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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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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804회 작성일 2017-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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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밤
                        시,  김사인
 
 
나 죽으면 부조돈 오마넌은 내야 도ㅑ 형, 요새 삼마넌짜리도 많던데 그래두 나한테는 형은 오마넌은 내야 도ㅑ 알았지 하고 노가다 이아무개(47세)가 수화기 너머에서 홍시냄새로 출렁거리는 봄밤이다.
 
  어이, 이거 풀빵이여 풀빵 따끈할 때 먹어야 되는디, 시인 박아무개(47세)가 화통 삶는 소리를 지르며 점잖은 식장 복판까지 쳐들어와 비닐봉다리를 쥐여주고는 우리 뽀뽀나 하자고, 뽀뽀를 한번 하자고 꺼멓게 술에 탄 얼굴을 들이대는 봄밤이다.
 
  좌간 우리는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해야 혀 자슥들아 하며 용봉탕집 장사장(51세)이 일단 애국가부터 불러제끼자, 하이고 우리집서 이렇게 훌륭한 노래 들어보기는 츰이네유 해쌓며 푼수 주모(50세)가 빈자리 남은 술까지 들고 와 연신 부어대는 봄밤이다.
 
  십이마넌인네 십마넌만 내세유, 해서 그래두 되까유 하며 지갑을 뒤지다 결국 오마넌은 외상 달아놓고, 그래도 딱 한잔만 더, 하고 검지를 세워 흔들며 포장마차로 소매를 서로 끄는 봄밤이다.
 
죽음마저 발갛게 열꽃이 피어
강아무개 김아무개 오아무개는 먼저 떠났고
차라리 저 남쪽 갯가 어디로 흘러가
  칠칠치 못한 목련같이 나도 시부적시부적 떨어나졌으면 싶은
 
이래저래 한 오마넌은
더 있어야 쓰겠는 밤이다.
 
 
출처: 가만히 좋아하는 (김사인 시집/ 창작과 비평)
 
 
****** 떠나온 나라에선 온갖 만물들이 기어이 새로운 생명을 피워내는 봄의 향연이 지금 한창일 것이다. 자꾸 봄이 짧아진다고 걱정들을 하지만, 추워서 세상살이가 더 힘들게만 느껴졌던 겨울이 지나고 스물스물 따뜻한 봄이 오는 신호를 눈치채는 일은 얼마나 행복했는지... 노가다 마치고 술 한잔 걸친 후에 전화를 걸어 밉지 않은 주정을 부리는 공사판 이아무개씨의 사투리도, 화통 삶는 목소리로 붕어빵 봉다리를 흔들며 뽀뽀를 해대는 박아무개 시인도, 빈자리 남은 술까지 마시며 애국가를 열창하는 용봉탕집 장사장도,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봄밤에 취한다. 모두 가난하고 피곤한 일상에 찌들어 살지만 서로를 부르는 따뜻한 마음이 넘치도록 아름다운 봄밤이다. 죽음마저 발갛게 열꽃이 피어 강아무개 김아무개 오아무개는 먼저 떠났고 칠칠치 못한 목련같이 나도 시부적시부적 떨어나졌으면 싶은 봄밤. 그래도 이래저래 한 오마넌은 더 쓰면서 소주 한잔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쓰다듬고픈, 우리네 인생처럼 짧디짧은 봄밤이다.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카피라이터, 라디오작가,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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