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경영 이야기-9] 지는 것이 이기는 것, 베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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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탐문, 경영이 예술이다]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경영 이야기 아홉 번째-박주상 대표의 안분지족 인생 경영
- 소확행과 안분지족, 박주상 대표의 행복 경영-
세상에서 가장 좋은 모임은 어떤 것일까?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석학 추사 김정희는 최고의 모임을 부부 · 아들딸 · 손자가 함께하는 것(高會夫妻兒女孫)”이라 밝혔다. 이 칠언 절구의 앞 구절이 또 의미심장하다. “최고의 반찬이 두부 · 오이 · 생강 · 나물(大烹豆腐瓜薑菜)”이라 읊었으니.
핵가족이란 말도 없던 때다. 웬만해서는 육식이 연중행사였을 시대다. 그런데 왜 추사는 이백여년 후 오늘날에나 고개 끄덕일 소위 ‘소확행’을 태연자약 금결로 새겨 놨을까? 영원히 현대일 수밖에 없는 그의 일필휘지 추사체로.
‘소확행!’, 문득 이글의 주재가 되었다. PT. TOU RUBBER INDONESIA 박주상 대표와 <경영탐문> 대담의 중심을 파고든 단어. 박주상 대표의 ‘소확행’은 멋졌다. 아름다웠다. 이백여 년이란 간극을 훌쩍 뛰어넘어 추사 김정희 선생과 상통했다. 박 대표의 경영이야기, 이 글을 읽는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공감되리라 확신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안 좋아할 사람 있을까요? 언젠가 아들 며느리가 함께 살자는 뜻을 조용히 밝히더라고요. 우리 부부는 내심 좋으면서도 한참을 망설였지요. 고려하니 고려할 게 많았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거듭할수록 답이 따로 정해지진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즉 우리 일은 우리가 우리식으로 우리 좋은 대로 결정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었죠. 한 순간 ‘좋다!’는 말 외에는 싹 덮기로 아내와 뜻이 일치했습니다. 세상사 안 따지면 따질 게 없잖아요?”
“슬하의
아들 며느리와 손녀 둘. 즉 3대의 동거. 소소하지만, 확실한 일상의 행복을 실감하게 되더군요. 전엔 따로 떨어져 사니 요일 시간 정해놓고도 어긋날 때가 있었어요. 지금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조석으로 밥상에서 마주하죠. 우선 집안에 활기가 돌아요. 성큼 가까워진 손녀들 재롱에 퇴근 시간 발걸음을 재촉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해외라서 가능한 일일까? 집이 너르고 가사와 육아 도우미를 쓸 수 있는 인도네시아 환경
때문일까? 그래도 3대가 함께 사는 경우 그리 많지 않다. 핵가족이 익숙해진 시대니까. 일상의 루틴이 방해받는 것을 남녀노소
너나없이 싫어하는 것이 작금의 추세니까.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우스갯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는 시대 아닌가.
지는 게 이기는 법
박주상 대표는 참 부러운 만능 키 하나 보유하고 있다. 삶의 행복을 스스로 조율하는 키다. 소위 맥가이버 칼이라 말하는 다양한 기능의 자그만 도구보다 더 간결하고 유용한 행복의 키.
“‘이기려 하지 마라. 지는 게 이기는 법이다.’ 저는
이 말을 늘 스스로에게 강조합니다. 좌우명, 생활철학 애써
이런 이름 붙이지 않은 그야말로 일상의 지침입니다. 여기에 덧붙이는 것이 ‘베풀어라.’에요. 지는
것에 베풀기를 더하면 어느 누구와도 갈등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지는 게 이기는 법, 베풀어라’ 말뜻도 이리 쉽고 선명하다. 중요하기로는 비할 데 찾기 쉽지 않으리라. ‘지는 것이나 베풀기가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야?’ 대번에 이렇게 말할 혹자 왜 없으랴. 그래 맞다. 어려우니 행복이 거기 있다는 거다. 신은 가장 가까운 마음 안에 각자의 행복을 숨겨두었다는데, 우리는 이 행복 찾기 얼마나 어려운가!
