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빠당’이냐 ‘파당’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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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의 자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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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인도네시아어 표기 원칙
나는 인도네시아 음식을 대부분 좋아하지만, 특히 Padang 음식을 몹시 좋아한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미낭카바우족의 전통 가옥 형태를 한 Padang 레스토랑은 자꾸만 내 발길을 이끈다.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널리 인기를 끌며,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주변 국가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이 지역의 음식은 한 번 맛보면 중독되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몇 년 전, 미국의 CNN 방송사가 페이스북을 통해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1위를 기록한 것이 바로 ‘른당’이라는 매콤한 고기요리인데, 이는 대표적 Padang 음식이다. 참고로, 인도네시아 음식이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1위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도네시아가 미국에 이어 페이스북 국가별 사용자 2위에 해당하는 나라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Padang 음식을 한글로 표기할 때, ‘빠당’이라고 해야 현지 발음에 더 가깝고, 매콤하고 자극적인 빠당 음식의 맛을 제대로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파당’ 음식이라고 표기하면 왠지 모르게 싱거울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인도네시아 학생들과 작문을 할 때도 항상 학생들이 의아해 하는 부분이 바로 인도네시아어를 한국어로 표기할 때 된소리가 아닌 거센소리로 적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대학교는 왜 ‘데뽁’이 아니라 ‘데폭’에 있느냐고 묻는다. ‘빨렘방’이 아니라 ‘팔렘방’(Palembang)이라고 적고 나면, 왠지 수마트라가 아니라 어디 팔레스타인 옆에 붙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 맛있고 쫄깃쫄깃한 ‘음뻭음뻭’의 맛을 ‘음펙음펙’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의 제1장 4항의 내용을 보면,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도대체 왜 ‘빠당’음식이 더 현지음에 가까운데 된소리를 쓰지 않도록 한 것일까? 우리말의 자음은 예사소리(ㄱ, ㄷ, ㅂ), 거센소리(ㅋ, ㅌ, ㅍ), 된소리(ㄲ, ㄸ, ㅃ) 세 갈래의 대립을 갖지만, 인도네시아어를 비롯한 많은 외국어 자음은 무성음( k, t, p )과 유성음( g, d, b ) 두 갈래 대립만을 갖는다.
우리는 ‘달, 탈, 딸’을 각각 다른 소리로 구분하지만, 영어에서는 ‘big’과 ‘pig’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두 가지 구분만 있을 뿐, pig를 ‘피그’라고 발음하든 ‘삐그’라고 발음하든 같은 [p]로 인식한다. 반대로 우리는 유성음과 무성음 대립이 없으므로 ‘고기’라는 단어가 두 개의 같은 자음 ‘ㄱ’으로 인식되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코기( kogi )’처럼 무성음 k와 유성음 g로 다르게 들리는 것이다. 단, 이 무성음( k, t, p )들이 언어에 따라 영어나 독일어처럼 우리말의 거센소리에 가깝게 들리거나 프랑스어나 인도네시아어처럼 된소리에 가깝게 들리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언어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외국어의 p, t, k 소리를 강하고 거친 느낌을 주는 된소리(ㄲ, ㄸ, ㅃ)가 아닌 거센소리(ㅋ, ㅌ, ㅍ)로만 적도록 제한한 것이다. 같은 무성음 [p]를 ‘ㅍ’과 ‘ㅃ’ 두 가지 다 허용하면 오히려 표기의 혼란이 가중이 될까 우려한 것이다. 다만, 2004년 새로 고시된 외래어 표기원칙을 보면, 태국어와 베트남어의 경우 우리말처럼 자음의 세 갈래 대립이 존재하여 ‘푸켓’과 ‘푸껫’이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에, 이들 언어에만 한정하여 ‘푸껫’, ‘호찌민’과 같은 된소리 표기를 허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어의 경우,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유성음, 무성음 두 갈래 대립뿐이므로, 무성음은 거센소리 표기가 원칙적으로 맞는 것이다.
학생의 이름을 한글로 쓰는 방법을 처음 가르쳐 줄때, Putri는 푸트리로, Yetti는 예티로 써야 한다고 가르쳐주면, 학생들은 매우 의아해 한다. 하지만,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그러한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 역시 한글 맞춤법의 일부이고, 외래어·외국어의 한글 표기를 통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가능한 한 준수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가도 인도네시아어의 실제 발음과 너무나 동떨어진 외래어 표기법에 실소가 절로 나오기도 한다.
현실발음을 표기에 반영하라는 주장에 따라 잘 통용되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하루 아침에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로 표준어가 바뀐 것도 머리 아픈 일이고, ‘푸틴’대통령이 하루 아침에 ‘뿌찐’으로 불리는 것도 복잡한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감칠맛 나게 들리는 ‘빠당음식’이 약간은 퍼석퍼석하고 맛없게 들리는 ‘파당음식’이 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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