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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25. 즉결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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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환의 주간포커스
작성자 jktbizdaily1 댓글 0건 조회 6,242회 작성일 2014-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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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토요일 한밤 중인 12시 30분, 17명으로 구성된 무장집단이 여러 대의 자동차에 분승하여 중부자와 슬레만군(Kabupaten Sleman) 역내에 위치한 쯔봉안(Cebongan) 교도소에 들이 닥친다. 그리고는 교도소 담을 넘자마자 전화선부터 끊고, 당직 직원들의 휴대폰을 수거하며, CCTV 까지 철거해 버렸다. 그리고는 바로 전날인 22일 족자카르타 경찰서에서 이감되어온 11명의 피의자들 중, 4명을 불러오도록 강요하였다.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과정에, 교도소 경비원들도 구타를 당하면서 수감 중인 네 명의 피의자가 확인되자, 침입자들 중, 한 명은 시간을 재고 있었으며, 또 한 명은 이들을 차례로 현장에서 사살하였다. 불과 15분 동안 벌어진, 잘 훈련된 집단에 의한 작전이었다. 바로 이 네 명의 희생자들은 슬레만 시내 한 카페에서 당직 중이던 전직 특전사 요원 헤루 산또소 중사와의 시비 끝에, 깨진 병으로 그를 살해한 용의자들로서, 4일 전인 3월 19일 경찰에 검거되어 수감 중이었다. 그리고 이들 용의자 중 한 명은 전직 경찰요원이었다.
 
인도네시아 역사상, 무장집단이 교도소를 무단 침입하여 재소자들을 살해한 사건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국가의 공권력을 무시하고 조직적으로 초법적인 행동을 취한 경우는, 군부철권정치가 극에 달해 있던 1980년대 초 자카르타를 비롯한 몇몇 대도시에서 벌어진 ‘우범자 즉결처형’ 사건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당시 유흥가가 밀집되어 있던 남부 자카르타 블록 엠(Blok M) 지역을 중심으로 의문의 피살자들이 거의 매일 발견되면서 수개월 동안 신문지상에 연일 보도된 희생자 숫자만 하더라도 벌써 수백 명을 넘어섰으니, 먼 바다나, 강에 유기되어 그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숫자를 계산하면 천여 명이 넘을 것이란 추산이 나왔다. 이들 우범조직으로부터 평소 괴롭힘을 당하고 갈취를 당한 선량한 소상인들은 내심 박수를 치며 이를 반겼지만, 국제사회가 이를 방관할 리 없었다. 네덜란드 대사가 목따르 외무부장관을 예방하여 이 문제를 유엔에 상정시키겠다는 경고를 하게 되자, 비로서 이 행위는 중단 되었다. 수하르또가 하야한 이후, 한 서방기자가 당시 이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그는 자신의 결재 하에 군 특수부대에 의해 이루어진 작전이었음을 시인하였다.
 
지금 언론 정치,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는 이슈 중 하나가 군과 경찰의 충돌 문제이다. 수하르또 철권정치 32년 동안 인도네시아 국군(TNI)의 조직 내에는 육군, 해군, 공군 외에 경찰군도 포함되어 있었다. 타국의 예를 보면, 통상 경찰조직은 내무부 산하에 들어가던가, 또는 독자적인 조직으로 운영되었으나,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만 경찰군을 국군예하로 두고 있었다. 당시 인도네시아 국군 편제상 경찰군의 위상은 ‘육군 최우선’ 원칙에 눌려 항상 종속적이거나 부차적이었다. 주지사와 군수, 시장 직책의 절반가량을 국군 현역들이 차지하던 시절, 경찰군 출신이 관가에 입문하는 비중은 타군 출신에 비해 항상 미미하였다. 이렇게 억눌려 지내던 경찰조직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시점은, ‘민주화의 봄’을 맞기 시작한 구스 두르 정부 때이다. 2000년 구스 두르 정부는 국민협의회(MPR) 결정을 통해, 경찰군을 국군에서 분리시켜 대통령 직속의 경찰청으로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4년 후인 2004년 9월 30일 부로 메가와띠 정부는 이를 넘겨받아 시행에 들어갔다. 군은 그들의 동력인 ‘이중기능(Dwi Fungsi)’ 역할을 상실하기 시작하였으며, 정치에서 배제되기 시작했다. 종전 국군의 몫으로 배당되던 국회의원(DPR) 할당제도 폐지되었다. 이와 같은 정치적인 권한축소는 경제적 이권 상실로 이어졌다. 반면 독자적인 권한을 확보한 경찰군은 ‘물 만난 고기’ 처럼 보라는 듯이 독자성을 시위하였다. 얼마 전 까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과시하던 육군은 자괴감과 상실감에 빠져든다. 그리고 이들의 욕구불만은 서서히 일선부대에서부터 분출된다. 자신들의 ‘동생뻘’이었던 경찰군에 대한 질투와 응징심리가 복합되어 끌어 오른다. 그리고 한번 시작된 충돌은 ‘악순환’의 꼬리를 물어 그 빈도가 갈수록 더해진다.
 
사건 후 4일이 지난 3월 27일에야 유도요노 대통령은 이번 교도소 살해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관계당국에 지시하였다. 그런데 언론에서 지적하는대로, 이번 사건을 놓고 몇 가지 의문부호가 부쳐진다. 경찰에 입건된 지 3일만에 교도소로 이감되는 경우는 아주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들 무법집단의 공격을 이미 인지하고 경찰당국이 공격자와의 충돌을 기피하기 위해서, 아니면 사전 합의에 의해 전격적으로 이감하였다는 추론이 나올 수 있다. 아무튼 사정당국의 조사에 의해 자초지종이 밝혀지겠지만, 내년도 국선, 대선을 앞두고 이들 양대 치안질서 담당기관의 충돌이, 혼란 정국에 ‘불에 기름 붓는 격’이 되지 않을까, 국민들은 걱정스런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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