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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서예가의 골프 만담 1] 찰나, 성공과 실패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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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817회 작성일 2018-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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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의 골프 만담 1> 
 
찰나, 성공과 실패의 순간
 
붓으로 골프치고 골프채로 서예 쓰다 (1)
 
▲ 새벽 안개가 걷히며 잠을 깨어나는 골프장(보고르의 에메랄다 골프장)
 
녹색 필드가 싱그럽게 펼쳐졌다. 파 쓰리 세 번째 홀이다. 블루티 150m, 티 박스에 서면 은근히 만만해 보이는 홀이다. 도전 의욕이 솟는다. 눈 아래로 펼쳐진 필드 때문이리라. 그린 언둘레이션을 잘 이용하면 굴러서 홀컵 안으로 빨려들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성큼성큼 티잉 그라운드로 오르는 이가 있다. 당당한 발걸음이다. 네 명 중 핸디 세 번째인 핸디 16 플레이어다. 오늘 초반 기세가 좋다. 첫 홀에서는 보기를 하더니 두 번째 홀에서 무난히 파 세이브를 했다. 동반자들이 몸이 덜 풀린 사이 그가 치고 나갔다.
 
“어~ 어 어 홀인원 아냐?”
 
그가 날린 공이 깃대를 향했다. 잘 때렸다. 잘 맞았다. 아름다운 궤적이다. 동반자들도 놀라고 자신도 놀라는 사이 멋지게 그린에 안착했다. 두 번 튀기더니 기세 좋게 홀컵을 향해 구른다. 아~ 오~ 으~ 몇 사람의 외마디가 뒤섞인다. 동시에 터져 나온 몇 개의 탄성, 각기 질과 뉘앙스 다른 음표로 날린다. 그 사이 볼이 홀컵을 아슬아슬 지나쳤다.
 
넷 중 가장 낮은 핸디 6 플레이어 차례다. 느긋하게 사선에 오른다. 평소 하던 루틴대로 어김없다. 가벼운 왜글로 힘을 걸러낸다. 헤드 무게나 나르겠다는 자세다. 백스윙도 다운스윙도 간결하다. 공이 티를 떠났다. 온 그린이다. 공이 멈춘 자리가 조금 멀어 보인다. 앞 플레이어에게 니얼리스트를 내 준거 같다. 세 번째 사나이가 준비한다. 핸디 10이다. 뭔가 보여줄까? 두 번의 연습 스윙 끝에 공이 치솟았다. 욕심을 낸 걸까? 벙커를 가로지를 태세다. 홀컵을 직접 노렸다. 러프를 먼저 만난다. 에지에 걸렸다.
 
네 번째 플레이어 차례다. 핸디 18로 넷 중 가장 하이다. 그런데 이 사나이 뭔가 심상찮다. 일을 낼 기세다. 연습 스윙이 매섭다.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날카롭다. 전 홀 홀컵 3m를 남기고 쓰리 퍼팅이 맘 상했던 걸까? 순간 클럽을 꼬나 쥐더니 냅다 공을 팬다. 아뿔싸~ 지구가 조금 흔들렸다. 공이 백 미터도 날지 못했다. 두들겨 맞은 공이 부끄러운지 긴 러프로 숨는다.
 
골프의 샷 타임은 대게 2초 정도로 알려져 있다. 더 빠른 이, 더 느린 이 왜 없으랴. 편의상 알려진바 2초로 하자. 그러니까 90타 보기 플레이를 하는 주말 골퍼라면, 그가 샷에 쓰는 시간이 총 180초다. 약 3분 정도. 그럼 4명 한 조가 샷에 소요하는 시간은 약 12분인 셈이다. 그렇담 나머지 시간은 뭐지? 4인 18홀 라운딩 시간 소모가 약 4시간이잖은가? 걷고 생각하고 준비하는데 각자 소모하는 시간이 약 3시간 57분이나 된다는 거야?
 
▲  햇살이 부셔지는 필드 (자카르타 한림 라마 골프장)
 
▲ 가로와 세로, 그리고 찰나가 예비되는 또 다른 찰나(보고르 레인보우 골프장)
 
▲  오! 그리고~ (인도네시아 빈탄섬 리아 빈탄 골프장)
 
하니 골프를 신선놀음이라는 걸까? 비싼 값 치르고 공치러 나왔는데 죄다 노는 시간 아닌가. 전 홀 결과와 남은 거리 순서에 따라 샷 날리는 시간 말고 나머지는 자유 시간이다. 따져 볼수록 샷 하는 2초가 예술인 거다. 찰나(刹那), 불가에서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려고 역설한 말이다. 물론 골프 스윙에 비유하란 가르침 아니겠지만. 시간의 최소 단위 찰나, 그러나 우주 만물의 생성과 소멸이 이루어지는 찰나, 그러니까 골프는 긴 시간을 즐기는 찰나의 스포츠인 거다.
 
여기서 잠깐! 찰나가 엄청난 가치를 창출하기는 서예도 마찬가지다. 찰나에 붓을 찌르고 긋고 꺾으며, 튕기고 여며야 한다. 그래서 흔히 서예를 찰나의 예술이라 한다. 5분이란 짧은 휘호(물론 몇 시간을 소모하는 대작도 있다.)를 위해 자료를 찾고 서체와 자형, 장법(구도)을 위해 하루쯤 소모하는 거야 예사다. 그래도 작품이 작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튿날 다시 붓을 든다.
 
