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2일자로 ‘금융감독청(Otoritas Jasa Keuangan) 설립에 관한 법률 제 21호/2011년’가 발효되어, 물리아 나수띠온(Mulia Nasution) 전직 재무부 비서총국장이 금융감독청 설립추진팀장으로 임명되어 2012년 말까지 금융감독청을 신설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2012년 1월 20일자로 &lsq
김문환의 주간포커스
2014-07-14
일본의 진주만기습 직전 화평교섭 마지막 시점에, 미국은 해군성 감청반을 가동하여 일본은 이미 어전회의를 통해 개전을 결정하였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연합함대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이 승전의 가도를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1943년 4월, 솔로몬제도 부겐빌 전선시찰을 위해 그가 탄 고속 수송기가 미육군 항공대 소속 요격기에 의해 격추되어 전사
1942년 3월 초, 자바를 점령하는 일본제국군 병사들의 일부는 자전거를 타고 바타비아(자카르타)에 입성하였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도심 곳곳에 ‘일본군의 눈부신 승전’이라 써 있는 선전용 입간판이 나붙었다. 선전문구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주민들의 표정이 진지하게 보였다. 그리고 곧 일본은 ‘아시아의 빛, 아시아의 지도자,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모에게 비밀리에 결혼한 지금의 처(妻)를 포함하여 4명의 여성에게서 출생한 자녀 7명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 언론이 뜨거워지고 있다. 장 감독의 일부다처 사실과 다(多)자녀설을 놓고 네티즌 사이에서 공분을 산다는 여론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참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서로 상충하면
필자는 30년 전 인도네시아의 바띡기술을 배우기 위해 방학을 이용하여 자카르타를 찾은 한국의 모 예술대학 강사를 자카르타 시내의 한 바띡 강습소로 안내한 적이 있었다. 차 내에서 그녀에게 왜 하필이면 인도네시아냐고 물으니, 인도네시아 바띡이 미술사에 나와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그녀는 지금 그 대학 대학원장직에 있다). 이때부터 필자는 &lsquo
갑오년의 새해가 밝았다. 구한말의 부정부패가 자초한 농민운동의 와중에 열강들의 대립이 격화되어 극한상황에 이르렀던 ‘갑오경장’과‘청일전쟁’의 그 갑오년이다. 그로부터 120년이 지난 지금의 동북아 정세는 당시의 주역들인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 멤버 교체없이 그대로 패권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일본과 중국
배우, 작가, 만담가로 유명한 도쿠가와 무세이는 태평양전쟁 개전 초기 일본군이 점령한 동남아 지역을 순회하며 위문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군이 영국군으로부터 압수한 유물 중, 1939년에 개봉된 헐리우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필름을 싱가포르에서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도쿠가와는 이 영화를 본 감상문을 다음과 같이 일기
지난해 12월 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사파이어룸에서 정계, 재계, 학계를 대변하는 50여명의 요인들이 모여 ‘사단법인 한국-인도네시아 동반자협의회’ 창립총회를 가졌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안홍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비롯해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 조경태 민주당 의원, 그리고 발기인 대표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지난 5월 2일 자카르타에서 ‘2013 한, 인도네시아 국방협력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국방연구원 방효복 원장은 개회사에서 평화유지군, 재난구호작전, 사이버범죄 대응 부문에서 양국간의 방산협력이 제고되길 희망하였으며, 인도네시아 국방부 총비서국장(Sekjen)인 부디만(Budiman) 육군 중장은 인도네시아가 단순한 구매당사자에서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40주년 기념행사가 3월 8일 드디어 그 팡파레를 울렸다. 이날 저녁 한-아세안센터 주관으로 가똣 수브로또가, 발레이 까르띠니(Balai Kartini)에서 열린 리셉션 및 개막식 행사를 시작으로 12월까지 문화, 예술, 학술행사가 연중행사로 이어진다. 이튿날 저녁에는 KBS가 기획하고 주관한 K-POP 행사인 ‘Music
육군참모장인 나수띠온 대령의 ‘국군 감축안’을 재검토하라는 의회의 비토에 반기를 들고 예하 부대장인 께말 이드리스 소령이 포신을 대통령궁으로 조준해 놓고, 나수띠온과 참모들이 수카르노 대통령 집무실에 난입하여, 대통령 하야 청원서를 낭독했던 1952년 10월 17일 사건은 인도네시아 현대사에서 ‘쿠데타’란 용어를
3월 23일 토요일 한밤 중인 12시 30분, 17명으로 구성된 무장집단이 여러 대의 자동차에 분승하여 중부자와 슬레만군(Kabupaten Sleman) 역내에 위치한 쯔봉안(Cebongan) 교도소에 들이 닥친다. 그리고는 교도소 담을 넘자마자 전화선부터 끊고, 당직 직원들의 휴대폰을 수거하며, CCTV 까지 철거해 버렸다. 그리고는 바로 전날인 22일
4월 1일자로 헌법재판관 임기를 마치고 이임하는 마흐훗(Mahfud M D) 헌법재판소장은 퇴임식이 끝난 직후 기자들이 둘러 서며 마이크를 대자, “국민이 뜻이 그러하다면, 대통령 후보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답변하면서 대선출마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이로서 현재까지 대선출마를 공식적으로 밝힌 유력 주자들은, 쁘라보워, 아브리잘 바끄리
일각에서는 인도네시아 특전사(Kopassus)를 영국의 SAS(Special Air Service), 이스라엘의 Mossad에 비견하여 세계 3대 특수부대로 거명하기도 한다. 1950년대 창설된 특전사는 베니 무르다니 소령의 제1 대대장 시절의 성장기를 거쳐, 사르워 에디 위보워 대령 재임 당시인 1965년 10월에는 공산쿠데타를 단 하루 만에 진압하여 국
2017년에 기한이 만료되는 동부 깔리만딴 주 마하깜 광구(Blok Mahakam)를 놓고 두 장관은 서로 상반된 행보를 취하고 있다. 주무장관인 에너지광물자원부 장관과 국경기업체 임원 인사권을 쥐고 있는 국영기업부 장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주관 국영기업체인 뻐르따미나사는 국영기업부 장관의 응원을 등에 업고 자신들에게 광권을 넘기라는 입장인 반면, 주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