박주상 대표와 자주 소통하는 주변 지인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것이 있다. 그의 부드럽고 긍정적인
성품이다. 기골이 장대한 것은 아니지만, 골격이 굵고 단단한지라
한 성깔 할 것 같은 인상과는 영판 다른 면모다. 이기려 들지 않는 것, ‘조금 손해 보는 것이 나중에는 이익이다.’는 신념을 평소 생활
속에서 실천하니 마치 불가의 보살도행을 보는 느낌이다.
“의견이 갈릴 것은 인지상정이죠. 투자자 입장이었던 두 분으로서는 더 이상 손실을 좌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 올인이었거든요. 즐겁게 잘 할 수 있는 일이었고요. 더구나 시설 셋팅에서부터 제 손길을 거친 회사잖아요? 특히 현장 운영 총 책임을 맡았던 저는 두 분과 생각이 좀 달랐어요.”
“가장 중요한 것이 거래사와 계약이행이었는데요. 생산하던 주문 부품을 지금 손해 본다고 멈춘다면 도의가 아니죠. 이건 일방적 계약 파기니까요. 고민 끝에 모든 것을 제가 떠안기로 결정했어요. 제 나름으로는 비영구적 손실을 택한 것이지요.”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을 믿는 힘, 이 얼마나 멋진 무기인가. 박 대표의 이 힘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마음, 이기려 들지 않는 것, 당장의 손해가 내일의 이익일 수 있다는 그가 가진 신념의 발로였을 거다. 그 과정에서 그는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했다.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던 것이다.
감동이다. 내 탓보다 남 탓 하는 것이 흔하디 흔한 세상인심의 향배 아닌가. 이런 놀라운 신념과 힘, 이 경영탐문을 통해 찾아 듣고 느낄 수 있어 참 좋다. 그래 이게 사람 사는 세상 아니랴.
“자금난에 직면해 진퇴양난일 때 조건 없이 따뜻하게 제 손을 잡아준 몇 분이 있어요. 지금도 감사한 마음 한 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분들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곤경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누구에게도 손해 끼친 일 없이 무난히 매조지 할 수 있었고요.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잖아요? 그 창업 동지들이나 도와주신 분들이 지금 가장 절친들이니 한 때 어려웠던 덤을 알짜로 얻은 셈 아닌가요?^^”
시작과 결과에서 알게 되는 과정
박 대표는 전북 남원 출생(1962년)이다. 읍내에
자그마한 상가를 소유한 부친의 능력 덕에 큰 어려움 없이 자라고 공부했다. 지금도 모친께서는 상가 뒤쪽에
있는 집을 지키고 계신다.
“학업을 마치고 고향을 떠나 발길이 닿은 곳이 부산입니다. 다들 상경한다 할 때 저는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어요. 당시 부산은 한국 신발산업의 요충지였습니다. 사회
첫발이 자연스럽게 신발산업과 맞닿았어요. 군복무를 마친 후 변신을 시도할 수 있었지만, 저는 다시 부산으로 복귀했습니다. 신발산업, 저를 오늘까지 이끈 실마리요 현실입니다.”
모든 시작과 끝이 누구에게나 성공으로 결론지어지지
않는다는 것, 경영탐문 진행 과정에서 늘 얻었던 결론이다. 과정의
소용돌이가 클수록 첫 실마리와 현실의 조화가 절묘했다. 과정이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자기 소신이 분명하되 가진 능력을 과신하지 않은 분들이 일군 결과는 알찼다.
그러니까 성공은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분들의 몫이었다. 끊임없이
뒤따른 노력이야 당연지사.
소확행의 진수 가족
“제 소확행 중 하나가 걷기입니다. 제가 사는 주택 단지가 마침 걷기에 적절한 곳이어서 걷기로 아침을 열고 걷기로 저녁을 닫지요. 건강 다지기가 우선이지만, 마음을 다스리고 정리하는데 좋은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아내도 함께 하는데요. 수술 후 체력이 달려 시작하는 시간은 같아도 끝내는 시간이 다른 것이 좀 안타깝습니다.”
