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한다고 다 살이 빠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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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ktbizdaily1 작성일 2014-06-06 07:49 조회 6,241 댓글 0본문
-인도네시아 끄디리읍 국립 유치원 수도시설 및 교육 시설 증축 프로젝트 진행 중
-동부자바 끄디리군 교육국 / 유아교육분야 / 2013.2.14.~2015.2.13
그녀는 한 때 차도녀였다. 9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특진도 하고 회사에서 제일 잘 나가던 무렵, 돈을 벌고 승진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남을 위한 인생도 한 번 살아보자며 불현듯 회사를 그만 두었다.
인도네시아의 시골에 거주하며 몰랐던 나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한국이었다면 겪지 못했을 인생의 소중한 시간들을 경험하는 중이다. 음식을 잘 못 먹어 탈이 나거나 어려운 자와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도 많지만, 늘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주는, 아이들의 미소로 인도네시아에 온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하루하루가 감사한 코이카 단원.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무슬림의 나라이며, 내가 다니는 교육국, 유치원 역시 모두가 무슬림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종교이야기는 금기사항으로 알려져있지만, 오늘 6월 무슬림에게 가장 큰 행사인 Puasa 기간이 찾아와 그들의 문화에 동참하며 함께 했던, 작년의 기억이 떠 올라 이 글을 써 본다.
무슬림에게는 다섯 가지 의무가 있는데, 알라가 유일하다는 신앙고백, 하루 다섯 번 기도, 자선활동, 메카 순례, 바로 단식_Puasa이다. 해가 떠 있는 한 달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경건하게 신을 섬기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돌아보는, 무슬림에게는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늘 교육국에 출근하면 교육국 한가운데 책상에는 간식들이 쌓여있고, 매점 아저씨는 커피며, 이들이 즐겨 마시는 단 차, 식사 등을 나르기 바쁘지만 금식기간은 다르다. 매점은 아예 운영조차 하지 않고, 책상의 그 많던 간식거리는 없어진지 오래다.
한국어를 배우러 오던 앞집 이웃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 라디나에게도 의무는 아니지만, 입에서 단내가 나도 참으며 해 지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종교를 넘어 이들의 일상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교육국분들은 난 무슬림이 아니니 먹을 것을 가져와도 괜찮고, 언제든 물을 마시라고 하셨지만, 아무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상황에 나 혼자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없어서 “전, 여러분의 문화를 존중합니다. 저도 출근 중에는 금식에 동참하겠어요!”라고 말하며, 야심차게 금식에 동참했다.한 달동안 금식하게 되면, 살이 너무 빠질텐데, 별 쓸데 없는 걱정을 하는 사이 첫 주가 흘렀다.
한 주는 그럭저럭 버틸만했지만, 두 번째 주가 시작되고, 교육국 책상에 앉자마자 오늘 저녁을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기 시작하며, 온갖 먹고 싶은 것들이 떠올랐다. 퇴근 후엔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던지며 냉장고의 음식을 꺼내 볼이 터지도록 먹기 바빴으며, 출근 후 배고플 것을 대비해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경건히(?) 음식을 준비하고, 출근하기 직전까지 입에 먹을 것을 물고 출근하는 3주를 보내고 나니, 무려 2Kg나 살이 올라있었다.
비단 이런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현지분들 역시 Sahur라고 불리우는 동트기 직전 밥을 먹는 시간 고칼로리 음식을 먹고, 하루종일 금식하느라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해가 진 후에는 더 잘 챙겨드시다보니 오히려 살이 더 찐다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 내가 살고 있는 끄디리 시내의 메인 거리는 금식 기간 해가 질 무렵이면 평소의 두 배에 해당하는 노점이 서고, 음식들을 사느라 인산인해를 이루며 차가 막히는 등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버스를 타던 중에 해가지고 금식이 해제되는 Buka Puasa 시간이 되면, 갑자기 여기저기서 음식을 먹으며 박수까지 치는, 어찌보면 짠하기까지 한 풍경도 볼 수 있었다.
라마단 (무슬림 금식기간) 종료 후 Halal bi halal 행사 중, 그 동안의 잘못을 사죄하고, 지인과 함께 밥을 나누어 먹는다.
라마단 금식기간이 끝나면, 주로 교육국의 높은 분들이 주변 사람들을 초청하여, 친한 사람들에게 옷을 선물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으며 그 동안의 잘못을 사죄하며 인사를 나누는데, 교육국 출근 중 잠깐이었지만 금식기간을 잘 이겨낸 내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무슬림도 아닌데 무슬림 옷까지 맞춰주시고, 그들의 행사에 참여시켜주시며 문화체험을 시켜 주신 주변들에게도 참 감사했다.
냉장고에 음식을 꺼내 볼이 터지도록 음식을 먹던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을 보며, 식욕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아래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새삼 느끼던 시간이었다. 그 기본적인 욕구를 참아가며 종교의 생활을 실천하는 무슬림의 모습은, 그들의 삶에서 종교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다.
다음 달이면 또 다시 금식 기간이 시작된다. 한 번 경험해 본 금식기간인지라 한결 여유가 생겼으려나. 올해의 금식기간은 내가 무슬림처럼 그들의 일상을 따라할 순 없겠지만 그 동안의 나를 돌아보며 내 개인적인 잘못도 뉘우치고, 주변인들도 챙기는 내 나름의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워보고 싶다.
인도네시아에서의 나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금식기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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