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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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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915회 작성일 2017-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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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배후
                                시. 최광임
 
 
한 계절에 닿고자하는 새는 몸피를 줄인다
허공의 심장을 관통하여 가기 위함이다
그때 베란다의 늦은 칸나 꽃송이
쇠북처럼 매달려 있기도 하는데
그대여 울음의 눈동자를 토끼눈으로 여기지는 마시라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기는 고목일수록
어린 잎들 틔워내는 혼신의 힘은 매운 것이니
지루한 가뭄 끝 입술의 심혈관이 터진 꽃무릇 같은 것이니
턱을 치켜세운 식욕 왕성한 새끼들에게
공갈빵이나 뜯어 먹게 하는 무색한 시절을 두고
부엌으로 달려가 앙푼에 밥을 비빈다
어떻게든 허방으로 떠밀리지 않기 위하여
뙤약볕 같은 고추장비빔밥을 쑤셔 넣어 보신 적 있는가
막무가내로 뒤집어지는 매운 밥의 본능이
한 세월로 건너가는 새가 되는 것일 뿐,
천둥벌거숭이 나는 이 새벽 가슴 골짜기에서 솟구치는
눈물의 거룩한 밥을 짓고 국을 끓일 것이니
그대여 울음의 배후에 대하여 숙고하지 마시라
삶이 풍장 아닌 다음에야 칸나꽃 피고지고 또 필 것이므로
먼동 트기 전 세상 한 복판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내 발굽에 편자나 박아주시라
 
출처: 도요새 요리 (현대시세계 시인선 44)
 
 
NOTE************************************
  어떤 예술가인들 삶의 절절한 내용과 형식 앞에 겸허히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을까. 최광임 시인의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밥과 양식이다. 삶을 견디게 하고 시를 구원하는 재료이고 양념이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일을 마치고 막 기차 타는 밤이면/ 피가 돌지 않는 다리 주무르다 새벽을 맞는, 그녀는 한 집안의 가장이고, 검은 옷을 걸치고 도시를 전전하며 시를 가르치는 선생이고, 시인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고통들 앞에, 먼동 트기 전 세상 한 복판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내 발굽에 편자나 박아주시라고 당당히 소리치는 여장부다.
 
 천둥벌거숭이 시인이 새벽 가슴 골짜기에서 솟구치는 눈물의 거룩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적은 시를 읽으며, 그녀가 끊임없이 여린 시의 잎들을 틔워내는 매운 혼신의 힘을 잃지 않기를 응원한다. 우리의 삶인들 뭐 다를 것인가. 우리는 오늘도 어떻게든 허방으로 떠밀리지 않기 위하여/ 뙤약볕 같은 고추장비빔밥을 쑤셔 넣으며 일터로 나서는 수많은 삶의 가장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칸나꽃은 피고지고 또 필 것이다.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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