필자가 인도네시아 국립대학 UI 중문과 학생들에게 서예 특강을 할 때다. 학과장을 비롯해 교수들도 몇 자리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시범을 보였다. 없는 무게를 잡아 ‘모든 존재는 무에서 생긴다’라는 의미의 有生於無 4자를 휘호했다. 모필의 그 오묘한 퍼포먼스에 오빠~ 라는 기성이라도 터지기를 바라며 필봉을 최대한 긴장시키며 천천히 썼다. 휘호를 마치자 감탄이다. 그런데 작품 좋다는 게 아니다. 그 짧은 시간에 멋진 붓질로 한 작품 완성했다고 감탄이다. 그때 필자 물었다. 회호가 몇 분 걸렸는가? 이구동성 2~3분이었단다. 점잖게 설명했다.
 
“제군들이여 본 서생 오늘까지 몇십 년 오직 필묵을 갈고 닦았노라. 어찌 찰나가 찰나뿐이겠는가? 부디 달을 보시라. 달이 지고 나면 달을 가리키던 손가락도 어둠에 묻히고 말지니.”
 
▲ 有生之樂(유생지락)/ 살아있는 기쁨을 즐기자
왼쪽 음각 : 和氣滿堂(화기만당)/ 화평한 기운이 가득한 집 
오른쪽 양각 : 富貴康寧(부귀강녕)/ 부유하고, 고귀하며. 건강하고, 평안함.
2007년 인재 손인식 작
 
곱씹어 보자. 찰나 없는 세상만사 어디 있으랴. 순간이 중요하지 않은 인간사 어디 있으랴.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라는 광고 카피가 히트한 이유 뭐겠는가? 그런데 이 찰나에 해결해야 하는 것일수록 서두르면 망친다. 찰나이기에 더 쪼개서 살펴야 하고 순간에 넋을 빼앗겨선 안 된다. 손에 힘을 주어도 안 된다. 서예도 골프도 손에 잡은 무기에 무리한 힘을 가하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끝이다. 붓은 필봉이고 골프 스틱은 헤드다. 바로 거기에 힘과 정신을 모아야 한다.
 
“누가 방해하는 것도 아닌데 왜들 그렇게 헤매는 거야?”
 
한국에서 친구들이 왔을 때다. 카터를 타고 뒤따라오며 구경하던 친구가 쪼았다. “골프도 못 치는 녀석이 뭘 안다고 간섭이야?” 쪼러 낸 친구가 가만히 받아들일 리 없다. 그러나 말 되는 말이다. 야구는 날아오는 공을 때리지 않는가? 어느 코스로 올지도 모른다. 속도도 예측할 수 없다. 구기 종목이 다 그렇다. 움직이는 공을 타격한다. 그러고도 틈바구니 찾아 잘만 찔러 넣는다. 물론 성공 횟수가 보기 플레이어의 파 세이브만큼이나 드물지만.
 
그런데 찰나란 말 골프에 더 잘 어울린다. 왜? 정지된 공을 때리는 것이기에. 스스로 세팅한 것이기에, 이리저리 쳐보며 수없이 연습을 거친 것이기에. 그런데 세상에 이게 핸디캡이 될 줄이야. 그로 치면 서예가 한 수 더 한다. 바람을 타고 비를 맞지도 않는다. 훼방꾼도 없다. 홀로 결정하고 오직 고요히 홀로 창작한다. 그런데 맘에 드는 창작을 찰나에 해내지 못한다. 쓰고 또 쓰면서도 실패작을 쌓는다. 획 하나 점 하나 땜에 망쳐 다시 먹을 간다.
 
찰나와 찰나를 이으면 그도 역시 찰나일까?
 
지구를 흔든 사나이가 세 타 째에 겨우 그린에 올려 더블보기로 막았다. 핸디 10은 에지에서 퍼터로 굴려 홀컵에 붙였다. 파다. 핸디 6 플레이어가 버디를 했다. 티샷으로 홀 승부가 끝난 게 아니란 걸 퍼팅으로 보여줬다. 티샷을 홀컵 가까이 붙였던 핸디 16은 버디를 놓쳤다. 2m가 채 못 되는 거리였다. 분하다고 투덜거릴만하다. 퍼팅라인이 만만찮았다고 위안 삼을밖에. 이럴 땐 로핸디끼리만 속삭인다. “암 수업료 좀 더 내야지~”
 
▲ 고요히 하루를 닫는 시간(보고르 레인보우 골프장)
 
골프와 서예, 그리 다른 것이 이리 통할 수 있나. 알수록 익힐수록 참 닮은 데가 많다. 통하는바 부지기수다. 물론 둘 다 배우고 체험해야 한다. 공들여야 그 진수를 알 수 있다. 서외구서(書外求書), ‘서예 밖에서 서예 진수를 구하라’는 말이다. 필자는 골수 서예가다. 서예를 들어 골프를 즐기고 골프의 도를 빗대 서예 작품을 창작한다면 그게 멋진 조화 아니랴.
 
며칠을 된통 앓았다. 감기몸살에 한 가지가 더 심신을 괴롭혔다. 침대에 누워 넋을 잃고 천장을 쳐다보다 문득 붓으로 즐기는 골프가 떠올랐다. 골프채로 서예작품을 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예와 골프의 도를 흥미롭게 버무리고 싶었다. 골프와 서예를 들어 횡설수설을 시작한 이유다. 삶의 행간에 함께 즐겨주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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