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I 아세안 경제발전과 경제특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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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에 보는 아세안 경제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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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세안 경제의 현황
□ 아세안은 동남아 지역에 입지한 10개국 경제를 말함
- 아세안은 1967년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 당시 자유진영 5개국이 창설했고, 1980년대 브루나이, 1990년대 후반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가 순차적으로 가입하여 현재 10개국으로 구성. 2014년 현재 인구 6.2억, GDP 2.5조, 1인당 GDP 약 4,000달러의 경제공동체로 전환됨.
<표 1-1> 아세안 회원국의 경제규모(2014)
□ AEC의 경제 규모는 인구, 상품 수출입 등에서 세계 상위에 위치
- 단일시장으로 AEC의 인구는 2014년 6.2억 명으로서 중국과 인도에 이은 세계 3위이며, 회원국인 인도네시아만의 인구도 2.5억 명으로 개별국가 기준으로도 미국에 이은 세계 4위임. 아세안의 경상 GDP는 2.5조 달러로 프랑스, 브라질 등과 비슷하며 세계 7위 규모. 상품수출규모는 1.3조 달러로 중국, 미국, 독일에 이은 4위이며 상품 수입에서는 미국과 중국에 이은 3위의 시장임. 아세안의 인구는 한국의 12배 이상, 경상가격 GDP는 1.8배 규모 그리고 상품 수출입은 각각 2배 이상임.
- AEC의 경제력 규모를 고려하면 아세안은 향후 기존의 동아시아 경제 질서 구축에서 중심적 역할에 그치지 않고 세계 질서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임. 즉, 동아시아에서 아세안은 경쟁하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간자적 우위를 누렸지만 이제 세계 전체로 확대되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됨. 특히 아세안 국가 중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브루나이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함으로써 아시아와 미국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할 수도 있음.
<표 1-2> 아세안의 경제적 위치(2014)
자료: 세계은행, 유엔 및 아세안 사무국
□ 아세안경제공동체 청사진 2025년은 2015 청사진을 개선하고 충실화
- AEC 2025 청사진은 5개의 영역에서 AEC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음. (i) 고도로 통합되고 응집된 경제, (ii) 경쟁력 있고, 혁신적이며 역동적인 아세안, (iii) 연계성 제고와 부문 간 협력 (iv) 복원력, 포용적, 사람지향, 사람 중심의 아세안, 그리고 (v) 글로벌 아세안임. 2015년 청사진은 4개 영역의 협력을 추진했으나 2025년 청사진은 연계성 제고와 부문 간 협력 영역을 새로 포함함.
- AEC 2025비전은 기존의 2015년 청사진이 미비하고 있던 분야를 새로 보충함. 경쟁력 있는 지역을 만들기 위해 새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기존 균형발전에 대한 영역의 프로그램이 중소기업 육성과 IAI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공공-민간의 협력, 민간부문 육성, 경제통합에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확대를 포함. 또한 다른 곳에 산재해 있던 유사한 성격의 분야를 통합하여 연계성 제고 및 부문 간 협력을 새로 설정.
<표 1-3> AEC 2015년 로드맵과 2025 로드맵의 비교
2. 아세안 경제발전과 외국인직접투자
□ 경제발전 초기에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아세안 국가들은 대부분 수입대체 공업화에 관심
- 싱가포르는 자원이 없는 국가로서 국내시장 자체가 거의 없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1965년 말라야 연방에서 탈퇴한 싱가포르가 먼저 부존자원 부족, 높은 실업률 문제, 외화수입의 주요 원천이었던 영국군의 철수에 대한 대비로 외국인투자를 본격적으로 유치하기 시작. 공업화를 위해서는 주도형 전략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말레이시아도 동일한 상황이었음. 이에 비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은 식민지 경험을 통해서 민족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자원이 풍부했음.
- 대부분의 국가들이 1950-60년대 외국인투자에 관심을 갖기는 했으나 그렇게 적극적으로 유치를 하지 않았던 이유임.[1] 그러나 말레이시아도 1968년 투자인센티브법(Investment Incentives Act)을 제정해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기 시작했음. 농업기반이 강했던 태국은 1960년대 산업진흥 정책의 일환으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시작함.
- 인도네시아는 1950년대 수카르노(Sukarno)대통령은 비동맹 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고, 외국인투자를 제국주의의 연장선에서 이해했기 때문에 1965년 수하르토(Soeharto) 대통령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인 1967년에 외국인투자법을 제정.
□ 아세안 주요국가가 1960년대 외국인직접투자 유치정책을 사용했으나 근본적으로는 수입대체형 공업화 기조를 따랐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는 주로 내수 지향의 투자가 유입
- 태국에서는 산업정책의 기조가 수입대체에 있었기 때문에 높은 관세를 우회하기 위한 투자가 내수산업에 유입되었음. 중심 투자자는 주로 미국과 일본기업이었으며 일본의 자동차 업체 일부와 전자업체들이 1960년대 태국에 진출함. 인도네시아에는 주로 일본기업을 중심으로 섬유산업에 대한 투자가 많았고, 인도네시아 자동차업체들이 일본 자동차의 부품을 수입하여 이를 조립하기 시작했음.
- 상대적으로 수출에 관심을 가졌던 말레이시아도 1970년대 국제자원가격의 폭등으로 1, 2차 원유파동과 자원시장 호조로 유입되는 외화를 이용하여 독자적으로 일본의 산업정책에 영향을 받아 중화학공업화를 시도했음. 비록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자동차, 철강 등의 산업에 진출하였고 국내 기업인을 육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음.
□ 아세안 선발 국가들은 1980년대 중반에는 모두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으로 전환하면서 수출을 강조하기 시작
- 1980년대는 제 2차 석유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부진으로 아세안 경제도 영향을 받았으며 태국, 필리핀 등은 큰 영향을 받았고 1970년대 자원가격 상승의 수혜국이었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도 세계경기의 침체에 따른 자원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에 직면했음.
- 태국은 1980년대 초반 외환유동성 문제를 겪었고 1980년대 중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이 1차 상품 수출가격의 하락, 외채이자지급 증가, 공적개발원조 자금유입 감소 등으로 역시 국제수지 문제를 겪었기 때문에 수출증대를 통한 외화가득이 중요한 경제정책의 목표로 등장.
- 1985년 서방선진국들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가치를 절상하기로 결정한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로 아세안에 대한 투자는 대폭 증가했고 아세안의 주요국은 모두 수입대체에서 수출주도형 공업화로 전력을 수정했음. 이와 관련하여 아세안 주요국은 모두 외국인직접투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외국인투자 유치에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함.
□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는 1990년대 중 후반 아세안 회원국이 되었고 선발국의 예를 따라 외국인직접투자 유치를 통한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도모
- 베트남은 1980년대 말 “도이 머이” 정책을 채택한바 이는 경제의 개혁과 개방이 핵심이었으며 캄보디아도 1993년 내전의 종료와 함께 국민국가 건설이 시작되었고 미얀마와 라오스 역시 이 시기 개방을 추진했음. 이 시기 4국은 아세안에 가입했으며 본격적으로 세계경제 체제에 편입함.
- 특히 베트남은 1990년대 초부터 수출주도형 외국인직접투자 유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며 주로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로부터 노동집약적 경공업체의 투자를 유치했음.
NOTE
[1] 당시 동남아의 리더국이었던 인도네시아에서는 수카르노 대통령이 비동맹운동을 주도하면서 외국인투자를 제국주의의 일환으로 생각했고 말레이시아에서는 50년대 후반 자치권을 얻은 이후 60년대까지는 서구 자본가로부터 플랜테이션 등의 자산을 수용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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