박 대표의 사무실 풍경은 그야말로 수수했다. 회사의 특성상 완성된 신발과 생산하는 아웃솔 관련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가만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최고의 남편 주상씨”로 시작되는 기념패다. 그의 아내 이채영 여사가 헌정한 인도네시아
살이 30주년 기념패. 바로 그 옆엔 눈물 맺히는 감사패가
또 하나 있다. 가장의 희생과 공로를 기리며 가족들의 마음을 담은 빛나는 감사패.
가족이야기를 묻자 박 대표의 얼굴이 환해진다. 특유의 호탕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가족 자랑 하려면 대개 멈칫거리며 꺼내는 겸양지사가 있다. ‘가족 자랑하는 사람 팔불출’이라는 말, 그런데 박 대표는 이것도 생략이다. 말 속에 아내 사랑, 아들 며느리, 손녀사랑이 풍성하고 진심으로 묻어났다. 역시 소확행의 진수는 가족이라는 것 이리 선명하게 확인하기도 쉽잖을 일.
“제가
어려울 때, 또 가족 누가 어려울 때도 아내 헌신의 두께는 말로 표현이 안 됩니다. 사내들 강한 척해도 아내 말 한마디에 힘을 얻기도 하고 낙망하기도 하잖아요?
특히 어려울 때 아내의 믿음과 격려는 세상의 어떤 위로의 말보다 더 강력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생생한
경험자란 의미죠.”
앞의 기념패 내용을 옮기지 않을 수 없다.
“최고의 남편, 주상 씨. 당신이 황무지에 곡식을 심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덧 그 황무지가 황금 들판으로 변해 있네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당신의 노력 · 용기 · 패기 · 우직함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늘 곁에서 응원하겠습니다.”
박 대표는 아내가 어머니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고 했다. 그 아내가 2022년 1월 종합검진결과 유방암 상피암 진단을 받았다 했다. 다행히 초기 발견이었다. 수술 이후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더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 살아가기를 기도한다니 쾌유 소식이 멀지 않았지 싶다.
“슬하에 1남 1녀에요. 아들 딸 모두 초 · 중 · 고를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JIKS)에서 마쳤어요. 아들은 고려대, 딸은 연세대를 졸업했습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아들이 7년 전에 제 곁으로 왔습니다. 성가하여 지금 한 집에 같이 살고 있으니 그야말로 가족다운 가족이라는 느낌 강합니다^~^. 8년여 기자생활을 하던 딸은 결혼 후 지금은 한국에서 논술학원을 운영하고 있고요.”
박 대표와 경영탐문 대담을 나누고 글을 정리하며 필자가 작품으로 창작한 단어는 ‘安分知足(안분지족)’이다. '자기의 분수를 알아 만족하는 것‘. 소확행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으리라. 안(安)은 평온과 안정이다. 분(分)은 자신의 역할과 위치이고 지(知)는 인식과 이해다. 족(足)은 곧 만족이니 그야말로 행복의 척도가 자신에게 있음이요 박 대표와는 잘 어울리는 성어다.
행복에는 합격점과 만족점이 없다고 한다. 이른바 어떤 조건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 오직 마음먹기에 달려 있음이니 안분지족과 소확행을 아우르는 것 행복의 지름길 아니랴.
신발 산업의 가치와 변화
세상의 흐름은 바람결처럼 변하고 물결처럼
일렁인다. 우기엔 만상이 촉촉한데 건기엔 표면이 쩍쩍 갈라진다. 경제의
변화도 자연현상과 다르지 않다. 협곡에서는 소용돌이지만 거시적 표면은 미동으로 그치기도 한다. 외유내강, 박 대표는 작금의 경제 상황이나 소용돌이에 관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듯 표정이 덤덤하다.
“저희 회사는 주문량을 생산하는 시스템이잖아요? 주문자의 지향점이나 부품의 품질이 그에
상응하는지 잘 파악해야 하지요. 품질과 성능을 실험하고 거듭 확인해야 합니다. 특화된 어떤 부품을 개발하여 사용처에 제시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고요.”
