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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자바에서 시를 읽다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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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독서노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547회 작성일 2018-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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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수
                                          시, 김상혁
 
 
새를 연구하는 교수는 새를 사랑하는 학생과 새를 사랑하지 않는 학생으로 우리를 구분한다. 새를 사랑하면 새 교수에게 사랑받는 제자가 될 수 있다.
 
어제 그 교수가 강의 도중 조류 관찰용 녹음기를 틀었다.
거기서 문득 흘러나온 새 교수의 흐느낌으로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철새 도래지 해 질 녘의 눈물나게 아름다운 장관을 묘사해 보지만… 한번 터진 우리의 웃음은 그칠 줄 몰랐다.
 
그날 새 교수는 모래 목욕하는 새를 보여 주었다.
땅 위에 지은 둥지를 보여 주었다. 가장자리 효과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하지만 도마뱀이 물로 세수를 하든 코끼리가 진흙으로 도포를 하든 그런 것에 누가 관심이나 있단 말인가?
 
다 큰 어른이 새 떼를 관찰하다 질질 짜는 소리만큼 우리 흥미를 끌 만한 것은 그 수업에 없었으므로, 새 교수, '사람은… 새를 본받아야 합니다!' 같은 말을 진지하게 해 봤자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냔 말이지.
 
새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교수의 강의는 새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했다. 새를 사랑하면 새 교수에게 사랑받는 제자가 될 수 있지만 아무도 새 교수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출처: 현대시 2017년 11월호)
 
 
NOTE***************
새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제 눈으로 보았기에 교수는 울었다. 그런데 그 울음이 관찰용 녹음기에 섞여 들렸다. 교수는 단박에 조롱거리가 된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동하고 울 줄 아는 사람이 웃음거리가 되는 순간이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는 더 이상 새의 생태나 새의 생애나 새의 날개짓은 의미가 없다. 그저 새 떼를 관찰하다가 질질 짜는 교수의 울음 소리를 비웃느라 정신이 없을 뿐이다. 그들의 웃음 소리가 그칠 줄 모른다. 아무도 그들을 혼내지 않는다. 오히려 덩달아 같이 웃는다.
 
그렇다면 이제 누가 새의 아름다움에 대해 가르칠 수 있겠는가. 새의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일이 더 이상 돈이 되거나 명예가 되지 않는 세상에서 말이다. 온 생애를 걸고 새를 사랑하였음에도 교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혹시 나는 그 수업 시간에 교수의 눈물을 조롱하는 제자들 속에서 함께 웃었거나,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던 수많은 제자 중의 한 명은 아니었던가.
 
제발, 자본의 기준으로 계산되지 않는 어떤 아름다운 일에 생애를 바치는 사람들의 열정과 희생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라. 그 옆에 서서 같이 울어주지는 못할 망정, 주저 앉히고 망신 주려는 짓도 마시라. 어떤 이유에서라도 새의 아름다움에 감동한 교수의 눈물이 하찮은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 채인숙 /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고, 인도네시아 문화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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