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26. 국민의 뜻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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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환의 주간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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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자로 헌법재판관 임기를 마치고 이임하는 마흐훗(Mahfud M D) 헌법재판소장은 퇴임식이 끝난 직후 기자들이 둘러 서며 마이크를 대자, “국민이 뜻이 그러하다면, 대통령 후보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답변하면서 대선출마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이로서 현재까지 대선출마를 공식적으로 밝힌 유력 주자들은, 쁘라보워, 아브리잘 바끄리에 이어 마흐훗까지 가세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의 뜻’을 왜곡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 경우를 우리는 가끔 접하게 된다. 마치 소수 국민의 목소리를 다수의 목소리로 과장하거나, 심지어는 여론을 조작하여 그럴듯하게 포장하기도 한다. 대통령 자제들과 친분을 쌓으며, 수하르또 정권 마지막 내각의 청년체육부장관에 올랐던 하요노 이스만(Hayono Isman)은 1997년 3월 26일 수하르또 대통령을 쩐다나(Cendana) 자택에서 면담하고 나온 직후 기자실에 들러, 대통령의 주문사항이라며 회견을 자청하였다. 두 달 후로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의 재출마 여부가 세간의 최대 관심사였던 시점인지라, 자카르타의 한 신문은 다음날“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지 말라.”는 대통령의 말씀을 1면 톱 기사로 올렸다. 그리고 이어 “국가의 장래는 빤짜실라(Pancasila) 정신과 헌법(UUD 45)에 기반을 둔 시스템에 의하며 움직여야 하며, 특정인의 손에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 된다.” 는 상보를 하요노 장관의 말을 인용하여 연결하고 있었다. 이미 1년 전인 1996년 5월, 수하르또 대통령은 중부자바 데막(Demak)의 한 촌락을 시찰한 자리에서, 고령을 이유로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 한 적이 있었기에, 국민들은 이날의 회견을 불출마 연장선으로 이해하며, 늦었지만 오랜만에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할 지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구인 국민협의회(MPR)가 열리기 직전인 1988년 3월 8일, 원내 교섭단체장 전원은 대통령 자택을 찾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연임해 주기를 간청하였다. 특히 국군교섭단체장인 유누스 요스피아(Yunus Yosfiah) 중장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각하의 투철한 애국심과 감투정신은 아직 건재하니 한번 더 출마해 주실 것을 요청하였으며, 대통령은 이를 수락하셨다.”고 기자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였다. 이때 본인의 평소 지론을 지켜내지 못하고 또 한번의 유혹에 빠져 결국 연임을 수락한 대통령은, 이로부터 불과 두 달 후에 ‘IMF사태’라는 초유의 거센 후폭풍에 휘말려 비극적인 권력의 종말을 맞게 된다.
운동권 출신 소장파였던 아나스는 2010년 반둥 전당대회에서 유도요노 대통령의 의지에 반하여 집권당 총재에 등극하더니, ‘이슬람대학생협회 동창회’라는 탄탄한 조직을 기반으로 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당 재정부장이던 나자루딘이 구속되면서 덫에 걸린 그도 결국 부패방지위원회에 의해 피의자 신분이 되어 당 총재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공석이 된 당 총재 자리를 채우고, 지지도가 바닥으로 추락한 당을 살리기 위해 지난 3월 30일 발리에서 열린 민주당(PD) 임시 전당대회는 마루주끼 알리 현직 국회의장의 도전을 잠재우고, 고심 끝에 유도요노 대통령을 만장일치로 당 총재에 추대하였다. 유도요노 당 총재는 수락연설에서, 16년 전에 수하르또 대통령이 하요노 장관을 통해 한 이야기와 너무 유사한 발언을 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정당은 특정 개인의 권위에만 의존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본인은 이런 이유로 오래 전부터 당 총재직에 오를 의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하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와 당원들의 구당 염원에 부응하여 오늘 총재직을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16년 전에 수하르또의 평소 지론이 측근들의 설득에 의해 무너진 것과 같이, 이번에도 유도요노 대통령은 본인의 신념에 반하여 또다시 측근들의 간청에 못 이겨,‘시스템보다는 개인에 의존’하고 마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그런데 16년 전 대통령의 ‘획기적인 발언’을 언론에 공표한 바 있는 하요노 장관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은 유도요노 대통령의 민주당으로 이적하여 당 최고위원직에 봉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요노의 기자회견’모습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있다.
총명하고 신중하기 이를 데 없는 유도요노 대통령이 자명한 이율배반이라는 모순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다음 수순을 위한 고육책일 수도 있다. 5월에 예편하는 쁘라모노 에디 육군참모총장의 행보에 시선이 쏠리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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