“초기 우리 회사에서는 화학 재료를 갑피로 사용한 케미 부분을 주로 생산했어요. 뉴발란스와 아디다스 부품이었지요. 현재는 등산화를 비롯하여 내유성 · 절연성 · 전도성에 중점을 둔 아웃솔(OUTSOLE/ 밑창)을 생산합니다. 브랜드는 K2 · Blackyak · Golping · Dunlop과 패션쪽 Lacoste · Blackston의 아웃솔이고요."
“회사에 주문량이 아직 꾸준하니 제가 복이 많은 편이지요^~^ 제3국 거래가 더 많은 편인데요. 2022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통계는
성장 전망이더군요. 하지만 현장의 체감은 조금 다릅니다. 엔데믹으로
글로벌 신발시장 전체 전망이 밝다고 하지만, 생산 현장으로서는 낙관만 할 수 없습니다. 22년부터 불어 닥친 경기침체로 소비가 얼어붙은 것은 주지하는 바잖아요? 신발
관련 스타트업들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고요.”
인도네시아는 박 대표께 희망의 땅이었는가?
“인도네시아는 PT. DONG JOE INDONESIA 주재원으로 인연을 맺었어요. 1990년 3월입니다. 케미칼 실험실, 접착과 가공, 프레스 등 기술 쪽 부서를 관장했지요. 2006년 폐업 시까지 16년간 근무했습니다. 동조 퇴직 후 한국제화기계에서 아웃솔(밑창) 전문 회사를 설립 운영하자는 제안에 따라 PT. KD RUBBER INDONESIA에서 총괄 운영을 맡아 약 3년여 일했지요. 그리고 지금의 PT. TOU RUBBER INDONESIA를 공동 창업했던 것이고요.”
박 대표의 외유내강 성품은 그를 필요로 하는 곳도 많게 한다. 재인도네시아 한인회나 평화통일 자문회의 등 무려 5개 단체에서 임원을 맡고 있다. 그 외도 단체 곳곳에서 활동 요청이 끊이지 않지만, 경영인으로서 본분을 잃지 않을 만큼 잘 조율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밝힌다.
끝으로 인도네시아와 인도네시아 직원들에 관한
인상을 박 대표께 물었다.
“회사 곳곳에는 저와 수십 년을 함께 일한 인도네시아인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현장의 보물들이지요. 이들의 근면과 성실이 존경스러울 정도인데요. 분명 문화와 정서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참 중요하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들의 복지에 관해 소홀하지 않는 것입니다.”
작업복 차림에 분주하게 현장을 오가는 아들 박종욱 실장을 대담에 초청했다. 아버지와 함께
일한 것이 7년여라 했다.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은 느낌이 든다고 부친을 향해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박 대표께서는 믿음직한 아들이 있어 혹 평일에
골프 약속이 생겨도 편히 즐긴다고 화답한다. 필자의 마음이 따끈해진다.
어찌 커피 한 모금 삼킨 탓이랴.
“인도네시아에서 공부한 기간이 상당히 길지만 생산 현장 일에 있어서는 다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현장 직원들과 정서가 틀린 것 때문에 불편했는데요.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께 많은 것을 배우면서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부품 재료의 효율성과 신발 산업 전반에 걸쳐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요.”
박 대표와 박 실장 부자에게 인도네시아는 분명 행운과 희망의 땅이지 싶다. 그건 필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끝내 사양을 거두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신 박주상 대표께 다시 감사드린다. 쾌히 호응해준 박 실장께도 즐거운 일이 이어질 것을 믿는다. 아울러 PT, TOU RUBBER INDONESIA의 번창을 확신하며 두 부자와 그 가족의 건강과 행운을 빈다.
※ 이 글은 <인니 한인 사회가 보유한 소중한 자산 기록하기> 아홉 번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재인니한인회가 주최하고, 재인니 한인상공회 KOCHAM이 주관하며 자카르타 경제신문이 후원합니다. 예술가의 시각으로 탐문하고 기록하는 경영 현장과 경영인들의 창의력과 실천 능력, 다음 편을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경영탐문 내용은 영상으로 제작되어 You Tube 채널 <손작가 TV> 경영탐문 섹션에 업로드 됩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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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h2nbZ8avd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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