것이라든가 두루마리 화장지로 치장을 해 순간순간 사람 웃게 만드는 능력이 그렇다. 뜬금없이 북한식 한복을 걸치고 몇 개 까맣게 칠한 이를 드러내며, 히히∼ 하며 바보 표정을 짓는 것 등 노력한 흔적이 뚜렷하다. 주막집 주모깨나 만났을 떠돌이 시인 김삿갓 이런 주모라면 어떤 시를 지었을까?
 
여성 길동무들 특징이 하나 있다. 사진을 찍을 때 포즈가 수준급이다. 각자 사진도 많이 찍거니와 또 잘 찍는다. 특히 음식 사진을 많이 찍는다. 10여 년 함께 여행하는 동안 음식 사진 필요하단 한마디면 좋은 사진이 주르르 단톡방에 올라왔다. 그런데 이런 이변이라니, 김삿갓 음식 사진이 없는 거다. 물었다. 그 이유를.
 
“나이도 훨씬 어린 주모의 그 대단한 기에 눌렸어요. 그 젊은 주모에게 밥 먹다 카메라나 주물럭거린다고 혼날까 봐 사진 찍을 생각도 못 했어요. 암튼 그의 거침없는 언행이 첨엔 불편했다니까요. 다행히 금방 익숙해지더라고요.”
 
기억이 났다. 음식을 가져올 때마다 “나만 바라봐” “(공간 좀)벌려 봐”, “쳐먹어”를 외치던 주모에게 놀림감이 잡혔는데, 그가 서울 태생 길동무 장 니카 씨 주문이다. 한 곡 뽑으면 좌중이 조용해지는 노래 실력자인 그가 서울 말투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로 “여기 냉수 한 컵만 주세요.” 했을 때다. 두들기라고 했는데 말로 했으니 이 주모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ㅒㅍㅓㅤㅗㅎㅅㄷㅛㅤㅓㅎㅇ” 당장에 흉내를 냈다. 독특한 입 모양을 하고 터트리는 의성어, 아 이때는 세종대왕의 위대한 한글도 별수 없다. 글로 표현하기 난해하다. 의미야 뻔하다. 무슨 말투가 뭐 그리 간지럽냐는 거다. 이 뚜렷한 비아냥, 시쳇말로 손님 뭉갠 거다. 이걸 옆 테이블의 남성 길동무들도 들었다. 그런데 아무도 흑기사로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파안대소다. 아군 무시, 그래도 괜찮다. 마음 넓은 여성 길동무들 이해한다. 그런데 이 주모의 비아냥을 여행 기간 때마다 흉내낸 이가 있다. 길동무 길 대장이다. 웃느라 늘 허기진 여행이라니.
 
사진에 대해선 남성 길동무들도 탓을 면할 수 없다. 담당인 류 포토 형님도 임무 태만이었다. 근데 거기도 변명이 떳떳했다. 그날 충청도를 지날 때는 몇 마디 충청도 사투리가 오가더니 전라도 땅에 들어서면서부터 또 말투들이 변했다. 어설픈 전라도 사투리를 너도나도 쓰기 시작했다. 본토 사투리가 들리자 다들 귀를 쫑긋 세웠다. 당연히 김삿갓 주모의 구수한 토종 사투리에 정신이 팔릴 수밖에. 사진 찍는 것도 잊었다. 여행 후기 써야하는 숙제를 떠 않은 내가 몇 컷 담은 것이 다였다.
 
이미 김삿갓을 경험했던 나는 안다. 남성 길동무가 넋을 잃은 것은 결코 주모의 사투리 때문이 아니다. 막걸리 맛 핑계를 댈 수도 있는데 그도 다가 아니다. 김삿갓의 음식이다. 빈 주전자만 두들기면 막걸리 한 주전자에 달려 나오는 갖은 음식 때문이다. 맛도 맛인데 쌓이는 가짓수가 얼마나 많던가.
 
 
그러니까 처음 상에 놓인 속 달래라는 죽, 그거 맛있다고 두 그릇이나 먹은 이는 실수한 거다. 깊은 맛 난다고 미역국 들이킨 이도 실수다. 갖가지 나물과 채소가 차례로 출몰하더니 게장과 구운 생선과 꽃게 그리고 회, 육회와 닭백숙까지 하여튼 흔히 하는 말로 육해공이 다 줄이어 상에 올랐다. 나온 음식이니 맛은 봐야 한다고 먹고 맛있다고 또 먹었다.
 
날도 바뀌지 않은 이 하루의 점심과 저녁 식사가 이리 극적일 수가 있는가. 점심이 ‘선비문화체험학교 우리누리’였다. 초청받아 출장을 다니는 한식 전문가 도향 여사가 품격 넘치고 맛깔스럽게 창작해낸 음식을 조곤조곤 음미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몇 시간 후 저녁 자리가 이리 변해도 되는 건가. 점심은 선비 밥상, 저녁은 농번기 상머슴 밥상.
 
“저 주방 한번 들어가 보고 싶어요. 분명 누군가 마법을 부리고 있을 거예요.”
 
장 마마께서 호기심을 드러냈다. 주부들로서는 궁금할 만했다. 중복되지도 않고 이렇게 많은 음식이 그 같은 속도로 어떻게 쏟아져 나올까? 인도네시아 '빠당요리'처럼 이미 만들어 접시에 담아 놓은 식은 음식이 주류인 것과도 다른데 말이다. 한 음식 한다는 여성 길동무들도 놀랄 맛의 따뜻하고 신선한 음식들이었다. 시인 김삿갓이 살아 돌아온들 어찌 놀라지 않으랴.
 
김삿갓 음식에 마법을 부리는 이가 있긴 있다. 바로 김삿갓 주인이다. 나이는 주모 또래쯤일까 싶은 표준 키 표준 몸의 여장부, 그가 마법의 소유자다. 그날 청에 못 이겨 잠시 주방에서 나온 그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놀랄만한 개인기를 휘두르곤 바람처럼 사라졌다. 나중에 안 사실, 그가 주모를 훨씬 능하가는 끼를 지녔단다. 이걸 어째. 시인 김삿갓 살아생전에 만났더라면 그와 정분 났을까?
   
 
이 밤 길동무와 함께 즐긴 이들이 있다. 정읍시민들이자 정읍 서예동호인들이다. 해연, 설송, 우곡, 화연, 화운, 초림 여사, 이들은 길동무의 정읍 출현에 반갑게 달려와 그 밤을 길동무에게 선뜻 배려했다. 길동무가 김삿갓이란 특별한 존재를 알게 된 것도 이들 때문이다. 지역은 지역마다 특별한 정서가 있다. 내용이 알찬 음식점이나 명소도 지역인들의 도움이 있으면 의외를 누린다.
 
그 저녁 김삿갓의 음식이 특별했던 것도, 또 길동무를 즐겁게 해주려는 주모의 개그맨급 노력도 모두 이분들 덕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하물며 길동무 모두가 별도로 귀한 선물까지 받았으니 감사한 마음 크다. 이분들 계시어 주모가 ‘설아’라는 참 예쁜 이름을 가졌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끝내 이해 불가한 것이 하나 있다. 그날 저녁 지불한 식대다. 참석한 18명으로 나눠볼 때 1인당 자카르타에서 사 먹는 막걸리 반병 값을 조금 웃돈다. 장 마마의 염려처럼 마법을 부리지 않는 한 이해 불가다.
 
주모 설아 씨에게 욕먹고 구박당한 것을 값으로 매겨 깎아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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