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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물댄 논에서 달리는 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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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월작가의 희로애락
작성자 반가워 댓글 0건 조회 15,519회 작성일 2014-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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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골마을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오뉴월이면 모내기 할 논에서 아버지는 소와 써레질 나는 물꼬 옆 논두렁에 앉아 뱀딸기를 따먹었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이 되면 논갈이 작업 할 때 소가 끄는 번지치기도 많이 탔다. 우리 집 소가 느릿느릿 걸어가면 그 뒤에는 언제나 지게 진 아버지가 뚜벅뚜벅 따라가셨다. 굼뜬 소의 모습만 보다가 말처럼 빠르게 달리는 소들을 보면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훌륭해 보였다. 우리 속담에 홍두깨 세 번 맞아 담 안 넘는 소 없다고 했는데 못이 박힌 막대기로 엉덩이를 사정없이 찔러대는데 어떻게 소가 달리지 않고 견딜 수가 있겠는가.
 
인도네시아에서 해마다 소 달리기대회 열리는 곳이 4개 섬이다. 수마트라의 빠쭈자위가 있고, 발리의 머꺼뿡과 마두라의 까라빤 사삐 그리고 숨바와의 까라빤 꺼르바우가 있다. 소라고 다 같은 소는 아니다. 수마트라와 마두라는 일반 소인데 발리와 숨바와는 꺼르바우였다. 그 중에서 내가 본 소 달리기의 특징만 솎아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선 수마트라 미낭까바우(minangkabau)족들이 하는 빠쭈자위(pacu jawi)는 모내기하기 전 사람들이 써레질하다가 누가 더 빨리 달리는지 겨루다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추수 후 물댄 논에서 수맥마리의 소들이 흙탕물을 튀기면서 달린다. 두 마리를 한 쌍으로 짝지어 소의 목에 써레 하나씩 걸어 두고 기수는 써레 하나에 한발씩 딛고 달린다. 두 마리 소가 나란히 붙어서 골인지점까지 달려야만 우승자가 된다. 경기가 시작되면 기수는 우승하고 싶은 마음에 속력을 내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소꼬리를 자신의 입으로 깨물어 소에게 아픔과 자극을 준다.
 
그러나 나란히 붙어 달리던 소 두 마리 사이가 벌어지면 중간에 있던 기수는 양팔과 두 다리가 큰대(大)자 모양을 하다가 철퍼덕하고 논바닥에 떨어진다. 소가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흙탕물은 분수처럼 튀어 올랐고 기수의 몰골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기수가 써레에서 떨어지면 전신에 머드 팩을 칠한 행위예술가 변신한다. 참으로 위험해 보였다.
 
써레에서 떨어져 기수가 논바닥에 뒹굴 때 흙탕물이 얼굴에 가려 앞이 안 보일 때 소 발에 밟힐 수도 있다. 그날도 기수 한 사람이 다쳤는데 경기에 정신 팔린 사람들은 병원으로 후송하지 않고 그냥 논바닥에 눕혀 놓고 마사지만 해주었다. 빠쭈 자위 때 수백 마리 소들이 싼 소똥들이 거름되어 벼 추수 때 갑절은 수확되므로 서로 자신의 논에서 빠쭈 자위 해 주길 원한다고 했다.
 
빠쭈자위 같은 경우에는 평소에는 묵묵히 논 갈던 소들인데 분위기를 아는지 빠쭈자위하는 날은 논에서 달리기선수로 돌변했다. 마른 땅도 아닌 물이 고인 논에서 첨벙첨벙 앞으로 달릴 수 있도록 소를 모는 그들의 지혜와 비결은 바로 이거. 많은 소들을 결승선에 두면 출발선에서 달리는 소는 친구들이 많이 모인 곳으로 가기 위해 앞으로 열심히 달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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