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67 - 그사이에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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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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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에서 시를 읽다 67>
그사이에
시. 문태준
오늘 감꽃 필 때 만났으니
감꽃 질 때 다시 만나요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겠어요
감나무 감꽃 목걸이가 다 마르려면
오늘의 초저녁 이틀 나흘 닷새 아니면 열흘 아니면 석 달 아니면 네 철
하나의 물결이 우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더라도
암벽에 새긴 마애불이 모두 닳아 없어지더라도
(출처: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학동네)
Note************
문태준은 느리게 읽어야 하는 시인이다. 천천히 읽고 사유하는 즐거움을 그의 시를 읽으면서 저절로 배운다. 한호흡은 세속의 시간으로는 지극히 짧지만, 때로 시 속에서 영겁과도 길다. 문태준의 시는 그토록 다른 시간의 깊이와 길이를 말한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모든 당신들이 살고 있는 그곳에는 가을이 왔을 것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뜻대로 되는 경우란 없다. 더구나 살던 땅을 떠나온 우리는 늘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이별의 아픔을 쟁여놓는 것처럼 안타깝고 어리석은 일은 없을진대, 번번이 그 슬픔에서 놓여나는데 실패한다.
그때 시는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다. 감꽃이 피고 감꽃이 질 때까지 무슨 일이 있겠느냐고, 그때 가서 다시 만나면 되지 않겠느냐고 조용히 되묻는다. 감꽃의 목걸이가 다 마르려면 몇날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 알 수는 없으나, 그 시간을 헤아리는 것조차 다 무슨 소용이겠느냐고 한다. 헤어짐의 세월이 마애불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길어진들 어떠하냐고, 마음 안에 두고 있으면 언제나 만나고 있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말을 줄인다.지극히 불교적인 사유이지만, 또 지극히 현실적인 사유다. 그의 시를 읽는 즐거움이다.
*채인숙 /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고, 인도네시아 문화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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