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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47. ‘9.30사태’의 전말(顚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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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환의 주간포커스
작성자 jktbizdaily1 댓글 0건 조회 5,946회 작성일 2014-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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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D-day H-hour         
 
납치자 명단이 확정되고 병력동원계획까지 수립되자, 마지막으로 거사일을 확정하는 일만 남았다. 운뚱 중령이 강력히 요청하는 반둥 소재 실리왕이 사단으로부터의 탱크 동원계획이 차질을 빗자, 거사일을 하루 더 늦춰 10월 1일 04시로 최종 확정하며, 이날의 작전을 ‘9.30운동(Gerakan 30 September)’이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막내아들 또미의 병간호 차 육군병원에 머물고 있는 전략사령관 수하르또 소장의 의중을 타진하기 위해 장군을 만나러 간 라띱 대령이 자정이 다 되어 돌아오자, 혁명수뇌부는 수하르또가 거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반대도 하지 않을 것이란 결론을 내리고 본격적인 행동단계로 돌입한다.
 
H-hour를 두 시간 남겨 둔 10월 1일 새벽 2시, 비단헝겊으로 만들어진 혁명군 인식표를 부착하며 할림지역을 출발한 1,500명의 병력 가운데 수라디 대위 지휘하의 제454대대 소속 3개 중대는 모나스 광장 서쪽의 국영 라디오방송국(RRI), 제530대대 소속 3개 중대는 남쪽에 위치한 전신전화국을 점령하였다. 한편 같은 시간대에 운뚱 중령의 직속 부하인 둘 아립(Dul Arief) 중위가 지휘하는 7개조의 납치특공대는 막사를 떠나 각각 지정 받은 납치 대상자들의 자택에 도착하여 4시 이전에 포위작전을 모두 완료한다. 첫 희생자는 기획관리담당 육군참모차장 하르요노(M.T. Haryono) 소장이었다. 기습적으로 들이닥친 괴한들에게 거칠게 반항하던 장군은 현장에서 사살되어 트럭에 실려졌다. 같은 시각에 국방부장관 나수띠온(A.H.Nasution) 대장에 대한 납치작전이 시작되었다. 나수띠온 장군은 다리에 총상을 입고 담을 넘어 옆집인 이라크 대사관 정원을 통해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였으나, 그와 모습이 비슷한 전속부관 뗀데안(Pierre Tendean) 중위가 오인되어 납치되었다. 4시 30분엔 육군참모총장 야니(Achmad Yani) 중장도 무례한 행동을 보인 이들을 엄하게 꾸짖다 피살되어 끌려 가자, 가정부는 야니의 부관인 수바르디(Subardi) 소령 집으로 허겁지겁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수바르디는 인근에 있는 정보참모부장 빠르만(Siswondo Parman) 소장 관사로 달려갔으나, 그도 이미 납치된 사실을 알게 되자, 이번에는 수도경비사령관인 우마르(Umar Wirahadikusuma) 소장 관사를 찾아갔다. 우마르 장군은 자카르타 주요도로를 봉쇄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을 내리고 실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특전사(RPKAD)의 도움을 이끌어 내기 위해 수바르디 소령을 사령관인 사르워 에디 위보워(Sarwo Edhie Wibowo) 대령의 관사로 급파하였다. 이때가 새벽 5시 반이었다. 야니 참모총장이 납치된 직후인 4시 50분경에 군수참모부장인 빤자이딴(Pandjaitan) 준장도 반항하다 현장에서 피살되었고, 5시경엔 행정담당 육참차장인 수쁘랍또(Soeprapto) 소장, 법무감인 수또요(Sutojo) 준장이 납치되었다. 8명의 납치 대상자 중 나수띠온 장군의 측근이자 미국통인 수껜드로(Soekendro) 준장은 마침 베이징에 출장 중이라, 마지막 순간에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5시 50분 특공대장인 둘 아립 중위가 청년민병대장인 수요노(Sujono) 공군 소령을 경유하여 ‘3명 사망, 3명 생포, 1명 도주’라는 전과와 함께 납치작전을 종료하였음을 아이딧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나 나수띠온 장군에 대한 납치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보고를 접한 아이딧과 혁명군 지휘부는 패닉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최고위직 우익장성인 나수띠온이 생존하여 반격을 가할 가능성을 염려하면서, 일단 다음 단계의 작전계획을 실천에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대통령은 전날 밤 12시가 다 되어 대통령궁을 떠나 ‘호텔 인도네시아’에서 행사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 데위 부인을 태우고 숙소인 위스마 야소(Wisma Yaso)로 귀가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대통령은 아침 7시에 수빠르조 준장과 대통령궁에서 만나도록 되어 있는 각본대로 대통령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앞에서 에스코트하던 보좌관 망일(Mangil) 경찰 대령이 나수띠온 장군 자택 부근을 지날 때,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동료 경찰로부터 나수띠온 장군이 탈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대통령에게 보고하자, 대통령은 크게 당황하며 차의 방향을 돌려 시내를 잠시 배회하게 된다. 망일 대령은 그로골(Grogol) 지역 하르야띠 부인의 숙소에 대기하고 있던 경호실 차장 사엘란 대령과 상의한 후, 대통령을 그로골로 모시기로 합의를 본다. 대통령이 그로골 자택에 도착하자마자, 제2부수상 레이메나 박사로부터 나수띠온 장군이 지금 부상을 입은 채 자신의 집 별채에 은신해 있다는 긴급보고가 들어왔다. 수까르노는 경호실 소속 알리 에브람 중령에게 나수띠온 장군을 색출하여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라띱 대령도 같은 목적으로 나수띠온 장군의 행방을 쫓고 있었다. 이렇게 아침 내내 행방이 묘연했던 대통령이 오전 9시 경 할림 혁명군 본부지역에 불쑥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은 아이딧과 혁명군 수뇌부는 일단 안도하면서, 대통령이 자신들을 불러 이전에 약속한대로 조각을 단행하고, 중국의 휴양지로 은퇴하겠다는 성명서를 읽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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